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호 [책 나들이] 책은 제목으로 읽는다?!

[책 나들이]

책은 제목으로 읽는다?!



글 김희만 역사학자 문학박사



주량즈(朱良志) 지음/서진희 옮김, 『인문정신으로 동양 예술을 탐하다』 알마

주량즈(朱良志) 지음/신원봉 옮김,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 알마



책 나들이를 한다. 여느 때보다 신이 난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다. 잘 알지 못하는 세상과 마주하는 것은 두려움도 있지만 한편 설레는 마음도 여기에 더 한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그저 평범한 책보다는 뭔가 색다른 책이 다가와 준다면 더욱 감사하다.
오늘 만난 책들은 우선 그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같은 저자가 유사한 내용으로 다양한 지식의 세계를 펼쳐주는데 황홀해진다. 이러한 통찰력과 창의성 그리고 박식함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우선 이 책들은 그 책의 두께가 일반 책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된다.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제목도 거창하지 않은가. 그런데 원제(原題)보다 책 제목이 좋아서 일까, 우리는 가끔 “책은 제목으로 읽는다?!”
『인문정신으로 동양 예술을 탐하다』는 그 원래 이름이 『중국예술론 10강』이며,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는 『중국미학 15강』이다. 이들 책 제목이 원제를 능가한다. 이 두 책은 ‘동양(중국)예술을 감상하기 위한 동양의 인문학’이라는 설정이 가능하리라 본다. 베이징 대학 철학과 교수인 주량즈는 동양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하는 법과 인문사상의 요체, 그리고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각각 10강과 15강을 통해서 우리와 만나고 있다.
북송(北宋)의 서예가 미불(米芾)은 돌을 너무나 좋아해서 기이하게 생긴 돌을 수집하고 그 돌에게 큰절을 하며 “석형(石兄)이라고 불렀다. 태호석(太湖石)이라 불리는 이 돌은 중국 원림가(園林家)가 원림을 조성할 때 가장 중시한 것인데 미불은 태호석을 수척함(瘠), 뚫림(漏), 투명함(透), 주름짐(皺) 네 글자로 평했다. 이 네 글자는 태호석을 참으로 잘 표현한 것이다. 바위 하나로 천지를 알 수 있고 무딘 돌에 건곤(乾坤)이 갖추어져 있으니 이 네 글자는 중국 예술의 신비한 세계로 통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 글은 『인문정신으로 동양 예술을 탐하다』라는 책의 들어가는 말에 저자가 쓴 내용으로, 이를 이어서 네 글자에 대한 설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말미에는 ‘중국 예술이론을 음미하는 것은 참으로 태호석 하나를 감상하는 것과 같다’라고 정의하기에 이른다. 마치 돌 하나를 감상하면서 거기에 중국의 삼라만상을 조목조목 소개하는 듯한 저자의 글쓰기는 그 내용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 그지없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10강의 제목과 그 안의 소제목이 마치 시 한편을 연상시킨다. 1강을 보면 청향(聽香)이라 하여 ‘향기를 듣다’로 표현하면서 향기로운 소리가 들려오네, 차가운 향기는 예술에 스며들고, 타고난 향기를 지키다, 향기로 충만한 세계 등으로 운치가 저절로 느껴진다. 2강은 간무(看舞)라 하여 춤을 보는 것을 형상화한 것인데 고요함 속에서 약동을 추구하다, 약동 가운데서 억누름을 추구하다, 일상 속에서 취함을 추구하다, 끊어진 곳에서 활기를 찾다 등으로 이어진다.곡경(曲徑)의 굽이진 길은 그윽한 곳으로 통하고, 안개는 차가운 강으로 걷혀들고, 안개 속에서 꽃을 보다로 연결되며, 미화(微花)의 작은 꽃에서는 작은 정원의 풍치, 일각화의 여운, 큼과 작음의 구별, 작음의 두 가지 경계 등으로 이어진다.
고수(枯樹)는 마른 나무이며, 공산(空山)은 텅 빈 산을, 냉월(冷月)은 차가운 달을, 화풍(和風)은 부드러운 바람을, 혜검(慧劍)은 지혜의 검을, 편주(扁舟)는 조각배를 의미한다. 이 책의 10강 내내 중국 예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거기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주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한층 돋궈준다. 또한 거기에 삽입된 사진과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하다. 그래서일까. 이 내용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소개하라고 하면 그것 또한 가혹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권하고 싶다. 읽어주시기를.
