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 [담장너머 2] 느리게 살 권리 라오스에서 얻은 몇 개의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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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 야시장


[담장너머 2] 라오스에서 얻은 몇 개의 질문들

느리게 살 권리



글 · 사 진 박설희 시인



달이 걸린 땅, 비엔티안



라오 항공을 타고 5시간 걸려 도착한 왓타이 국제공항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이곳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가 하루 18편인데 이중 한국직항이 4편이다. 지반이 약하고 활주로가 짧아 큰 비행기는 못 들어온다고 한다. 뉴욕타임스에서 죽기전에 가보아야 할 나라 1위로 선정됐으며 삶의 속도를 늦추려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 이게 내가 라오스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전부다. 시인들을 비롯 예술가 20명이 함께 떠난 길,
이번 여행은 최대한 가볍고 편하게 하기로 했다.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도록 심신을 쉬어주기.
1달러가 8천낍이고 가격을 깎아주는 법이 없으니 최소한 세 군데는 들러서 비교한 후 사라고 가이드가 조언한다. 제일 먼저 재래시장인 달랏사오에 들렀다. ‘달랏’은 아침, ‘사오’는 시장이라는 의미니 이른 아침에 둘러봐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오후. 채소와 과일, 생선으로 빼곡한 좌판과 혼잡스러운 시장 모습은 간 데 없다. 건물 내 상설 가게들을 둘러보다가 9달러에 작은 소가죽 가방을 샀다. 달러와 태국 화폐가 일상에서 널리 통용된다.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을 딱 한 번 봤는데 해먹을 보여주며 “1달러, 1달러” 외치고 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라오스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남한 면적의 두 배가 넘고 인구는 약 700만이다. 이 중 수도 비엔티안에 70만 명이 산다. 산악지대가 대부분이며 최빈국에 속하는데 행복지수는 2위다. 공산주의 국가라 땅을 소유하는 것은 안 되고 수십 년간 장기임대를 한다. 이야기를 듣는 사이 버스가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어 흙먼지가 자욱이 인다. 메콩강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이 보인다. 방목이라 가축들 입장에서 보면 천국과 다름없다. 죽는 순간까지는 맛난 먹이들을 먹으며 자연 속에서 어슬렁거릴 수 있으니까.
시엥쾅 불상공원을 둘러보고 나서 비엔티안과 태국 농카이를 잇는 <우정의 다리>를 걸어본다. 군인도 검문도 없다.
국경선이라면 으레 총 든 군인을 연상하는 내겐 무척 신기하게 보인다. 일행 중 몇 명은 다리 끝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 온다. 다리 한가운데에 기찻길이 놓여 있다. 이 기찻길은 태국이 놓아준 것으로 라오스에서 유일한 철길이다. 두 량 기차안에서 관광객이 손을 흔든다. 두 나라의 국경선 역할을 하는 메콩강은 풍부한 전력의 원천이며 전력 일부를 태국에 수출하기도 한다고. 도로를 따라 파라솔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복권 판매인들이다. 이곳에도 복권 열풍이 불고 있다. 메콩강의 일몰을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비엔티안은 ‘달이 걸린 땅’이라는 의미로 지금도 달이 강 위에 머물러 있다. 강물과 음악이 흐르고 비어라오는 내 속을 흐르고……. 낭만적이지만 무척 덥다. 공산품이 전부 수입이라 비싸다고 하더니숙소에 칫솔, 치약, 세숫비누가 없다. 세면도구를 챙겨오길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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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엥쾅 불상공원 / 우정의 다리



