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 [공간탐색] '안녕?’에서 ‘안녕~’까지,


[공간탐색] 소다미술관 온종일도 거뜬한 미술관 놀이터

'안녕?’에서 ‘안녕~’까지,



글 이미솔 문화기획자 사진 오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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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미술관의 트레이드마크인 콘테이너 박스

정체불명의 ‘콘크리트 상자’가 등장했다. 지난 2010년의 일이었다. 뜨거운 불가마를 품은 찜질방이 될 꿈을 꾸며 자리를 잡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상자들이었다. 3년의 기다림을 거친 상자들은 2013년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 뜨거운 여름부터 시작된 공사를 거쳐 이듬해 가을, ‘소다 미술관’으로 시원하게 재탄생했다. 부지런히 지하철을 타고 병점역에서 탄 버스를 내려 도착한 안녕촌은 아직은 아파트 숲보다 초록이 더 많이 보이는 차붓한 곳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소다미술관을 마주했다. 개발중인 택지와 그 뒤로 융건릉(사적 제206호)을 배경으로 ‘척’서있는 모습이 씩씩해 보였다.



모습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소다(SODA)’라는 이름은 ‘건축과 디자인의 공간(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을 줄인 말이다. 국내 전시 공간 중에서는 흔치 않게 디자인과 건축을 주제로 하는 곳이 생긴 것이다. 방치된 미완의 건물을 재건축한 탄생의 배경을 고스란히 담은 첫 전시으로 출발한 소다미술관은 개관한 해에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커뮤니케이션 부문 본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레드닷은 독일의 iF디자인 상, 미국의 IDEA디자인 상과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상으로 인정받는 상이다. 개관 전에 세계적인 상을 타면서 인정을 받은 배경 뒤에는 젊고 열정 넘치는 건축가와 기획자들이 있었다. 건축주에게 미술관 개관을 제안한 젊은 건축가 권순엽(디자인 스튜디오 SOAP 대표)와 장동선 소다미술관 관장은 미완의 찜질방 건물을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베드타운 화성시에 필요한 내용이 무얼까 고민했다. 결국, 가장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미술관 형태를 선택했다. 동탄 신도시와 개발의 격차가 큰 안녕동에서 주민과 외부인원을 끌어들이기에 적합한 건축이었다. 미완의 건축물을 다시 손보는 일에서 출발하여 미술관의 기획부터 공간의 가치 창출, 사업적 운영까지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젊은 직원들과 함께 움직인 전시의 기획력이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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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전시 의 ‘노천탕속의 사람(2016)’ 노순천 作
소다미술관 내 디자인숍

찜질방을 품은 편안한 전시장

튼튼해보이는 콘크리트 블록 속으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1층의 아기자기한 디자인 숍과 레스토랑의 환한 테이블이 먼저 우리를 반겨준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카페가 딸린 편집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디자인 용품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매장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고, 로비이자 레스토랑에 보이는 탁자와 의자는 문득 안도감을 줬다. 종종 전시장을 찾는 분들은 공감하실텐데, 미술관의 전시장에 들어설 때는 작은 각오를 하게 된다. 앉을 곳이 마련되는 전시장은 아주 적어서, 앞으로 30분에서 한시간 정도는 ‘전시장에 서 있어야 한다’는 각오로 말이다. 그런데 로비에서부터 넓은 탁자와 의자, 그리고 커피가 보이니 느긋하게 전시를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재입장이 무제한이라니 친절하다. 그날만 무제한인 게 아니라 입장권을 한 번 사면 그 전시가 끝날 때까지 언제라도 다시 입장할 수 있다. 언제라도 입장료 걱정 없이 공간을 찾도록 준비한 배려가 감동적이었다.
높은 천장과 큰 창은 그 배려만큼 공간을 개방적으로 보이게 했다. 찜질방에 가면 창문도 거의 없고 불가마 방소금 방아이스 방 등 폐쇄적인 공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높은 층고와 기본적인 벽 구조는 살리되 대부분을 틔워서 열린 공간을 조성했다. 관람 후 커피 한잔을 마음 속에 점찍어 두고 직진하면 가장 넓은 실내공간인 주제 전시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주제 전시가 열린다. 100% 기획전으로 돌아가는 이곳은 작년 부터 올해 초까지이 열렸고, 올해 첫 전시로는 지난 3월 5일부터 <디자인 스펙트럼: 색색의 디자인을 보다>와 <스페이셜 드로잉(SPATIAL DRAWING)> 전이 함께 막을 열었다. 각각 주제전시관과 야외에서 만날 수 있다.



