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 [문화재단 우수사례]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 군포문화재단
2013년 진행된 파출소가 돌아왔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글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문화교육본부장
둠벙과 드렁허리 이야기
둠벙을 국어사전엔 웅덩이, 움푹 파여 물이 괴어 있는 곳의 방언 정도로만 풀이하고 있다. 해석이 빈약하다. 보다 정확히 보충 설명을 하자면 우리 조상들이 가뭄에 대비해 논 가장자리에 만든 작은 연못이다. 물이 없을 때는 계곡에서 내려온 물을 머금고 있고, 물이 많을 땐 머금고 있던 물을 뱉어내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이 숨을 쉬는 것 같다. 또한 가을이면 논생물들이 둠벙으로 돌아와 함께 겨울을 나고 함께 봄을 맞는다. 자연 호수가 거의 없는 시골 마을의 둠벙은 수서 생물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많은 생물들이 공생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완전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둠벙 주변엔 풀들과 나무들도 자라고 둠벙안에는 다양한 논생물들이 산다. 개구리밥마름옥잠화 등 수생식물과 물매미물장군장구애비게아재비물자라잠자리 유충 등 곤충류와 붕어송사리버들붕어미꾸라지 올챙이류 등이 공생하고 있다. 둠벙의 맨 아래쪽엔 드렁허리란 놈도 산다. 드렁허리는 논두렁을 마구 뚫고 다니며 경계를 허물고 허리를 들어 서서 잠을 자거나 뱀이나 미꾸라지와는 달리 뒷걸음도 치고 스스로 암수전환을 한다하니 둠벙과 드렁허리가 보여주는 논생태계는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다. 1970년 이후 경지정리사업으로 논이 획일화되면서 둠벙은 저수지로 대치되고 논두렁은 콘크리트 농수로로 대치되고 비료와 농약이 투입되면서 논 생물들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두렁허리조차도 땅속 깊숙이 숨어 버렸다. 30여년이 지난 2008년 다자간 환경 협약인 람사르 협약의 제10차 총회가 경상남도 창원에서 열렸는데 여기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중심으로 논의 생물 다양성 증진을 위한 연구 속에서 ‘논 습지 결의안’이 발의됐다. 이후 한국에서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습지인 ‘둠벙’이 논생태계를 복원하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둠벙을 새롭게 조성하기 시작했다. 둠벙이 조성되면서 사라진줄 알았던 드렁허리와 멸종된 줄 알았던 많은 생명들이 돌아왔다. 이러한 둠벙 생태계 복원 과정을 지켜보면서 지역문화생태계 복원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역문화생태계와 도시재생
지역 문화생태계도 삶터와 일터와 놀터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둠벙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 자연환경 속의 모든 생물이 그물처럼 연계되어 있고 독립적이고 완결적인 생명유지의 보존장치를 보유하고 있을 때 살아있는 생태계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생태계’를 이야기할 때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전제로 작은 미생물에서부터 거대한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용이 서로 밀접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예술생태계니 미술생태계라고 하며 단일한 범위와 범주로 사용하는 것은 오류다. 미꾸라지들만 모아놓은 수족관을 미꾸라지 생태계라 부르지 않는다.
생태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지 일시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근 전국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우려스럽다. 도시재생은 도시개발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 개념임을 상기해야한다. 도시재생은 철저히 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지역문화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에 기여하여야 한다.
돌아온 파출소, 레인보우카페 되다
사설이 좀 길었다. 군포시는 안양의왕안산에 인접해있으면서 총면적 30만km에 287,259만 명이 사는 중소도시이다.
면적에 비하면 밀집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2013년에 군포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첫해에 문화재단 역량강화사업의 하나로 지역내에 유휴화된 파출소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에는 폐쇄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파출소부지가 3곳, 치안센터로 부분 활용하는 파출소 3곳을 주목했다.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가와 문화예술단체, 국내외 작가, 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해외 작가와 시민작가가 함께 군포경찰서 140m의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기도하고, 작가와 청소년이 함께 금정파출소 외벽을 꾸미고, 지역의 목공예술가들이 목공소를 운영하며 낡은 버스정류장을 보수하기도 하고 당동 공업지역에 있던 파출소는 직장인 밴드와 직장인연극반의 연습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군포문화재단이 시작한 ‘파출소가 돌아왔다’는 이후 전국의 빈파출소를 문화공간으로재생하는 사업의 단초를 제공했다. 현재는 6개의 파출소 중 2개의 파출소공간이 문화둠벙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단지역에 위치한 당정파출소는 시의 지원으로 리모델링을 통해 ‘레인보우 카페’라는 이름으로 베트남중국일본 등 외국인 주부 7명이 번갈아 근무하며 각국의 차문화를 소개하는 다문화카페가 되었다. 또한 카페 2층 공간에서는 언어근로 교육공예 체험 등 다채로운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한 산본재래시장 인근에 있는 파출소의 앞마당은 연극공연공간으로 2층 공간은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올해부터 군포의 사례를 전국의 10곳의 파출소에 적용해 기존의 파출소 건물들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일명 ‘예술 파출소’사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책나라 군포에서 예술로 놀고 문화로 꿈꾼다
군포시는 2015년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공동으로 조사한 ‘지역주민 삶의 질 만족도’에서 전국 2위의 영예를 얻었다. 이 조사는 전국 230개 시·군·구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반적 만족도와 분야별 만족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0점 만점 기준인 전반적 만족도 조사에서 전국에서 2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분야별 만족도 조사의 12개 항목 가운데 생활 인프라(2위)산업(4위)복지(5위)교통(5위)문화(6위)의 5개 항목에서 상위 3% 이내의 점수를 받았다. 이처럼 도시의 근간이 되는 생활 기반과 문화, 복지 분야에서 시민들의 삶의 질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 것은 군포시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생활문화정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반 위에서 군포문화재단은 ‘2016 책나라군포 철쭉축제’를 성황리에 마쳤다. 철쭉의 아름다움과 책의 인문학적 정신, 그리고 즐거운 춤과 음악이 한자리에 어우러졌다. “예술로 놀고 문화로 꿈꾼다”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 가는 의미 있는 격문이 되었다.
박찬응 1980년부터 지역문화예술운동에 몸담아 왔다. 2000년부터 석수시장 프로젝트를 통해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일을 해왔다. 현재는 군포문화재단에서 예술진흥본부장을 거쳐 문화교육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