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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책 나들이] 거실의 TV를 물리고 대신 서재를 꾸민다면…
거실의 TV를 물리고 대신 서재를 꾸민다면....
글 김희만 역사학자·문학박사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서재를 구비했거나 원할 것이다. 그 공간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말이다. 서재에 대한 홍보(?)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것은 그것을 부러워하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들만의 공간을 구경하거나 대리만족하면서 향수를 느끼거나 아니면 안복(眼福)이라도 최대한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 만나려는 이 책 또한 그런 부류임에 틀림없다. 대신 현재가 아니라 과거로의 회귀인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그 부제(副題)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특히 북학과 연행의 시대였던 19세기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름에 담긴 의미를 통해 그들의 내면과 당시의 문화를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왜 서재에서 그러한 모습을 찾으려 하였을까 궁금하다. 전통시대의 서재는 학문과 아취를 상징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지식인으로서의 삶은 서재에서 시작되고 갈무리되었다. 또한 서재 이름을 자신의 별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서재 이름은 곧 서재 주인과 동일시되었다. 이렇듯 서재 이름에는 삶의 방향이 담겨 있기도 하고 시대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기도 하며 기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서재와 서재 이름 그리고 서재 주인은 동일시할 수 있으며, 그것에 삶의 방향과 시대의 고민 그리고 기호가 담겨 있다고 하니, 가히 경청할 만하다. 그러한 서재의 이름을 찬찬히 엿보는 것도 바쁜 시대에 좀 쉬어가는 맛으로 썩 괜찮아 보인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서재의 이름과 그 주인들은 당시로써는 지식인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이름을 듣는다면 대개 익숙한 인명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한계로도 작용할 수 있다. 간단하게나마 그 내용을 정리해본다.
정조의 홍재(弘齋)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서재이며, 홍대용의 담헌(湛軒)은 유리창에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청명과 허백을 나타내며, 박지원의 연암산방(燕巖山房)은 산골짜기 연암골에서 웃음을 쓰고, 유금의 기하실(幾何室)은 음악이 있는 과학자의 서재를, 이덕무의 팔분당(八分堂)은 간서치(看書癡)의 책병풍과 책 이불을, 유득공의 사서루(賜書樓)는 임금이 내린 책을, 박제가의 정유각(貞蕤閣)은 조선의 개혁을 꿈꾸었으며, 장혼의 이이엄(而已广)은 가난한 시인의 서재를, 남공철의 이아당(爾雅堂)은 중국 고대문자의 의미를 설명한 경전의 이름을, 정약용의 여유당(與猶堂)은 조심스런 학자의 삶을, 김한태의 자이열재(自怡悅齋)는 나를 위한 서재, 우리들을 위한 서재를, 서형수의 필유당(必有堂)과 서유구의 자연경실(自然經室)은 위대한 유산을 표방하고 있다.심상규의 가성각(嘉聲閣)은 4만 권의 장서로 19세기 문화를 이끈 경화세족을, 신위의 소재(蘇齋)는 소동파와 옹방강의인연을 거울로 삼았으며, 이정리의 실사구시재(實事求是齋)는 지식인이 현실을 구원하는 방식을, 김정희의 보담재(寶覃齋)와 완당(阮堂)은 옹방강과 완원이라는 스승을 기리는 집으로, 초의의 일로향실(一爐香室)은 추사와 차로 맺은 인연을, 황상의 일속산방(一粟山房)은 좁쌀 하나와 같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은자의 서재를, 조희룡의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는 백두 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을, 이조묵의 보소재(寶蘇齋)는 옹방강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윤정현의 삼연재(三硯齋)는 자신의 잊을 수 없는 생각을 간직하기 위한 서재로, 이상적의 해린서옥(海隣書屋)은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니 하늘 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웃에 있는 듯하네”의 의미를, 조면호의 자지자부지서옥(自知自不知書屋)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자신은 안다”라는 의미를, 전기와 유재소의 이초당(二草堂)은 아주 특별한 공동 서재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24인의 서재 이름을 읽으면서 익히 들어본 이름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 생소한 명칭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명이 대개 19세기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북학과 연행에 관련된 명사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서재와 서재 이름은 당연히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정조와 홍대용·박지원·이덕무·유득공·정약용 그리고 중국의 소동파, 옹방강등을 중심으로 맺어진 추사, 신위, 이조묵 등과 초의, 황상, 이상적 등 맥락이 이어지는 연관성이 있는 삶의 흔적이며, 문화를 담고 있다. 물론 한계성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 우선 서적 사진이 눈에 띈다. 각종 도서관에 수장되어 있는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물론 발품을 많이 팔았겠지만, 새로운 눈요기의 대상으로서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수경실(修綆室) 소장의 사진들이다. 이 책의 저자 서재 이름이 수경실이다. 그동안 수경실에 보관되어 오던 새로운 자료를 이 책을 통해서 우리도 함께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진귀한 자료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이 책의 제목인 『서재에 살다』는 서재 그 자체보다 서재와 함께 살고 있는 또 다른 볼거리를 구사하고 있다. 바로 서재 이름을 쓴 편액 내지 탁본 글씨이다. 간혹 유명한 편액 내지 현판은 답사를 통하거나 도록 등을 통해서 본 적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동안 감춰진 내밀한 부분의 자료까지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내용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러한 점이 또한 이 책의 맛이라고 하겠다.
요즘 거실에서 TV를 물리고 대신 서재를 꾸미는 집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실행하는 분들의 현명함에 찬사를 보낸다. 다른 분들도 모방할 수 있는 지혜를 꿈꾼다. 이번 기회를 응용하여 거실에 꾸민 서재에 가족들의 온정을 담은 조그마한 서재 이름을 제안해본다. 어떤 이름인들 어떠랴. 보면 볼수록 아름답지 않을까 한다. 가족공동체를 대변하는 이름이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한다.
서재는 삶의 일부이다. 첨단시대에 살면서 종이책을 꽂을 수 있는 서재 운운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공감한다. 그러나 세상사는 다양하다.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인문학적 소양과 다양한 지혜를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은 중요하다고 본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거기서 인문학의 지혜를 꿈꾸기를 기대한다. 서재가 필요한 이유이며, 서재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공감할 수 있다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김희만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의 이해』,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등의 공저서와 「수여선의 개통과 사회변화」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뉴스피크에 ‘헌책방의 인문학’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격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