관람객 중심의 열린 공간



실내 전시공간 만큼이나 소다미술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공간은 로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잔디밭과 루플레스 갤러리(Roofless Gallery)였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과 관람객이 덩그러니 자리하는 일반적인 전시장의 구조와 달리 공간 안에서 오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다. 불필요하게 권위적인 분위기를 없애고, 동네 마실 나가듯 편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장동선 관장의 말대로 미술관은 사용자 친화적인 공간이었다.
사용자에게 편안한 공간, 그리고 많은 선택지를 제시함으로써 보다 능동적으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쇼핑하거나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며 머물다 보면 공간을 이해하고 또 친숙해질 수 있다고 장동선 관장은 설명했다.
레스토랑 뒤로 펼쳐진 야외 공간에는 잔디가 깔렸고 그 너머에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워크숍 공간 ‘플레이박스’가 자리한다. 아이들의 감각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건축시각 소재의 교육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공간을 누리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탁 트인 공간은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편안한 놀이와 휴식을 제공한다.
잔디밭 옆으로는 천장을 떼어낸 루플레스 갤러리가 있다.
실내인 것 같기도 하고 야외인 것 같기도 한 이곳은 여러칸이 복잡한 구조를 가진 콘크리트 구조물로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설치 전시가 주로 이루어지고, 작품이 없을 때에도 벽사이를 거닐며 산책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 자체가 지니는 강한 개성 때문에 이곳에 설치 작업을 펼치는 작가에게는 공간과 협업을 이루어내는 것이 필수 과제이다. 공모를 통해서 신진 작가들에게 주로 이 기회가 주어지는데, 소다미술관의 큐레이터는 많은 작가가 이곳에서의 전시를 통해 한 걸음 씩 성장하기도 했다는 후문을 전해주었다. 신진 작가들은 <플레이그라운드:MOVEMENT 전> 공모를 통해 루플레스 갤러리와 루프덱(Roof Deck), 아트테이너(ARTainer) 등에서 전시를 연다.
미술관 공간을 철저하게 사용자의 편의와 즐거움을 위해 구성한 점이 소다미술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예술가와 작품은 뒷전이란 이야기일까? 장동선 관장은 넛지효과(Nudge Effect)를 설명했다. 팔꿈치로 쿡 찌르는 행동에서 출발하는 넛지효과는 대상에게 직접 지시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작은 데에서부터 ‘슬쩍’ 변화를 유도한다. 어떤 이유로든 미술관을 많이 찾고, 작품과 함께 호흡한 체험은 나중에 더욱 다양한 전시 관람과 작품 구매로까지 이어진다. 예술과 친숙하고 이를 누릴 줄 아는 인구가 늘어나는 거다. 이는 문화 기반의 확대로 직결된다. 결과적으로 작가들에게도 좋은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아, 그리고 100% 기획전으로 운영되는 주 전시공간과 함께 디자이너와 건축가, 예술가에게 개방되어있는 다양한 공모도 잊으면 안 되겠다. 2층에 신진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전시공간 ‘디큐브 드링크박스’가 그 몫을 탄탄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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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지붕 없이 오픈되어 있는 공간인 루프레스 갤러리(Roofless Gallery)
미술관 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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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선 소다미술관 관장

공간과 사람, 공간과 작품의 협업을 꿈꾸다

높은 기획력의 전시를 열기 위한 노력 만큼, 미술관이 담긴 지역과의 소통에도 공력을 기울인다. 애초 지역에 필요한 건축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소다미술관은 방문자의 60%가 6세 이하의 아이가 있는 가족들일 정도로 지역 주민들에게 예술로 스며드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플레이박스’와 그 앞으로 넓게 트인 잔디밭, 시점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설치 작품이 주가 되는 야외 공간에서는 놀 곳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예술 교육 프로그램과 놀이를 통해 또래와 마주하고 협력하며 자연스럽게 창의력을 길러주고자 한다. 창의력은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극과 또래 간의 소통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에서 준비된 정답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지향하는 미술관의 철학이 고스란히 공간에 반영됐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지역민과의 모임도 마련돼있다. 소다씨씨(CC, Community Connector)는 미술관을 방문했던 주민 자문단이다. 이들과 지역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운영이나 정책에 관한 것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만들어간다. 모임에 참석하는 주부들도 소다미술관과 서로 도움이 되기 위해 적극적이다. 전시나 행사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들에 관해서도 솔직한 응답을 들을 수 있는 자리이다.
미술관이 주민에게 내용을 제공하는 강연 등이 아니라, 사용자인 주민들이 미술관에 의견과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무척 개연성있는 소통의 방향이지만, 그동안 다른 미술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시도이기도 하다.
미술관 안의 공간을 소개하는 장동선 관장은 대화하는 내내 활기가 넘쳤다. 배낭을 메고 활짝 웃던 첫 인상은, 어떤 관람객과 작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변화할 준비가 돼있는 미술관 공간과도 닮아있었다. 공간에 들어오는 어떤 요소들과도 유기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라는 열려있는 공간. 소다미술관을 찾아가는 모든 분이 밀도 높은 예술과 디자인과 건축이 만나는 현장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아울러 그 안에서 공간과 멋진 협업을 만들어 보시기를 기대해 본다.

위 치 :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707번길 30
문 의 : 070-8915-9127
운영시간 : 10:00-19:00(월요일명절연휴 휴관)
홈페이지 : www.museumsoda.org



이미솔 문화기획자이자 칼럼니스트. 밀도있는 일과 풍부한 여가를 추구하는 바쁜 한량이다. 일간지와 잡지, 웹진 등에 기고해왔으며 현재 공동체 라디오 마포FM에서 프로그램 ‘골목한쪽’을 진행하며 방송활동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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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의 ‘드로잉 : 감각공생체 그리고 상상풍경(2005-2016)’ 백기은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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