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 [책 나들이] 한국인의 원류를 찾아서
구본진, 『어린아이 한국인: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 김영사
한국인의 원류를 찾아서
글 김희만 역사학자 · 문학박사
서점에 가면 매일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책더미에 가끔 넋을 잃고 쳐다볼 때가 있다. 특히, 대형서점에 줄지어 서 있는 이 많은 책 가운데 어느 책이 양서이고, 읽을 만한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 저런 책 가운데 참신한 내용을 찾고자 하였다. 결코 쉽지 않았다. 하고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을 고른 것은 그 제목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부제가 나의 감성을 자극한 데 연유하였다. 사실 이 부제를 책 제목으로 하였으면 어땠을까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 구본진 변호사는 이미 유사한 책을 출간한 바가 있는데, 바로 『필적은 말한다: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이라는 제목이며 그 내용 또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 책에 진열된 항일과 친일 관련 인사들의 서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찌 보면 무모한 듯하면서도 그 대립적 글쓰기는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다. 이 저서에 이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에서는 ‘한민족의 핏줄과 박동을 찾아서’ 멀리 단군의 글씨 찾기부터 중국문화를 거부한 고신라의 글씨, 중국화되는 한민족의 글씨 그리고 다시 단군의 조상을 찾는 긴 여정을 치밀하면서도 색다른 열정으로 언급하고 있다.
자칭 국내 최고의 글씨 전문 컬렉터이자 필적학자로 소개되어 있는 저자는 21년 동안 검사로 일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서 이 분야에 많은 공덕을 들였으며, 책 곳곳에 보이는 저자 소장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가히 ‘필적’할 수 없을 정도임이 틀림없다. 또한 이 책의 실타래를 풀어가기 위해서 준비한 여러 도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열정적인 면도 인정된다. 특히, ‘글씨는 뇌의 흔적’이라는 가설은 20년 넘는 검사 생활과 15년 이상의 글씨 수집 경험에서 깨달은 것으로 책 중간중간 서술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그 결과물에 찬사를 보낸다.
저자가 주장하는 『어린아이 한국인』의 실마리는 ‘고문헌들을 세심하게 뒤지고 유물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 이른 결론은 법흥왕 재위 이전, 즉 6세기 초까지의 고신라가 고조선 선조의 특성을 가장 잘 간직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 최근 소개된 ‘이사지왕 고리자루 큰칼’에서부터 해당 시기의 금석문을 망라하고 있다. 그 결과 고신라의 유물은 중국과는 확실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여러 근거를 통해 논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신라의 사회제도와 일상 관습은 6세기 초를 시작으로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를 맞게 되는데 그 정체는 그동안 거부해왔던 ‘중국화’였다고 단정하고 있다. 곧, 6세기 법흥왕을 전후한 시기가 한국인의 DNA를 표방하는 기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장을 바꿔서 ‘고대 한민족을 말하다’에서 고대 한민족 글씨의 두드러지는 특징인 둥글둥글한 곡선의 형태는 천성이 착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고대 한민족의 특성에 딱 들어맞는 용어가 ‘네오테니(neoteny)’라고 일갈한다. 이 네오테니 현상은 어린이화 또는 유년화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생물이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의 모습을 유지하도록 진화하는 경우라고 한다. 다시 말해, 둥글고 불규칙하며 자유분방한 고대 한민족의 글씨는 어린아이 필체의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씨에서 한국인의 DNA를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물론 이를 방해하는 것이 중국문화의 유입이며, 따라서 고대 한민족의 글씨 원형은 ‘어린아이 한국인’의 실체를 제대로 추적할 때라야 만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제2부에서는 한민족 DNA의 계승과 변화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삼국시대의 무쇠처럼 강인한 신라, 당당하고 늠름한 고구려, 우아하고 맑은 백제 등이 다양한 글씨를 통해 중국화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감 넘치는 통일신라, 한민족의 역사인 발해, 세련된 고려 그리고 완고한 조선 등으로 글씨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실제 이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서체의 변화에 대한 설명은 기존의 연구 성과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으며, ‘과연(果然)’이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 한국인’을 찾기 위한 자료의 섭렵은 컬렉터로서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 한순간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려고 하는 부분은 결국 ‘단군의 조상을 찾아서’라는 내용인바, 여기에서는 홍산문화와 흑피옥, 흑피옥에 새겨진 글씨를 추적하여 고대 한민족을 닮은 글씨체를 찾아야 한다는 견지이다. 물론 이러한 고고학적 발굴이 앞으로 지속해서 추진되고, 거기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거나 기존의 논지를 보강할 수 있는 자료의 출현은 기대만발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를 둘러싼 자료의 덤불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존의 역사학자와 상고사학자 그리고 재야사학자의 숙제가 제기되고 있다.이 책을 선택할 때는 여러 고민이 앞섰지만, 책을 일별하면서 거기에 내포된 다양한 의견의 수렴과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는 데 대한 창의적인(?) 사고에 공감한다.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원융의 지혜가 필요하며, 또한 새로운 학설을 고집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 성과와 원만한 접합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루아침에 고대 한민족의 역사를 어느 하나의 도구로 추적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논지와 다대한 자료, 그리고 새로운 해석에 상호 경청하며, 각자의 노력에 대한 박수도 아낌없이 쳐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과거를 통한 우리의 미래가 멀리서나마 보이기 때문이다.관심 있는 독자의 일독을 권해 본다
김희만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의 이해』,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등의 공저서와 「수여선의 개통과 사회변화」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뉴스피크에 ‘헌책방의 인문학’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격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