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호 [담장넘어] 연암의 흔적을 좇아 신 열하일기를 쓰다
쌍탑산
산해관에서 열하까지
글・사진 박설희 시인
산해관에서 인간의 끝없는 갈증을 보다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크기를 모르고,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모르며, 산해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과 높음을 모를 것이다.”(박지원, 「장대기」)드디어 산해관(山海關)에 도착했다. 산해관은 요동에서 북경으로 가는 중요 통로로 만리장성 동쪽 끝에 있는 관문이다.
산, 강물, 평지, 바다 위 만리장성의 모습을 두루 볼 수 있는 곳이다. 중국인들은 문명과 비문명, 중원과 변방, 중화와 오랑캐를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했으니 이제 비로소 문명의 세계로 들어선 셈인가.
산해관은 각산과 발해를 합쳐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중 ‘천하제일관’이라는 현판이 붙은 제3관으로 들어선다. 해자 위에 오리가 떠 있고 낙타는 손님을 기다리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통관문첩을 판매하니 평화롭기 그지없다.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성곽 위에 서니 시야가 탁 트이면서 멀리 제2관이 보인다.
‘천하제일관’은 만리장성 동쪽 끝에서 만나는 최초의 관문이라는 의미다. 명청 교체기 막바지에 청에 종군한 소현세자는 명장수 오삼계에 의해 산해관이 열리고 청군이 무혈입성하는 현장에 동행함으로써 명의 몰락을 목도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 망설임이다. 연암 또한 그랬다.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도 이 강을 건너면 영영 조선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수도 없이 뒤돌아보았고, 책문에서도 한낱 변경에 불과한 그곳의 질서정연한 거리 모습에 뒤돌아서고 싶어했다.
시를 쓰는 내가 이 여행을 통해 얻는 게 무엇일까? 오히려 시선으로 압도해 들어오는 온갖 풍경과 새로운 시각적 자극에 매몰되는 게 아닐까? 끝없는 의구심이 떠올랐고 내가 과연 연암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유와 상상을 펼쳐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발해만의 새벽이 밝아오고 내 오른쪽엔 만리장성의 끄트머리인 노룡두가, 왼쪽엔 큰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가 보인다.
일출을 보러 나온 중국인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5시40분. 해는 벌써 떠 있고 바다를 향한 내 시선 끝 어딘가에 인천이나 평택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밤 사이 내린 비로 인해 자그마한 웅덩이가 생겼다. 그 한가운데에서 참새 한 마리가 목을 축이고 있다.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 보고, 또 한 모금 머금고 구름 보고……. 햇빛이 비치면 곧 없어질 웅덩이에서 참새 몇 마리가 목을 축일 수 있는 걸까.
참새의 웅덩이와 노룡두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용은 온 바다를 들이켜도 목마르다 할 텐데. 참새와 용의 갈증은 얼마나 다른가’하는 생각을 했다.
“몽염이 만리장성을 쌓아서 오랑캐를 막는다고 했으나, 정작 진나라를 멸망시킨 오랑캐는 시황의 아들인 호해니 집안에 오랑캐를 키운 꼴이다. 서달이 산해관을 설치하여 오랑캐인 여진족을 막았으나 오삼계가 산해관 관문을 열어 오랑캐를 맞이하기에 급급했다.”(박지원,「산해관기」) 역사의 교훈은 외부의 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위)노룡두, (아래)피서산장
열하로 가로지르기
지금까지 우리의 여정은 연행로를 착실히 따라왔고 그것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와 대부분 겹쳤을 것이다. 요동벌판, 선조들이 활 쏘며 말 달리던 땅을 바퀴로 이동하면서 내내 막막하고 먹먹했다. 흙먼지에 발을 디디면 땅위에 가라앉아 있던 소리들이 몇 겹의 지층을 뚫고 솟아오를 것만 같았다. 칼과 창 소리, 말발굽 소리, 웅녀의 아들의 아들들의 함성 소리. 이제부턴 조금 다르다. 연암은 산해관에서 북경을 통해 열하로 갔다가 다시 북경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한정된 시간 탓에 산해관에서 곧장 열하로 갔다가 북경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북경은 항일승전 70주년 행사로 사정이 복잡해졌다고 한다. 어쩌면 자금성을 폐쇄해서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해 걱정이 됐다.
산해관에서 열하 가는 길은 고속도로로 약 3시간이 걸린다.
산이 웅장하고 터널의 연속이다. 열하에 다가갈수록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연암에, 『열하일기』에 짓눌려서는 내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지만 어쩌면 그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열하는 지금은 승덕(承德)이라 불린다. 연암이 열하에서 처음 본 것은 쌍탑산과 경추산이었지만 나는 아파트와 도시를 길게 가르는 강물을 본다. 이곳은 관제묘로 대변되는 도교, 공자를 모시는 문묘, 티베트불교 사원 등이 혼재해 있다. 특히 문묘의 태학관은 연암이 며칠을 머물던 공간으로 복원이 잘 돼 있다. 그리고 문화적 배경 외에도 시선을 끄는 것은 경추봉, 쌍탑산 등 지질적 특성 때문에 장관을 이룬 풍광들이다. 지금까지 여정 중에 가장 이국적이다. 경추봉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맷돌 손잡이나 남근으로 보이는데 연암은 그것을 다듬이방망이로 묘사했다. 피서산장은 원래 몽고의 목장지였으나 청대에는 황제의 휴양지로 쓰였으며 그 넓이가 오백만평이라니 무지 넓다. 청나라 황제들은 이곳 승덕에서 짧게는 여름 한 철, 길게는 6개월을 보냈다고 하는데 단순히 피서와 휴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승덕의 지정학적 위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천하의 우환은 언제나 북쪽 오랑캐에게 있으니, 그들을 복종시키기까지 강희 시절부터 열하에 궁궐을 짓고 몽고의 막강한 군사들을 유숙시켰다. 중국의 수고를 덜고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 법이 이와 같으니, 군사 비용은 줄이고 변방을 튼튼하게 한 셈이다.