불심으로 이겨낸 전쟁과 가난



세타티랏 왕이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긴것은 1563년. 그래선지 불상박물관인 왓파깨우, 위대한 탑인 탓루앙 등 남은 유적 중에 세타티랏 왕과 관련된 것이 많다. 잦은 전쟁으로 많이 파괴되고 지금 남아 있는 사원들은 대부분 재건된 것이다.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 된 사원인 왓씨사껫으로 향한다.
1818년에 태국 양식으로 지어졌고 신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명성 때문에 사원 중에서 유일하게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다. 회랑에 120기의 불상이 있고 불상 뒤 담에 벽감을 만들어작은 불상을 두 기씩 모셔 두었다. 총 6840기. 라오스의 역사를 증명하듯 성하지 않은 부처가 많다.
탓루앙으로 향한다. 멀리서도 황금 탑이 한눈에 들어오고 세타티랏 왕의 동상이 그 앞에서 우리를 맞는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중앙 탑은 높이가 45미터에 이르고 30기의 작은 탑으로 둘러싸여 있다. 탑 주변에 4개의 사원을 세웠으나 현재는 북쪽과 남쪽 사원만 남아 있다. 탓루앙은 라오스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상징물로 국가 문장(紋章)에도 들어가 있다. 내 옆에서 누군가 중얼거린다. 이렇게 가난한 나라에 사원은 왜 이리 많으며 왜 죄다 금으로 번쩍거리는지 모르겠다고. 그만큼 종교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희구했던 게 아닐까.
라오스 국민의 95%가 불교를 신봉한다. 불교는 태어나서 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생활에 관여하며 인사할 때 합장하는 것도 불교의 관습이다. 사원은 촌락에서 중심역할을 담당하며 남자들은 보통 20세 전 초보수련자로 절에 들어가는데 아들 중 하나가 승복을 입으면 가족의 영예가 된다. 불교의 가르침과 공산주의 원칙이 일치하도록 관장하는 종교국이 있다니 유물론과 범신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일상을 꾸려 나가는 건지 궁금하다.



방비엥의 아름다운 자연



남늠강 탕원 유원지에서 선상식사를 한 후 방비엥으로 가는 유일한 도로를 달린다. 논과 물소들과 야생 바나나……. 젓갈마을에 들른다. 검은 소 껍데기, 생선 말린 것, 젓갈 등에 파리들이 엉켜 있다. 두 아이가 있다. 서너 살, 십대 중반의 소녀. 모녀인지 자매인지 그 관계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이곳 여자들은 13세, 남자들은 15~16세면 결혼을 한다. 평균수명도 50대로 짧다.
메콩강은 멀어지고 쏭강이 나타난다. 방비엥은 ‘강촌’이라는 뜻이다. 가까이 갈수록 소계림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우뚝한 석회암 절벽들이 강물에 제 그림자를 담그고 늘어서 있다. 흙탕물에서 자맥질하는 소년과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도보인다. 역시 이곳의 최대 볼거리는 자연이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유로피안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부풀어 오른 한국 청년을 만났다. 무엇이 그를 이곳으로 이끈 걸까.
라오스에서 우리나라 60년대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끝없는 자본의 욕망을 얻기 이전의 우리 모습이 이랬을까.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되새기게 된다.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삼겹살과 채소로 저녁을 먹는다. 라오스의 한국인들은 3천 명 정도. 가장 성공적인 기업은 KORAO인데 자동차를 조립하고 판매하는 회사다. 한국중고차를 들여 와 라오스의 대중교통인 송테오라 불리는 버스로 개조를 해서 성공한 것이다. 송테오는 1.5톤 트럭에 지붕을 씌운 것으로 벤치 같은 의자에 열 명까지 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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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콩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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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이발소 풍경
젓갈 시장의 소녀들
롱데일보트를 타는 사람들
방비엥 거리
방비엥의 나무다리