한편, 이보다 먼저 출판된 책이 『미학으로 동양 인문학을 꿰뚫다』로 『중국미학 15강』 이다. 이 책은 앞의 책보다 멋지게 슈트 차림의 단정한 옷차림과 아름다운 볼륨감을 여과 없이 자랑한다. 따라서 값도 그만큼 가치를 과시한다. 저자는 이런 말로 시작한다. ‘자신과 만물을 하나로 융합하는 생명초월의 미학’ 이라고.중국과 서양은 원래 다른 문명에 속해 있어 사상 또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거칠게 말하면 중국철학의 중점은 생명에 있고, 서양 전통철학의 중점은 이성과 지식에 있다. 중국철학은 일종의 생명철학이다. 우주와 인생을 하나의 큰 생명으로 보아, 한데 움직이고 같이 기뻐하는 큰 전체로 본다. 생명들은 서로 끌어당기고 요동치면서 혼연일체가 된다. 내 마음의 주재는 바로 천지만물의 주재다. 중국철학의 핵심적 관심은 바로 외재적 물질세계를 초월해 우주적 생명세계로 융합해 들어가 자신의 성령을 펼쳐내는 데 있다.
이와 같이 저자는 중국미학의 기본 내용을 ‘생명초월’의 정신에 한정시켜 논의하고 있다. 이 강의를 다시 세분화하면, 첫째는 근원론으로 도교, 선종, 유교, 초사(楚辭) 및 기화철학이며, 둘째는 형태론으로 지식, 공간, 시간, 그리고 색상(色相)세계의 바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셋째는 범주론으로 경계, 화해(和諧), 묘오(妙悟), 형신(形神) 및 양기(養氣)의 다섯 가지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각 장의 제목에 담긴 내용을 보노라면 가히 시(詩)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신선(神仙)의 세계가 이런 곳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의 즐거움, 자연의 큰 마름질은 잘게 쪼개지 않는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경계, 떨어진 꽃은 말이 없다, 허공을 밟고 그림자를 밟다, 시간의 껍질을 벗기다, 달이 온 강에 미치니 도처가 모두 둥글다, 큰 기교는 서투르게 보인다, 자연의 큰 기운을 들이마신다, 오묘한 깨달음의 핵심은 세계 속으로 돌아오는데 있다, 신(神)을 중시하고 형(形)을 가볍게 여기다 등 이루 열거하기가 어렵다.
이런 구절이 찾아진다.
초사(楚辭)는 왜 적막한 아지랑이로 이런 향기로운 세계를 덮었을까? 이것이 바로 초사의 높고 오묘한 곳이요, 신녀의 미묘하고도 아름다운 곳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전통 중국예술의 변함없는 경계라 말할 수 있으며, 거기에는 일종의 독특한 미감이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것은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일종의 성령의 집착이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스스로 잊기 어렵고, 떨치려 해도 떠나지 않는다. 스스로 위로하고 해소하여 억지로 만족하려 하니, 그 만족이 애처롭다.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 속으로 던져지고 피할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하니, 봄을 아쉬워해도 봄이 절로 가버리고 가을을 애처로워해도 가을바람이 거세진다.
눈물을 흘리며 꽃에게 물으니 꽃이 대답하지 않고, 높이 나는 새에게 마음을 기대보나 새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세월은 마치 물과 같은데도 취약하고 민감하기 짝이 없는 심령으로 응대하고, 운명은 헤아리기 어려워 매번 운명의 희롱을 참고 견딘다. 조각난 구름과 잔인한 비에는 아무런 정취가 없어 아침저녁이 적막하며, 돌아갈 길이 어딘지 몰라 끝없이 유랑한다. 적막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초사의 이런 경계는 미학적으로 대단히 높은 가치가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 구절이 짧지 않지만, 그저 중략(中略)을 하고 싶지 않다. 찬찬히 읽어보시라. 이 책 속에 담긴 내용이 대개 이런 식이다. 요즈음 인문학과 연관해서 많은 책들이 여기저기 책 나들이를 하고 있다. 볼수록 정감이 느껴지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형식에 치우쳐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종이뭉치들도 적지 않다. 이 책들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나의 삶과 지식에 조약돌을 던져준다. 그 작은 돌이 가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여운이 되기를 바라면서, 일독을 권해 본다.



김희만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의 이해』,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등의 공저서와 「수여선의 개통과 사회변화」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뉴스피크에 ‘헌책방의 인문학’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격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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