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호 [안은미 프로젝트] 수원에 춤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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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 프로젝트] 안은미의 1분 59초 프로젝트

수원에 춤바람이 불었다!



글 김예림 무용평론가 사진 김신



2015 공연예술지원사업 중 무용부문 기대작으로 수원문화재단과 안무가 안은미가 함께 주최한 ‘1분 59초 프로젝트’가 12월 12일 오후 6시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공연되었다. 1분 59초 프로젝트는 ‘춤은 특별한 교육 없이도 스스로를 표현 할 수 있는 언어’라는 20세기 춤 혁명가 ‘피나바우쉬’의 예술정신을 바탕으로 일반시민들이 1분 59초 동안 자신만의 무대를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안은미무용단은 올해 9월 공개모집을 통해 선정된 시민 30명을 대상으로 1분 59초 동안 자신의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몸이 가지는 움직임의 역할’ 워크숍 및 ‘1분 59초 동안 자발적인 안무의 몽타주로 감흥의 공동체를 만드는 비결’ 등 인문학 강좌를 실시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안은미 예술감독은 “오디션 공고 모집을 통해 신청자를 접수하고 워크숍 과정을 통해 30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이 만들어낸 1분59초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전무후무한 이러한 공연형식의 결과는 예측불허이다. 각자의 몸에서 발현하는 자기증식을 위한 무한한 세포분열에너지는 기존가치의 잣대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언어를 창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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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

불안전하지만 당대의 시간성을 지닌 몸으로서의 이들의 움직임은 살아있는 역사적 시간을 기록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익숙하지만 아주 낯선 장소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한다. 비전문가인 그들이 불현듯 내보이는 아이디어와 표현력이 전문가의 고답적 그것을 넘어서는 것에 감탄한다는 말도 함께 했다. 이는 전문예술가와 대중이 상호간에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치는 예술흐름으로 이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감독 안은미의 유쾌한 인사말로 시작된 공연은 30명의 참가자가 숨 가쁘게 각자의 1분 59초를 채워낸 무대로 이어졌다. 다양한 참가자만큼 각자의 이야기도 다양하다. 일본 아이돌 그룹을 연상시키는 립싱크 댄스부터 1분 59초간 가만히 앉아 뜨개질을 하는 주부, 색색의 천을 들고 춤구성을 안무한 3인무, 못 다한 세월호이야기, 물감 퍼포먼스, 그 밖에 욕망과 분노, 애정과 슬픔을 토해내는 30명은 아름다운 도전위에 서 있었다.