노느라 진빠진 하루, 미친 듯이 놀다

비가 온다. 일어나자마자 배를 타고 쏭강을 따라 흘러가며 소계림의 명성에 걸맞는 풍광을 만끽했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가고 산은 제 일부를 구름으로 가리고 숨바꼭질을 한다. 롱데일 보트와 짚라인은 선택사항으로 개인부담이지만 비용보다는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 일행은 내친 김에 짚라인 체험도 한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며 출발하기조차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공중에서 스릴을 만끽한다. 총길이가 5.4 킬로라는데 아래는 온통 벼와 물과 나무로 초록의 향연이다.
<꽃보다 청춘> 프로그램에 소개돼 더욱 유명해진 블루라군은 물빛이 특이하다.
석회암 지대를 통과하면서 물빛이 그렇게 된다고 한다. 이곳에선 누구라도 한번은 다이빙을 하게 돼 있다. 낭만 속으로 뛰어드는 기분이랄까. 이미 빗속에서 짚라인을 하느라 다 젖은 우리는 망설일 것도 없이 물 속에서 첨벙거렸고 나무 위로올라가 뛰어내리고 또 뛰어내렸다. 마치 뛰어내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리라는듯. 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노라니 물고기들이 발 주위로 모여든다.
물동굴 탐사에 나선다. 동굴 입구가 대부분 물에 잠겨 있어 머리에 헬멧과 랜턴을 착용하고 튜브에 누운 채로 로프를 잡고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헤드랜턴 불빛이 동굴 천장 여기저기에서 반짝인다. 팔 힘으로 로프를 잡아당겨 물을 헤치며 석회암 동굴을 한 바퀴 도는 것인데 옆사람과 조금만 간격이 벌어져도 그 자리를 어둠이 채운다.
쏭강을 따라 내려가는 카약킹 또한 5킬로가 넘는 길이로 수량이 많고 흐름이 빨라 굳이 노를 저어주지 않아도 되는데 무리하다가 힘이 빠진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다. 튜브를 타고 햇빛을 쐬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끼얹어주니 무척 즐거워했다.
밤에는 또 유러피안 거리에 가서 어슬렁거렸다. “<꽃보다 청춘> 피디가 들르려다 만 집”, “노래방”, “망고쥬스 5천낍”이라는 한글 간판들. 이곳 관광객 중 절반 이상이 한국 사람이다.
저녁을 먹은 후 야간수영을 했다. 물이 따뜻하니 온천하는 기분이다. 대기가 습해선지 별을 보기가 힘들다. 노느라 진빠진 하루. 내 인생에서 이렇게 쉬지 않고 열심히 미친 듯이 놀아본 적이 있던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사바이디 라오스



에어컨 소음 때문에 3일째 잠을 설쳤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끄고 잘 엄두는 안 난다. 일찌감치 잠을 포기하고 동네를 산책했다. 집집마다 작은 사당을 만들어 신을 모시고 있다. 사각형 정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앞에는 향이나 쌀을 놓아둘 수 있는 작은 제단이 있다.
송테오를 타고 마구 흔들리며 유이폭포에 간다. 야생 바나나가 우거진 길은 온통 습해서 정글에 온 느낌이다. 일행 중 한분이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승천 자세로 폭포물을 맞는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일행들이 비어라오에 박쥐꼬치를 먹고 있다.
맛보려 했으나 한발 늦었다.
비엔티안을 향해 가는 길, 코코넛 농장 원두막에서 망고스틴 · 용과 · 망고 · 코코넛 등을 먹었다. 한국인 주인이 나와서 생후 두 달밖에 안 된 아이의 유모차를 밀며 50대 초반에 얻은 딸 자랑을 했다. 무척 행복해 보였다. 농장 건너편 이발소에서 한 소년이 머리를 깎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거울 하나가 걸려 있는 어두컴컴한 이발소 풍경이 정겹다.
개선문을 본딴 빠뚜사이와 한국에서 세워주었다는 메콩강변 야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3박4일의 짧은 일정을 마쳤다.
호치민 통로의 애꿎은 피해국 라오스. 미국은 이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엄청난 폭탄을 투하했으며 투하자유지역으로 정해 남은 폭탄을 마구 뿌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일인당 가장 많은 폭격을 당한 국가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도 아이들이 그 탄피를 주워 숟가락을 만든다고 한다. 전쟁은 끝났어도 그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라오스를 떠나며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다. 사바이디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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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라군



박설희 시인은 화성에 반해 수원으로 이사와 이십 년 가까이 살고 있다. 2003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이 있다. 강의와 글쓰기를 하는 틈틈이 힘닿는 대로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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