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담장넘어 2] 연암의 행적을 좇아 신 열하일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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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넘어 2] ‘연암의 행적을 좇아 신 열하일기를 쓰다

단둥에서 산해관까지



글사진 박설희 시인



“연행로는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길이면서 일제의 침략로였고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건너간 길이었다. 경제와 문화교류의 통로가 되고 있는 연행로의 역사적 의미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연암 박지원이 돌아간 지 210년이 되었다. 그의 연행 체험을 기록한 『열하일기』는 조선시대 3대 연행록으로 꼽히고 있고, 당시 문사들이 그의 문체를 흉내 내는 것을 염려하는 윤음(綸音) 정조의 어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한때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가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연행길을 이백 년 만에 다시 걸어본다. 이 글은 총 19명이 걸었던 단둥-요양-심양-산해관승덕(열하)북경으로 이어지는 9박 10일의 기록이다.



압록강에서 도를 논하다



“한국은 통일에 대해 미래담론을 얘기하지만, 통일은 현재진행형이다. 이곳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압록강엔 국경이 없다. 단둥은 또 다른 개성공단으로 이만 명의 북한인이 일하고 있으며 그들이 만든 옷이 중국제로 팔리고 있다. ‘단둥과 신의주는 해와 달을 공유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므로 단둥에서 압록강변만 바라봐서는 왜곡된 시각만 강화돼서 돌아가게 된다. ‘등안(登岸)은 했지만 월경(越境)은 하지 않았다’는 말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강주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심양공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단둥으로 향했다. 한양에서 출발해서 평양, 의주를 거쳐 단둥과 심양에 이르는 연암의 행적을 따라가 보려는 것이다. 박지원 당시 단둥은 비무장지대였다. 압록강부터 책문까지 농사와 건물을 못 짓는 완충지대였기에 노숙해야 했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국경의 역할은 책문의 몫이었던 셈이다.
마침 육이오 때 중공군이 도강했던 장소를 지나간다. 단둥서 의주로 넘어갔던 현장이다. 박지원이 지금 압록강을 건넌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압록강 단교 앞에서 한탄하며 돌아갈까? 사이의 사유를 펼쳤던 그가 아닌가?
“도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닐세. 바로 저기 강 언덕에 있네……압록강은 바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가 되는 곳이야. 그 경계란 언덕이 아니면 강물이네. 무릇 천하 인민의 떳떳한 윤리와 사물의 법칙은 마치 강물이 언덕과 만나는 피차의 중간과 같은 걸세. 도라고 하는 것은 다른 데가 아니라 바로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네… 그러므로 그즈음에 잘 처신함은 오직 도를 아는 사람만이 능히 할 수 있으니”(박지원, 『열하일기』)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며 그가 펼친 사유다. 나는 이것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강물이 언덕과 만나는 지점, 그즈음에 잘 처신함은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도는, 길은 결국 관계맺음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리라. 이것은 남북관계에도 적용되며 ‘잘 관계맺음’이 결국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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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압록강 유람선, (오)호산장성에서 바라본 물길



압록강 일대에서 가장 높은 조망권을 가지고 있는 호산장성은 전에 왔을 땐 별 의미가 없다고 지나친 곳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으로, 중국은 이 산성이 명나라 때의 것이라면서 만리장성이 동북으로 일천 킬로미터 연장됐다고 발표했고 불과 십여 년 만에 성곽과 성루 등을 조성했다. 그러나 우리 사학계에서는 이곳이 고구려 박작성으로 천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은 나뉘어졌다가 다시 합쳐지고



무척 더운 날씨라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르다 거의 네 발로 성루에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압록강 중강 · 삼강 · 애랄하 등 여러 물줄기가 휘감아 들고 바로 눈 아래 북한 땅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쫓겨 의주까지 온 선조가 건너편 통군정에서 압록강을 건널지 말지 고민했다고 한다. 저 강줄기들이 피난 의지보다 항전 의지를 갖게 한 게 아닐까. 계곡과 평야를 이리저리 휘돌아 온 수많은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쳐져 서해까지 내달리고 그 과정에서 땅과 사람에게 젖줄기를 대주고 숱한 생명과 역사를 일궈낸 것이다.
호산장성을 내려와 그 아래 일보과로 향한다. 일보과는 한걸음에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강폭이 좁은 곳으로 ‘지척’이라는 글씨가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북한 땅이 지척이라는 의미겠다.
오 미터도 채 안 돼 보이는 강폭에 철조망이 쳐 있고 중국 공안 둘이 경계를 서고 있다. 이곳에 와서야 압록강이 국경선이라는 실감이 난다. 말없이 건너편 옥수수밭만 지켜보다가 돌아섰다.
단둥은 애국주의 시범기지로 항미원조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압록강 단교 앞에는 색동한복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중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의 복잡한 심경과는 아랑곳없이 이곳은 그들의 관광명소다. 그들에겐 미국에 대항해 이긴 전쟁의 현장인 것이다. 나도 기념사진을 찍는다. 히죽 무심코 웃는다. 사진기 앞에서 웃고 보는 슬픈 습관. 웃음이야말로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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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중변경 일보과, (아래)청석령 옛길

