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특집 2] 신종 감염병과 역사
신종 감염병과 역사
글 위성헌 성빈센트병원 감염내과 교수
1
메르스라는 중동에서 유입된 호흡기 증후군이 2015년 봄과 여름에 국내에서 유행하면서 모든 국민에게 큰 혼란과 공포심을 주었고 국가적으로 매우 큰 손실을 가져왔다. 지역사회에서 크게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등과 달리 주로 병원 내에서 전파되고 발생 인원이 다른 감염병들에 비해 비교적 많지는 않았지만 치명률이 높았고 낯선 감염병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으며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메르스는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증으로 발열・기침・호흡곤란이 주된 증상이지만 두통・오한・근육통・콧물・인후통・오심・구토・복통・설사 등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발열이나 기침 등 흔히 접하는 증상으로 메르스를 의심할 수 있다는 점이 일선 의료진이나 방역 당국의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합병증으로 호흡부전, 패혈성 쇼크・다발성 장기 부전・급성 신부전 등이 나타났고 병원에 입원한 당뇨병・암・신장질환・만성폐질환 환자들에서 감염이 쉽게 되었다.
국내에서 이러한 메르스 유행은 단지 환자, 보호자, 병원 등에서의 의학적 문제 외에도 사회적으로 큰 공포를 유발하면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였다. 약 2개월간 언론들이 주요 기사로 게재하였고 국민들은 매일 언론을 통해 새로운 환자의 발생이나 사망자들에 대한 보고를 받았으며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이 일반 시민들의 생활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마치 흑사병이 창궐하였던 중세 시대 유럽에서 사람들의 공포와 혼란이 연상되기도 한 기간이었다. 환자는 물론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이나 진료한 병원 또는 환자와 그 접촉자들이 이용한 대중 시설 등에 대해서도 방문이나 접촉을 꺼리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지나친 과잉 반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 국민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점차 메르스의 발생이 감소하고 격리되었던 접촉자들도 줄어들었으며 차츰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들을 성원하고 지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메르스를 극복하면서 보여준 좋은 대처 방법이라고 평가된다.
메르스 유행은 이와 같은 감염병을 처음 겪어본 것처럼 충격적으로 우리 사회를 강타하였지만, 인류의 긴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여 큰 영향을 미쳤던 여러 감염병 중 하나이다. 바이러스 또는 세균 등 미생물에 의한 감염병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로 계속 이어져 왔던 상황이며 한반도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정착한 후에 지속해서 겪어왔던 일들이다. 이번 메르스 유행은 우리에게 노출된 적이 없는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감염병의 파급력, 사회의 혼란과 문제점 등에 대한 교훈을 주었다. 과학의 발전, 교역 증대 등으로 국민의 해외 여행이 증가하면서 메르스와 같은 신종 전염병이 유입되었지만, 의학의 발전, 빠른 정보 교류 등을 통해 과거보다는 사람들이 신속하게 대응하고 더 좋은 의료 혜택을 받게 되었다. 물론 메르스에 대한 보건 당국의 초기 대처가 미흡하였다는 지적은 언론이나 학계 등에서 많이 있었으며 향후 문제점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신종 감염병에 노출된 인구 집단에서 부족이나 국가 집단이 전멸하거나 붕괴하기도 한 역사적 기록에는 지금 우리가 겪었던 상황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되었던 특정 시대와 지역의 감염병들이 있었다. 향후 신종 감염병의 발생을 예방하고 또한 대비하기 위해서 과거 역사에서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전염병 유행 사례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의학의 발전 과정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고대의 기록들에 따르면 그리스나 로마가 번성하면서 도시가 크게 발달하였고 도시로의 인구집중이 홍역이나 천연두가 더 치명적으로 전파되는 여건이 되었다. 로마는 서기 2세기부터 6세기 사이에 심각한 전염병의 유행을 겪었고 홍역이나 천연두로 추정되는 로마의 전염병으로 심할 때는 로마시에서 하루에 수천 명씩 사망하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한 지중해 지역의 인구 감소는 로마제국 쇠퇴의 한 요인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홍역, 천연두, 혹은 페스트로 추정되는 전염병들이 유행하여 인구가 많이 감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중국에서 양쯔강 지역은 고온다습한 기후와 전염병 창궐로 황하 지역보다 발전이 느렸다. 또한 인도도 많은 전염병으로 인해 국가의 발전이 느렸고 이로 인해 외부 침략에 저항하기 어려웠지만, 또한 침입해온 외부 세력들도 인도 지역의 토착 전염병에 취약하여 오래 머물러서 지배하기는 어려웠다고 알려졌다.