이들의 설익은 이야기가 공연물이 되기 위해서는 안은미 특유의 감각이 실린 영상과 조명, 무엇보다 30개 조각의 배열순서와 간격의 영민함이 탄탄한 기저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별것 아닌 스카프 춤에 볼레로 음악과 폭죽영상이 더해져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나, 출연자 없이 흑백으로 촬영된 ‘회전하는 여자’의 상영은 야외 판매여성의 노동을 신성한 예술로 변환하며 1분 만에 울컥하게 만드는 힘을 갖기도 했다.
책가방 속 물건을 꺼내며 자신을 보여준 어린이부터 십장도 앞에서 한복을 입고 춤추는 두 어르신, 자녀의 안녕을 기도하는 목회자 부부, 온 몸을 붉게 칠한 락커 등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면서 서툴기 때문에 재미있는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몇몇의 이야기는 컨템포러리 예술의 작가정신이 엿보이는 기발하고 심오한 것이기도 했다. 자기 목소리로 제작한 음원 앞에서 끝날 때까지 “적당히 해”를 외친 조대현, 시대별 춤과 어린 시절 춤추는 사진·영상을 보여주며 “당신의 첫 번째 춤은 언제였는가?” 묻는 오윤명, 감각적 영상을 보여준 임다슬 등은 아마추어를 넘어선 창의력을 보여주었다.
녹색 꽃가루를 뿌리며 안은미 무용단원들과 함께 장식한 엔딩은 지난 3개월간의 과정을 마치는 축제의 순간이었다.안은미는 자신의 무용단이 2010년 두산아트센터에 상주단체로 입주하면서 커뮤니티 댄스의 실험을 본격적으로 관객에게 선보였다. 춤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일반인과 함께 무대를 만들며 2011년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시작으로 청소년과 함께 ‘사심없는 땐쓰’(2012), 아저씨들과 함께한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2013), 도시가 춤추고 전세대가 어울린 ‘스펙타큘러 팔팔땐쓰’(2014)까지 네 편의 대작을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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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까지는 안은미가 만든 안무가 주를 이루고 전문무용수가 리드하는 작품에 일반인이 참여한 정도였으나 2014년 8월 마로니에축제에 발표한 커뮤니티댄스 ‘Ok. Let’s talk about SEX!‘(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의 창작력이 발휘된 무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6개월간 진행 된 교육과정인 ‘안은미와 함께하는 어른들을 위한 몸 놀이 공장 3355’의 결과물로 발표된 Ok, Let's talk about SEX!를 만들며 안은미무용단은 비로소 비전문가들의 무대에 대한 제작력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관객과 참가자 모두의 흥미를 유발하는 안은미무용단만의 커뮤니티댄스 스타일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스타일은 하나의 공식처럼 체계화되고 있는데, “안은미 무용단의 전문무용수가 출연하지만 작품의 주를 이루는 인물은 춤의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고, 이들이 쏟아내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안은미의 구성력과 미적 감각으로 다듬어져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다.
Ok, Let’s talk about SEX! 발표 1달 후에는 한국공연예술센터 기획 ‘공원은 공연 중’ 프로그램으로 ‘핑퐁파티’를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커뮤니티댄스의 또 다른 방법론을 찾는 이 퍼포먼스는 일반인이 탁구를 치며 만들어내는 탁구공 소리와 전문 뮤지션의 음악이 결합한 인터렉티브 사운드에 안은미컴퍼니의 전문무용수들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으로, 공연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민들이 경험 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었다.
안은미는 1990년대 한국과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무용가로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컨템포러리 댄스의 선두에서 동시대적 감각을 가장 발 빠르게 읽어가는 무용가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누구보다 빨리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트렌드와 수요를 읽어내는 그는 대중뿐 아니라 무용계, 예술계 나아가 한국의 문화계, 세계의 예술 흐름이 원하는 ‘Needs’를 상품화 하는데 탁월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선택한 오늘의 공연형태는 1분 59초 프로젝트이다. 부산 LIG아트홀에서 처음 선보인 1분 59초 프로젝트는 앞서 소개한 커뮤니티 댄스 작품들보다 무대 전체를 일반인이 꾸미는 비중이 큰, 그야말로 본격적인 날것의 댄스를 만들기 시작한 첫 프로젝트이다. 교육과정이 포함된 Ok, Let's talk about SEX!