물은 나뉘어졌다가 다시 합쳐지고

무척 더운 날씨라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르다 거의 네 발로 성루에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압록강 중강 · 삼강 · 애랄하 등 여러 물줄기가 휘감아 들고 바로 눈 아래 북한 땅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쫓겨 의주까지 온 선조가 건너편 통군정에서 압록강을 건널지 말지 고민했다고 한다. 저 강줄기들이 피난 의지보다 항전 의지를 갖게 한 게 아닐까. 계곡과 평야를 이리저리 휘돌아 온 수많은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쳐져 서해까지 내달리고 그 과정에서 땅과 사람에게 젖줄기를 대주고 숱한 생명과 역사를 일궈낸 것이다.



호산장성을 내려와 그 아래 일보과로 향한다. 일보과는 한걸음에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강폭이 좁은 곳으로 ‘지척’이라는 글씨가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북한 땅이 지척이라는 의미겠다.
오 미터도 채 안 돼 보이는 강폭에 철조망이 쳐 있고 중국 공안 둘이 경계를 서고 있다. 이곳에 와서야 압록강이 국경선이라는 실감이 난다. 말없이 건너편 옥수수밭만 지켜보다가 돌아섰다. 단둥은 애국주의 시범기지로 항미원조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압록강 단교 앞에는 색동한복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중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의 복잡한 심경과는 아랑곳없이 이곳은 그들의 관광명소다. 그들에겐 미국에 대항해 이긴 전쟁의 현장인 것이다. 나도 기념사진을 찍는다. 히죽 무심코 웃는다. 사진기 앞에서 웃고 보는 슬픈 습관. 웃음이야말로 정치적이다



청석령 옛길에서 길을 잃다



연행은 육백 년 동안 일천 회 이상 이루어졌다. 연행의 목적은 표면적으로 황제의 생일 축하였지만 선진문물과 경제 교류 등의 숨은 목적이 있었다. 연행행렬은 이삼 킬로 정도 늘어져 장관이어서 주민들의 큰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단둥에서 심양까지 원래의 연행길은 지금은 철도로 이어져 있다. 철길을 몇 번이나 건넜는지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려 옛길을 걸어본다. 탕산성지 부근 마을에선 고구려 시대에 창고로 사용했던 부경의 모습이 집집마다 남아 있다. 총수산 부근 탕하를 따라 말에게 물을 먹이던 곳까지 걸어간다. 강물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 장마철도 아닌데 곳곳에 길이 끊겨 우회해야 한다. 직접 걸어보니 연행의 어려움이 실감 난다. 탕하와 나란히 가는 철길 · 백석 · 윤동주 · 김사량 등이 저 기차를 타고 심양으로 오갔다고 한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기차를 탔을까. 책문을 지난다. 책문은 목책으로 경계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 목책이 안 남아 있다. 연암은 한낱 변경에 불과한 책문의 질서정연한 규모에 놀라서 고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지금은 무너지고 빈집이 많아 쇠락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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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요양백탑 , (오)고갯길에서 만난 소떼



옛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청석령 고갯길을 걷는다. 시멘트 빛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인데 신발 자국이 오 센티 정도는 묻히는 것 같다. 간간이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한바탕 먼지 구름이 일고 우리는 그때마다 길가로 피해서 숨을 멈추어야 했다. 만약 비가 오면 이 길이 어떻게 변할지 빤했다. 그 진창을 어떻게 지나다녔을까. 새와 풀벌레소리 그리고 오롯이 자신의 발소리와 숨소리만 들린다. 어느새 내 앞에는 누워 있는 소 같은 산등성이와 옥수수밭뿐이다. 무엇에 취했는지 길을 잃은 것이다. 벌써 어둑하다. 뒤돌아서 오던 길을 되짚어 뛰어간다. 십여 분 그렇게 내달렸을까. 갈림길에서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청석령 관제묘와 당산나무를 보고 일행과 함께 내려오는 길, 손톱 끝만 한 초승달이 따라온다.



