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수원 옛사진 이야기] 사진으로 읽는 수원의 근대풍경(3)
(왼)순종황제 수원방문 기념엽서에 쓴 안중근의 편지(안중근기념관 소장)
(오)출처 수원박물관
사진으로 읽는 수원의 근대풍경(3)
글 한동민 수원박물관 학예팀장
안중근, 수원을 찾아오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909년 하얼빈 의거 1년 전 수원을 찾아왔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것도 순종황제가 수원을 찾아온 날과 같은 날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서울 남산의 안중근기념관(안중근의사숭모회)에는 1908년 10월 2자 수원우편국 소인이 찍힌 안중근 의사의 우편엽서가 있다. 즉 순종황제의 수원 방문을 기념하는 소인이 찍힌 것으로 권업모범장을 배경으로 한 사진엽서인데, 안의사가 평안도 진남포의 돈의학교 홍석구(빌렘) 신부에게 보낸 것이다. 안의사와 빌렘신부의 긴밀한 관계를 잘 보여 주는 자료이다.
有火急用事. 目下水原留宿 前途漢城 經過各地 向發爲計.
親知諸卒等 下傳于此旨幸甚 伏望各地着治上書 諒知安心之
地 千萬伏望
화급한 용무입니다. 저는 지금 水原에 유숙하고 있는데, 漢城에 갔다가 各地를 거쳐서 그곳으로 갈 예정입니다. 친지와 아랫사람들에게도 이 뜻을 전해주시면 무척 다행이겠습니다. 가는 곳마다 글을 올리겠으니 그리 아시고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수원박물관
화급한 용무가 있어서 현재 수원에 유숙하고 있다는 것인데, 무엇이 화급한 용무였을까? 기존의 안중근 의사 연대기에는 수원 방문 사실은커녕 1908년 10월 러시아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즉 함경도를 통해 국내 진공작전을 펼쳤던 안중근 의병부대는 일본군 포로를 살려 준 대가로 신아산 전투에서 대패하고 러시아로 돌아가 있을 때였다.
그러나 사진엽서는 세례명 토마스(도마)와 어릴 때 이름 응칠을 함께 써서 친근감을 담은 ‘안도마 응칠 재배(安道馬應七再拜)’ 다음에 ‘무신(戊申, 1908) 10월 1일’을 분명히 적고 있다. 이는 안중근 의사가 1908년 10월 1일 수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10월 2일 자 수원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는데, 이날은 순종황제가 수원행행을 한 날이다.
기차를 타고 융릉과 건릉을 참배하고 권업모범장을 하루 동안 다녀갔던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렇다면 러시아에 있는 안중근 의사가 연고도 없는 수원을 왜 찾아왔던 것일까? 그것은 두 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수원지역의 중요한 누군가를 만나려 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수원의 유력한 인물을 통해 군자금을 마련하고자 했거나 천주교 신부를 만나려 했을 가능성이다. 당시 수원의 왕림 갓등이 본당의 주재 신부는 요셉 알릭스(Joseph Alix, 韓若瑟, 1861~1948)였다. 그는 갓등이 본당을 중심으로 여러 학교를 세워서 전교와 함께 문맹 퇴치를 시도하였다.
갓등이 본당이 운영한 학교는 일제강점기 정치적·종교적 박해와 민족교육 탄압으로 여러 차례 교명이 바뀌었고(삼덕학교, 신명의숙, 왕림학원, 왕림강습소), 강제 폐교를 당하는 등 수난의 역사를 거듭하였다. 또는 중국 상해에서 만나 적이 있던 르각(C. Le Gac, 郭元良, 1876~1914) 신부일 가능성도 있다. 왕림 본당 신부로 공식적으로 부임한 것은 1911년의 일이지만 갓등이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부가 아니더라도 천주교 신도 가운데 유력한 누구를 만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가능성은 낮지만 순종황제의 능행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배종하여 따라올 것으로 예상하였던 것은 아닌지? 그러나 그날 순종황제를 배종한 것은 이토 통감이 아니라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부통감이었다.
순종황제의 수원능행을 통해 안중근 의사는 언젠가 이토 히로부미가 기차로 북쪽으로 올 가능성과 그를 처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영감을 수원에서 얻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안중근 의사의 수원방문과 함께 수원에서 이토를 처단하는 ‘수원 의거’가 이루어졌다면 하는 역사적 상상을 해보는 것도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동민(문학박사) 학예팀장은 옛 수원 땅인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출생이다. 3.1운동의 격렬한 항쟁지였던 고향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으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다. 일제강점기 사회운동과 근대불교사로 중앙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수원시사편찬에 관여하면서 수원지역사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현재 수원박물관 학예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