영국이나 일본 같은 섬나라 국가는 이러한 대륙의 전염병에 일찍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인구가 더 증가한 상태에서 미지의 전염병에 뒤늦게 노출되었을 때 더욱 많은 인구가 감소하는 치명적인 결과도 나타났다. 서기 9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일본에서도 홍역, 천연두, 페스트로 의심되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유행하여 인구가 많이 감소하였고 13세기에 이르러서야 홍역이나 천연두에 저항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는 14세기의 페스트 유행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15세기 이후에야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최근 미국 일부 지역에서 페스트 환자들이 발생하여 국제 보건당국이 주시하고 있다. 페스트는 14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하면서 이로 인해 수천만 명이 사망하였다. 페스트는 흑사병이라고도 명명되었고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열성 인수공통 감염증이다. 페스트균은 야생설치류와 벼룩을 통하여 전파되고 대개 림프절형 페스트, 패혈증형 페스트, 폐렴형 페스트로 구분된다. 페스트는 치료하지 않는 경우에는 치사율이 50%가 넘는다. 19세기 말까지 쥐와 벼룩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역을 시행하지 못하고 엄청난 공포와 혼란 속에 페스트 유행을 속수무책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4세기 유럽과 중국에서는 페스트 유행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5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다시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거주자들은 이동과 교류로 감염성 질환들이 전파되고 또한 병원체들이 진화하면서 생태학적으로 다양한 감염성 질환들에 노출되었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는 구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로 구대륙보다 다양한 감염성 질환들에 노출될 가능성이 작았고 구대륙의 개척자들이 도착하였을 때 이들이 가져온 매우 낯선 감염성 질환에 매우 취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15세기와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스페인 군대가 도착한 이후 감염성 질환 등으로 인해 약 90% 이상의 인구가 사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스페인 군대와 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전쟁 중에 원주민들에서의 천연두 유행은 전황을 스페인 군대에 유리하게 이끌었고 이후 스페인 군대가 아즈테카 제국과 잉카 제국 지역을 지배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초기에 스페인 군대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천연두 등 원주민들에게 취약한 감염성 질환들이 스페인 군인이나 사람들을 통해 신대륙에 유입되면서 마치 현대의 생물 무기나 생물 테러와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당시 천연두 등 감염성 질환의 원인이나 역학, 전파경로도 모르는 시절에 이러한 감염성 질환에 대해서는 원주민의 지배층도 안전할 수가 없었고 주요 지배층들도 감염되어 사망하면서 아즈테카 제국, 잉카 제국 등 아메리카 대륙의 사회 체계가 급격하게 붕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서운 감염성 질환들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로 감염되어 사망한 반면 침입자인 스페인 사람들에는크게 발생하지 않은 상황은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백인 정복자들에게 정신적으로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고 스페인의 신대륙 진출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인식과 판단은 크게 현미경 발명 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레벤후크라는 사람이 현미경을 발명하여 미생물을 관찰하고 세균이 알균, 막대균, 나선균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러나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미생물의 존재를 보고한 후 약 200년이 지나 파스퇴르나 코흐 등의 과학자들이 미생물에 의한 감염설을 주장하기까지레벤후크의 발견이 큰 관심을 받지는 못하였다.
또한 현미경 발명 이전에는 전염병의 원인체로서 미생물 존재에 대한 증명을 할 수도 없었다. 히프크라테스는 습지와 말라리아가 관련되어 있음을 주장하였지만 습지에서 산란한 모기에서 말라리아 원충이 사람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19세기 이전에는 아무리 저명한 의학자일지라도 말라리아가 모기에 의해 전달되는 말라리아 원충에 의해 발생된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즉, 현미경 발명 이전에는 전염성 질환의 발병 요인이나 전파 경로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인류가 전염병에 대처하였던 것이다.