에서 얻은 영감과 방법론을 기반으로 발표된 1분 59초 프로젝트는 부산에 이어 경기창작센터에서도 제작되었고, 올 해 8월 동탄복합문화센터 야외공연장과 12월 수원문화재단까지 전국 곳곳에서 춤바람을 일으키며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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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거리가 먼 일반인들에게 춤을 통한 새로운 자기표현 및 소통방법을 전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1분 59초 프로젝트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거쳐 참가자를 선발하고 약 3개월간 안은미 예술감독과의 토론과 워크숍, 인문학 강의 등의 시간을 거쳐 무대에 오른다. 부산이후 경기창작센터에 상주단체로 입주하며 센터의 입주 작가를 비롯한 제부도 인근 주민 들을 참가자로 모아 새로운 1분 59초 프로젝트를 선보였고, 2015년 8월에는 화성시문화재단 주최로 동탄복합문화센터 야외공연장에서 28명 규모로 공연하기도 했다. 이번 수원문화재단 주최로 SK아트리움에서 공연된 1분 59초 프로젝트는 4번째 무대가 된다. 오디션을 통해 신청자 가운데 구성원을 뽑는데 지역에 따라 30명~50명 규모로 시작된 것이 3개월의 교육기간동안 포기자 등이 발생하면서 최종 참가 인원수가 정해진다고 한다.
수원에서의 프로젝트는 30명의 참가자가 30개의 에피소드를 발표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술창작이라는 것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얻은 이도 있을 것이고, 참아왔던 분노나 숨겼던 끼를 분출한 것으로 욕구해소와 치유의 시간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참가의도와 결과물은 모두 달랐지만 30명이 보여준 공통의 인상은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기분 좋은 떨림과 긴장이 고스란히 객석에 전달된 1분 59초 프로젝트는 나이와 직업, 취향을 뛰어 넘는 몸의 파티였다.
결과적으로 1분 59초 프로젝트는 발성이나 걷기처럼 가장 기초적인 퍼포머의 요건조차 어설프기 그지없는 비전문인들의 몸을 통해 보다 직설적으로 관객의 동의를 얻어냈다. 어쩌면 안은미의 커뮤니티댄스가 대상만 다를 뿐 수평적 반복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일반인 참여 프로젝트는 점차 집단에서 개인으로 세분화되고 깊어지며 진화하고 있다. 물론 스피디한 진행과 비비드 컬러로 장식된 키치적 무대는 그의 브랜드 또는 낙관처럼 유지되고 있다. 2010년 안은미의 일반인 참여 프로젝트의 시작은 아마추어리즘의 선호 트렌드와 맞물려 성공을 거두었다. 현란한 볼거리에 집중하던 과거와 달리 개념과 논리를 담아내기 시작한 점도 의도했든 아니던 트렌드의 선두그룹을 지키는데 부합했다. 그렇다고 타 개념주의 안무가들처럼 미완의 습작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매 공연 높은 완성도와 상품성으로 대중의 눈높이 역시 만족시키고 있다. 자신의 작품색 위에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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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참가자들이 한데 어울려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최근 더욱 호응을 얻고 있는 아마추어리즘은 공연예술뿐 아니라 시각예술, 대중문화, 상업적 홍보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역으로 1만 시간을 노력해 도달한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들의 입지와 노력이 아마추어리즘에 밀려 대중의 시선에서 소외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매끈한 무용수들은 안무의도를 방해하는 요소일까? 아마도 2015년의 관객들에게 그 답은 ‘YES’인 것 같다.
근래의 관객은 춤의 구성적 형태적 볼거리보다 옆집 아가씨, 앞집 총각이 들려주는 것 같은 사실주의적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더 잘 공감하고 있다. 오늘의 수원 무대처럼 말이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가 국내뿐 아니라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은 데에도 같은 이유가 있다. 아마추어리즘의 취약점을 보완할 연출력과 쇼맨십, 논리를 갖추고 있는 그는 여전히 일반인 참여 공연의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있다. 프로페셔널리즘과 아마추어리즘, 볼거리와 개념, 대중성과 예술성 등 다방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안은미는 얄미우리만치 단단한 방어력으로 변이를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은미의 1분 59초 프로젝트는 출연자들에게는 일생에 처음이었을 자기고백을 온 몸으로 토해냄으로 치유와 해방의 경험을, 관객에게는 마치 30개의 TV채널을 본 것 같은 유쾌한 잔상을 남겼다.



김예림은 무용수이자 안무가 출신의 평론가로서 현장경험을 토대로 과거 동지였던 무용가들을 독려하는 시각으로 평론활동을 하고 있다. 월간 ‘춤과 사람들’의 편집위원이며 다양한 매체에 자유기고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위원과 전국 문화재단 심의, 평가를 통해 예술지원의 바람직한 자리매김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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