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 [예술인열전] '엽기적인 그녀’ 곽재용 감독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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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바람의 색’ 촬영현장에서 스태프들과 곽재용 감독


[예술인열전]

'엽기적인 그녀’ 곽재용 감독의 귀환



글 안병현 자유기고가



곽재용 감독이 <시간이탈자>로 돌아왔다. 그가 메가폰을 잡았던 <엽기적인 그녀>,<클래식>, <무림여대생> 등과는 사못 다른 스릴러 영화다. <시간이탈자>는 지난 3월 13일 개봉 초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가도를 달리며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시간이탈자’는 과거를 바꿔 행복한 현재를 맞는 환타지 영화



곽 감독은 <시간이탈자>의 인기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탈자>는 제가 오랜만에 한국에서 대기업 자본과 배급 시스템에서 만든 영화입니다. 그리고 캐스팅도 요즘 핫한 조정석 이진욱 임수정 등 연기와 인기를 골고루 갖춘 배우들이 제 역할들을 잘 해주었고, 제 전작인 <클래식>에 대한 향수를 가진 관객들의 기대감도 있었다고 봅니다. 게다가 이번엔 제가 처음으로 요즘 대세 장르인 스릴러에 도전을 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봅니다.”
<시간이탈자>는 32년이란 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감성 추적 스릴러물로 영화팬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새로운 기법은 아니다. 예전부터 과거의 시간을 돌려서 현재를 바꾸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영화들이 있어왔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곽 감독은 지난 2003년에 <클래식>으로 이미 20년 간극을 두고 엄마와 딸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고, 2008년에 <싸이보그 그녀>를 통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싸이보그 여자친구를 보내주는 설정을 영화로 만든 적이 있다.
<시간이탈자>는 CJ 제작팀에서 영화진흥위원회 공모 당선작인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사들여 각색하는 과정이었고, 곽 감독이 그 이후에 합류하여 각색을 하고 감독을 맡게 되었다. 곽 감독은 시간을 넘나 드는 이러한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과거의 시간을 돌린다는 것은 현재로 서는 있을 수 없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지나간 후회스런 시간을 바꾸고 싶어 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탈자>는과거의 시간을 바꿈으로써 행복한 현재를 맞는 하나의 판타지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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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촬영 현장

일본과 중국에서도 활동 중인 곽재용 감독

곽 감독은 2008년 <싸이보그 그녀>, 2009년 <무림여대생> 이후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다. 한국에서 곽 감독의 필모그래프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는 한국 땅이 아닌 외국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2011년에 중국에서 <양귀비>를 준비 했었고, 2013년에 <미스 히스테리>를 촬영했다. 2014년에 <시간이탈자> 촬영 기간에 중국에서 <미스히스테리>가 개봉되어 좋은 성적을 냈고, 2015년에는 일본에서 <바람의 색>이란 영화를 촬영했고, 중국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중국판 영화의 촬영을 마친 상태고 현재 일본과 중국에서 동시에 후반 작업중이다.
현재 <미스 히스테리>는 일본에서 일본어 더빙판으로 개봉중이고 극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상태라고 곽 감독은 귀띔한다. 중국에서 일본영화인 <사이보그 그녀>가 대대적인 개봉을 했듯이, 현재 일본에서 중국영화인 <미스 히스테리>가개봉 중이다. 현재 일본과 중국은 서로 영화를 주고받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곽 감독의 <미스 히스테리>가 중국영화 전용관과 IPTV개봉을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수원출신으로 수원 화성은 영화의 좋은 소재



곽 감독은 수원출신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수원 화성 등 상징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는 수원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데뷔작인 <비오는 날 수채화>부터 <클래식>, <여친소>등등 수원에서 촬영팀이 상주하며 촬영을 했다. 하지만 수원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고 털어 놓는다.
“<시간이탈자>의 경우 전주부산강원도에서 촬영장소 협조는 물론 도로 차단, 제작비 지원까지 협조를 했지만 정작 수원시에서는 어떤 지원과 협조도 없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일본에서 <클래식> 촬영지를 보기 위해 찾아 왔던 관광객들이 발만 동동 구르다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수원시는 촬영지가 관광자원으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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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간이탈자’ 촬영현장에서의 곽재용 감독



화성연쇄살인사건 다룬 ‘그림자 밟기’



곽 감독은 고향인 수원을 영화 속에 은연 중 내비친다. 현재 기획하고 있는 영화 중 화성살인사건을 둘러싼 남녀 고등학생의 모험,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오는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인 <그림자밟기>란 작품이 1980년대 수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는 예술이면서 동시에 수십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 받아서 만들어야 하는 거대한 문화상품이기 때문에 <그림자밟기> 기획은 오래 전에 했지만 아직 촬영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다.



