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8호 [수원의 연애명소] 예나 지금이나 수원은 참 낭만적인 연애명소
서호낙조 전경(위)과 푸른지대에서 열린 행사 모습 ©서둔동탑동지
예나 지금이나 수원은 참 낭만적인 연애 명소
글 김우영 e수원뉴스 주간 사진 이용창
추억 속 푸른지대와 연습림
어느 지방이나 그렇겠지만 연인들이 잘 찾는 명소는 있게 마련이다. 수원은 특히 그런 곳이 많았다. 그래서 70년대까지 수원의 몇 곳은 수도권의 연애 명소(戀愛 名所)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푸른지대는 딸기와 포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서울대 농대 후문 쪽에 조성된 이곳은 딸기철이나 포도가 익을 때 사람들로 넘쳐나던 만남의 장소였다. 아마 지금 50대 후반 이상이면 푸른지대의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을 것 같다.
푸른지대는 19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수원사람은 물론 수도권 주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명소였다. 요리강습회와 친목회, 회사 야유회, 가족 소풍, 특히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 각광을 받았다. 당시 라디오 방송국의 공개방송과 유명 여성잡지의 딸기 요리강습회가 매년 열릴 정도였다. 푸른지대의 전성기 때 주말이면 이곳으로 몰려드는 인파가 3만명을 넘어섰다. 푸른지대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자가용과 서울택시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렸으면 경찰서장까지 현장에 나와 교통정리를 해야 했을 정도였다.
당시 좀 살만한 수도권 주민들은 수원에 와서 딸기나 포도를 먹고 영동시장의 수원갈비를 먹은 후 서호(축만제) 제방을 걸어봐야 수원나들이를 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유신고속에서는 일요일마다 푸른지대로 가는 버스를 하루 3~4회 운행했다.
수원과 서울 유신고속 버스터미널은 옛 수원극장 옆에 있었는데 7시 정도면 버스표가 모두 매진돼 택시를 타거나 수원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냥 헤어지기 싫은 남녀들이 일부러 막차 시간을 놓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수원인근 제부도에서 물때를 알고도 모른 척 시간을 넘겨 하룻밤 역사를 이루려고 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된다.
푸른지대의 인기는 인근 농대 연습림과 서호로 이어졌다. 농대 연습림은 푸른지대의 남쪽에 조성된 숲으로 호젓한 분위기 속에서 데이트를 즐기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필자의 경우도 농대연습림의 추억이 있다. 유쾌하지 않은. 고등학생 시절 한 여학생을 소개받았고 이곳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갑자기 아랫배가 쌀쌀하게 아파왔고 급기야는 참지 못한 채 ‘자연이 부르는 대로’ 후다닥 숲속으로 들어가 볼일을 봤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그 여학생은 이미 자리를 떠버렸고 나는 허탈하게 숲을 지키다가 돌아왔다. 다음날 소개를 주선한 동네 여자 동창으로부터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푸른지대는 1980년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연습림 역시 연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푸른지대에서 딸기 따는 소녀들(왼쪽 ©서둔동탑동지)과 2000년도 원천유원지 전경
서호와 원천유원지의 낭만
서호도 푸른지대에서 멀지 않아 데이트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조시대에 조성된 서호는 여기산, 항미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수원팔경 중 ‘서호낙조(西湖落照)’가 이곳이다. 특히 제방위에 심어진 노송길을 걸으며 정담을 나누는 연인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그림이었다. 그런데 농촌진흥청이 이곳에 철조망을 둘러 폐쇄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서호는 심하게 오염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했던 잉어가 살고 서호납줄갱이가 서식할 정도로 맑고 아름다웠던 서호는 악취가 풍기고 거품이 날리는 도시의 흉물이 됐다. 그러다가 1990년대 당시 수원문화원장이었던 심재덕 씨와 지역 문화계 인사들이 힘을 합쳐 서호 개방과 수질 정화운동을 펼친데 이어 심씨가 수원시장에 당선되자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펼쳐 수원의 명소로 다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서호공원까지 조성돼 인근주민은 물론 원근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원천유원지는 지금 광교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사라지고 광교호수공원으로 재단장됐다. 그리고 옛 원천유원지의 명성이 재현되고 있다. 원천저수지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9월 1일에 준공됐다. 고은 시인은 얼마 전 광교산 보리밥집에서 가진 필자와의 술자리에서 수원 원천저수지와의 인연을 소개한바 있다. 시인은 1960년대 원천유원지에서 배를 타다가 있었던 일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노를 젓다가/노를 놓쳐버렸다//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이 저수지가 유원지로 개발된 것은 1977년이었다. 드럼통을 연결해 띄운 뒤 그 위에 지은 수상 음식점이 생기고 노를 젓는 보트와 페달을 밟아 나아가는 오리보트도 생겼다. 이를 가장 선호하는 부류는 단연 연인들이었다.
더운 여름날 남자들은 양산을 쓴 연인 앞에서 힘을 과시하기 위해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나는 것을 감수하면서 땀을 흘리며 노를 젓거나 오리보트 페달을 밟았고 한 두 시간 정도의 즐거운 고행이 끝나면 인근 음식점에서 주머니를 털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값비싼 음식점들과 러브호텔들이 들어서고 호수를 바라보면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카페들도 생겨났다.
지금 원천유원지는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는 광교호수공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국내의 우수경관 사례를 선정하는 ‘2014 국토교통부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광교 호수공원이 최고의 경관으로 뽑혔을 정도다. 자연경관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기존 저수지에 대한 지역주민의 추억을 담기 위해 다양한 테마공원을 만든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도 훌륭한 데이트 코스로 전국에서 몰려온 젊은 남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수원화성은 별도로 소개할 필요도 없이 잘 알려진 코스로서 방화수류정과 용연,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팔달산 용도 끝의 서남각루 등은 사랑을 키우기 좋은 장소다.
화성을 한 바퀴 돌고 팔달문 쪽의 재래시장으로 내려와 시장구경을 하는 젊은이들도 자주 보인다.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화성행궁을 둘러보고 행궁북쪽의 신풍동 생태골목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세계 최초로 한 달 동안 시도한 ‘생태교통 수원 2013’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잘 정리된 길이며 골목길의 벽화가 정겹다.
또 행궁에서 남쪽으로 조성된 공방거리도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어우러지는 정겨운 곳으로 추천할 만하다. 아울러 북수동의 벽화 골목, 지동의 벽화골목과 지동 제일교회 전망대도 연인과 함께 걷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인계동의 나혜석거리도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나혜석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곳이나 수원시가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하고 나혜석 관련 조형물을 세우면서 음식점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해 이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특히 봄부터 가을까지 밖에서 생맥주를 마시는 노천카페가 늘어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물론 찾아보면 수원지역의 연애명소는 더 많다. 수원천과 서호천, 원천리천, 황구지천도 좋고, 만석공원, 장안공원 등 무수한 공원도 데이트 장소로 그만이다. 눈 밝은 사람이면 본인의 취향에 맞는 장소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곳이 수원이다.
김우영은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겨울수영리에서』, 『부석사 가는 길』 등 다수의 시집이 있으며, 현재 e수원뉴스 주간 및 수원시인협회명예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