지금 황제는 그 자신이 직접 이들을 통솔하여 열하에 살면서 변방을 지키고 있다. 서번은 억세고 사나우나 황교(라마교)를 몹시 경외하니, 황제는 그 풍속을 따라서 몸소 자신이 황교를 숭앙하고 받들며, 그 나라 법사를 맞이하여 궁궐을 거창하게 꾸며서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명색뿐인 왕으로 봉함으로써 그들의 세력을 꺾었다. 이것이 바로 청나라 사람들이 이웃 사방 나라를 제압하는 전술이다.”(『열하일기』 「심세편」)황금궁전으로 알려진 판첸라마 행궁, 소포탈라궁에서 보듯 이곳은 티베트 양식과 중국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피서산장은 소박한 행궁과 드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잘 어우러져 휴일이면 이곳을 찾는 중국인들로 미어터진다. 기기묘묘한 구름과 연꽃, 시원한 바람과 넓고 맑은 호수를 둘러보다 삶이 늘 오늘처럼 평화로웠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열하의 밤은 고요하고 서늘하고 깊다. 거리 곳곳에서 벽, 자동차, 보도블럭, 사람들의 배와 등짝 등 영상이 투영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지금까지 기록한 영상이 투영되었고 나는 열하 강가에서 산해관에 관한 시를 낭독했다. 일종의 퍼포먼스다. 그리고 일행들과 함께 빛과 어둠이 잠긴 강물을 바라보며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술 한잔을 나누었다.
연암이 열하에 도착한 첫날 밤, “애석하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밤, 이렇게 좋은 달빛에 함께 놀 사람이 없다니”라고 한 점이나 “내 평생 기이하고 괴상한 볼거리를 열하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본 적이 없었다”고 한 걸 보면 이곳이 가진 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열하일기』 전체 분량 중 열하에서 보고 들은 것, 만난 사람들, 그 와중에 얻은 사색의 결과물 등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한편, 판첸라마 대소동은 한 편의 코메디였다. 판첸라마를 알현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어떻게 승려에게 머리를 숙이겠는가 하는 문제로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옥신각신하는 모습, 그리고 판첸라마에게서 받은 불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놓고 일대 격론을 벌이는 모습 등,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기 위한 유학자들의 모습은 연암이 “촌티를 면하기 어렵다”는 자평을 내릴 정도였다.
(위)징해루, (아래)천하제일관
승덕에서 중국의 저력을 보다
저녁엔 극을 관람했다. <정성왕조 강희대전>. 중국은 규모의 미학이 놀라운 곳이다. 강희제의 일생과 그의 통치 철학을 다룬 극인데 산 하나를 배경으로 수십 마리의 말이 무대를 질주하고 수백 명이 등장한다. 작년에 서안에서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장한가>를 본 적이 있다. 여산을 배경으로 사람이 날아다니고 화청지 물 속에서 무대가 올라오는 등 이미 놀라움을 경험해서인지 이 작품의 무대와 연출이 섬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극 중에서 문과 무, 유불도, 법, 서양과학 등을 통해 강희제가 추구했던 통치철학,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아는 자가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대사, “록”(鹿)과 “정”(鼎)의 의미가 잘 다가왔다. 특히 “나의 별은 무엇인가”를 반복해서 독백하는 강희제의 대사 중 동아시아에서 지상의 별이 될 것임을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새벽의 열하는 승덕이라는 이름의 기원을 환기시켜 주었다. 새벽 6시. 열하 강변의 보도블럭 위에서는 남녀노소 십여 명이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다. 일 미터가 넘는 긴 붓으로 서서 글씨를 쓰는 노인도 있다. 물을 찍어 쓰는 물붓이요, 물글씨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글씨들을 구경하고 그 중 한 노인이 글씨의 획이 잘못 되었다고 이렇게 쓰는 거라고 시연을 해보이자 글씨의 주인은 겸손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이에 먼저 쓴 글자는 점점이 증발하고 한 두 시간 뒤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쓰는 순간이 중요할 뿐 글자를 굳이 남겨서 뭐할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붓을 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곳. 비가 내리자 인간의 물글씨와 하늘의 물글씨가 섞여 열하로 흘러든다. 중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교댄스의 열풍이 아닌 물붓의 모습이야말로 중국의 참 저력이 아닐까. 승덕을 떠나려는데 귀뚜라미와 메뚜기를 판매하는 상인이 보인다. 물어보니 마리당 20원이란다. 일행 중 한 명이 수첩을 꺼내 이름과 가격 등을 필담으로 묻는다. 그런데 저희들끼리 시끄러울 정도로 울던 풀벌레들이 천둥이 한번 크게 치자 잠잠하다. 움직임도 없다. 반짝이는 눈만 보인다.
박설희 시인은 화성에 반해 수원으로 이사 와 이십 년 가까이 살고 있다. 2003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이 있다. 강의와 글쓰기를 하는 틈틈이 힘닿는 대로 여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