삶의 흔적 담긴 ‘서문 밖의 못난이’ 꼭 영화화 할 것



곽 감독은 오랜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완성해 놓은 것이 있다. 바로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린 <서문 밖의 못난이>다. 이 작품은 수원 화성 중에서도 자신의 어린시절이 녹아 있는 화서문을 배경으로 한 1960년대의 소시민의 삶을 그려 내겠다는 영화다. 이 작품도 언젠가는 꼭 촬영을 시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다.
곽 감독은 수원의 화서동에서 태어났고 서문밖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화서문이 어린시절 놀이터였고, 화서문에서 촬영을 하는 영화들을 보며 영화인의 꿈을 키워갔다. 당시 화성은 한국영화 촬영장소로 유명세를 탔었다. 수원시민들과 어린이들이 영화촬영장을 떠나지 못하고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던 시절이었다. 곽 감독은 이후 정자동과 권선동, 남수동 등에서 살았기 때문에 수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하겠다. 현재는 수원 영통에 거주하고 있다.
영화 말고 잘하는 게 있느냐고 묻자 곽 감독은 사진 촬영을 꼽는다. 영화 일이 없을 때 곽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한 때 영화말고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었지만 영화 이외에 별로 잘하는 일이 없어서 영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고의 취미는 사진 찍는것 입니다”라고 말하는 곽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연출을 하며 사진을 찍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많은 스탭과 배우들이 영화 한 편 작업하면서 평생 받을 사진보다 더 많은 사진을 선물 받는다고 할 정도다. 전시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하니 기대된다.
곽 감독은 뛰어 다니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촬영 헌팅때나 촬영장에서는 걷거나 뛰는 양이 상당할 정도고 이것이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덧붙인다.



곽 감독과의 영화에 대한 미니 인터뷰



1983년 <선생님 그리기> 이후 지금까지 13작품을 연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가 누구입니까.



“배우와 작품은 감독에게는 자식과 다름이 없습니다. 영화 중에는 성공한 영화도 있고 실패한 영화도 있습니다만, 그것 또한 부모가 성공한 자식과 실패한 자식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과는 아직까지 잘 지내는 편입니다. 꼭 말해야 한다면 가장 최근에 같이 작업을 했고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감정적인 공감을 나눈 임수정조정석이진욱일 겁니다. 그리고 제 작품을 위해 온주완과 이기우가 적은 역할인데도 기꺼이 도와주었고 임예진 씨도 저의 전 작품들에 대한 친분으로 특별출연을 해주었습니다. 지면을 통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간이탈자> 개봉 때 응원 동영상을 보내준 손예진과 차태현에게도 고맙지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어린시절 수원 화성 주변에 살았기 때문에 화성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광경을 많이 봐 왔습니다. 아마 최초로 기억하는 영화는 1964년에 개봉한 한중합작 영화인 <달기>라는 작품으로 지금도 촬영 현장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화서문에서 장안문까지 군사들이 공성전을 하는 장면을 찍을 때 동네 사람들 모두가 엑스트라로 출연을 하거나 구경꾼이 되어 주변이 마치 장터처럼 떠들썩 했었지요. 공심돈 아래 셋팅해 놓은 시체들을 보며 진짜다 가짜다 다투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때 제 막내 삼촌도 엑스트라로 출연을 해서 점심식사로 작은 만두 한 상자를 받았는데, 그걸 먹지 않고 저녁 때 집에 가져와서 가족이 나눠 먹었습니다. 그리고 극장에서 개봉할 때 스크린에서 그 많은 군사들 사이에서 막내 삼촌을 찾느라 바빴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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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도 남 달랐겠군요.

“신풍초등학교부터 수성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간간이 만나는 촬영 현장은 제게 영화인으로 꿈을 키우도록 자극이 된 듯합니다. 저는 영화 구경도 좋아했지만 어려서부터 환등기와 카메라 등 렌즈를 통한 기기들을 좋아해서 카메라를 직접 만들어 현상하기도 하고, 필름을 긁어 환등기 필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명절 때마다 가족들에게 제가 만든 환등기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행사이기도 했을 정도로 영화와 밀접한 소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장 감동을 준 영화는 무엇입니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감동을 주는 영화는 단 한편이 아니고 시대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최초로 느끼게 해 준 영화는 중학교 시절에 본 노만주이슨 감독의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란 뮤지컬 영화입니다. 스크린 뒤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이고 아주 감동적이며 슬픈 영화입니다. 또 중학교 때 본 <벤허>란 영화를 보고 많은 감동을 했었고, <로마의 휴일>은 제 금과 옥조와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롤모델이기도 했습니다. <닥터지바고>를 엄청 좋아해서 몇 년에 한 번 씩은 꼭 다시 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게 다른 세상을 알려준 영화는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란 감독의 작품들로 <제7의 봉인>과 <화니와 알렉산더>란 영화를 좋아하고,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모든 작품들 좋아하고 이태리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게 인생에 감동을 준작품은 <엽기적인 그녀>입니다. 이 작품을 외국에서 그토록좋아할 줄 몰랐었습니다. 하지만 유바리 영화제에서 일본인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본 이후로 감동을 받는 외국 관객들이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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