참 좋은 울음터로다



요양백탑은 시내에 있어 접근이 쉽다. 탑돌이하거나 참배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남녀, 노래 틀어놓고 춤 연습하는 여자 등을 본다. 추녀마다 매달린 물바가지 크기의 풍경이 바람 불 때마다 벌판을 울렸다는데 아쉽게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요양은 호곡장론의 발상지이기도 하지만 옛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하늘 끝과 땅 끝이 마치 아교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고금의 비와 구름만이 창창하니, 여기가 바로 한바탕 울어 볼 장소가 아니겠는가?”(박지원, 『열하일기』) 박지원은 요동벌판에서 조선의 협소함과 대륙의 호쾌함을 절감했다. 우물 안 올챙이였던 양반과 조선의 답답함을 자각하고 당시 조선을 비판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이 마찬가지 처지다. 서양을 대하는 자세 또는 외부를 대하는 자세를 생각해봐야 한다. 요동백탑에서 ‘호곡장’을 낭독하며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울음을 문학적 상징으로 볼 것인가, 정치 문화적 각성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 압록강에서의 웃음과 비교하면 울음은 얼마나 존재론적인가.
끝없는 벌판. 요동벌판에 서 있는 건 전봇대와 가로수뿐이다. 연행길 삼천리를 우리는 비행기와 버스를 이용하여 되짚어보고 있다. 말 위에서 보는 중국과, 비행기와 버스에서 보는 중국은 느낌이 다를 것이다. 우리는 연암의 몇 배의 속도로 북경을 향해 가고 있다.



중국의 정말 장관은 깨진 기와와 똥거름에 있다



심양에서 산해관까지 구간은 연행의 중절에 해당하는 구간으로 『열하일기』 중 「성경잡지」와 「일신수필」에 이 부분에 관한 기록이 있다. 심양은 청이 명 · 몽골 · 조선 등의 견제와 침략의 용이함을 고려해서 도읍으로 정한 곳으로 고궁이 남아 있다.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관련된 흔적이 많은 곳이다.
백탑보에 가니 최근에 복원한 심양백탑 옆 나무 그늘 아래 전통 악기를 배우는 노인들과 햇빛 아래 사교댄스를 배우는 남녀들의 모습이 묘하게 대조된다.
소현세자가 8년을 머물렀던 심양 조선관 자리에서 즉석 토론이 벌어진다. ‘당시 서세동점의 시기로 전 세계가 격동기였다. 효종의 즉위와 북벌론으로 오히려 역사적으로 후퇴된 감이 있다’ ‘소현세자를 지금으로 호명한다면?’ ‘우리는 중세와 근대가 완전히 단절돼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연암은 심양에서 중국의 초상제도를 관찰하려고 상가에 들어갔다가 얼떨결에 문상하기도 하고 필력을 뽐내려다가 실수를 하는 등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지정된 숙소에서 밤마다 탈출해서 예속재라는 골동품 가게에서 나눈 이야기를 「속재필담」으로 정리했으며 가상루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상루필담」으로 정리했다.
심양과 산해관 사이 요동벌은 명과 청의 격전지로 연행 중 고통이 가장 극심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고속도로로 지나가는 길은 연암 당시 진창길이었으며 사람과 말이 수렁에 빠져 눈앞에서 죽기도 했다. 모래먼지와 바람으로 고생했으며 우박이 떨어져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 오랜 고통 끝에 솟아오른 의무려산은 성찰의 공간이 되었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이라는 명저를 남기기도 했다. 의무려산에 오르면 발해만의 바다와 몽고의 초원이 다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상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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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백탑

연암은 의무려산에 이르는 이 구간에서 자신이 삼류 선비라며 중국의 “정말 장관은 깨진 기와조각에 있었고, 정말 장관은 냄새나는 똥거름에 있었다”고 했다. 천하를 통치하는 사람은 진실로 인민에게 이롭고 국가를 두텁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그 법이 오랑캐에게서 나왔다 하더라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
전봇대와 도로는 목적지향성을 갖고 있다. 아직은 아파트가 침범하지 않은 땅의 연속. 심양에서 산해관까지 버스로 5시간이 소요되었다.



박설희 시인은 화성에 반해 수원으로 이사 와 이십 년 가까이 살고 있다. 2003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이 있다. 강의와 글쓰기를 하는 틈틈이 힘닿는 대로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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