말라리아가 많이 발생하는 습지를 피하는 노력, 항구 도시의 검역과 격리 등이 전염병 전파를 차단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지만 현미경의 발명과 이를 이용하여 과학자들이 원인균, 발병 기전이나 전파 경로 등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원인균의 치료 혹은 전파 차단을 위한 실질적인 정보가 매우 부족한 상태로 전염병에 대처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리아 등이 모기에 의해 전파되고 열대열원충이나 삼일열원충들이 원인 병원체라는 점은 19세기 말까지 잘 알려지지 않다가 19세기에 파스퇴르와 코흐라는 두 학자에 의해 세균설이 확립되면서 또한 말라리아의 원인 병원체와 생활사에 대해 여러 과학자들이 연구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19세기말 프랑스인 라브랑이 말라리아의 원인 병원체를 찾아냈고 영국인 로스는 말라리아의 모기 내 전파 경로를 발견하였으며 이탈리아인 그라시는 사람의 말라리아는 얼룩날개모기에 의해서만 전파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이와 같은 말라리아의 원인 병원체와 매개체에 대한 발견은 말라리아의 예방과 치료가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기는 집모기속, 얼룩날개모기속, 숲모기속으로 크게 구분되었고 말라리아 이외에도 황열, 뇌염, 사상충증 등의 질환들을 옮기는 것이 밝혀졌으며 현재에도 매년 약 7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을 사망하게 하여 가장 많은 사망자를 유발하는 동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제국주의 시절, 지배자들에 의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많이 이주하였는데 이러한 교류로 인해 유입되거나 악화시킨 질환으로 말라리아와 황열을 예로 들 수 있다. 황열은 에데스에집티라는 열대숲모기가 전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열대숲모기는 물통이나 물탱크와 같은 인공 용기에 잘 산란하기 때문에 선박이나 선원들을 통해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황열이 모기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 1880년대 프랑스는 파나마 운하 건설에 실패하는데 황열로 인해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많이 사망한 것이 큰 요인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전문가들도 황열에 대하여 연구하였지만 모기가 매개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황열이 감염병이라고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후 미군 군의관이었던 월터 리드 소령은 황열이 모기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미국은 이러한 전파경로를 이해하고 파나마에서 대대적인 모기 박멸 조치를 하면서 파나마 운하의 건설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편 1854년 런던의 개업의사 존 스노우는 콜레라 유행을 조사하면서 오염된 식수와 관련이 있음을 보고하였다. 초기에는 감염설을 부인하는 의사들게 비판도 받았지만, 곧 영국 정부에 의한 급수시스템의 개선과 공중위생법의 시행을 끌어냈다. 이후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는 1877년에 탄저병의원인 병원체를 밝혀냈고 1881년 탄저병 백신을 만들었다. 독일의 로버트코흐에 의해 1882년에 결핵균이, 1883년에 콜레라균이 발견되었다. 파스퇴르, 코흐와 같은 세균학의 개척자들이 전염병의 원인 병원체를 발견하면서 감염병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세균학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세균들은 계속 발견되어 1894년 페스트의 원인균인예르시니아페스티스가, 898년에 이질의 원인균인 시겔라가 밝혀졌다. 1909년에 발진티푸스의 원인균인 리케차프로바제키가 발견되었고 사람을 흡혈하는 이에 의해 전파되는 사실도 확인되어 예방과 치료에 기여하게 되었다. 국내의 경우 대한제국 시절인 1899년에 전염병 예방규칙이 제정되어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발진티푸스, 천연두의 5개 질환을 관리하게 되었다.
메르스 이외에도 수많은 전염병들이 인류를 위협해 왔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도 많은 과학적 연구와 성과를 통하여 결실을 맺어 왔다. 그러나 신종 감염병의 위협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인식과 대처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과거에 인류가 겪어왔던 전염병과 이로 인한 사회와 역사의 변화 등을 잘 이해한다면 이는 미래에 만날 수 있는 신종 감염병을 큰 혼란과 두려움 없이 극복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위성헌은 수원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감염내과에서 2000년부터 15년간 감염성 질환환자들을 주로 진료하고 감염성 질환을 연구하면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