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 [담장너머 1] 벵골어를 쓰는 사람들의 나라 방글라데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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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풍경


[담장너머 1]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벵골어를 쓰는 사람들의 나라 방글라데시를 가다



글 · 사진 윤휘섭 사진작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11월 오후는 여름 같았다. 위도 상 우리보다 적도 쪽에 가까우니 그럴 만도 하다. 샤잘랄 공항 밖에는 짙은 매연 섞인 공기 속에 삼륜 오토바이 택시와 자전거 인력거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기금 후원으로 2014년 11월 2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약 한달 간 사진작가로서 방글라데시에 머물게 되었다. 그 곳에 가기 전까지 나에게 방글라데시는 상당수의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로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다는 정도의 인식뿐이었다.



아부 나스르 로비(Abu Naser Robii) 와의 만남



내가 방글라데시로 향하게 된 계기는 2013년에 한국을 찾은 방글라데시 지역 예술단체 ‘포라파라 스페이스 포 아티스트(Porapara Space for Artist)’의 대표 아부 나스르 로비(Abu Naser Robii)와의 만남이 있어서였다. 그는 여러 차례 한국 예술단체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우리 예술가들과 함께 다양한 예술 활동을한 경험이 있는 예술가이자 디렉터이다. 경기도의 한 예술제에서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방글라데시에 있는 예술단체 포라파라(Porapara)를 알게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단체 소개를 듣고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운 좋게 2014년에 해외 파견 작가로 선정되어 방글라데시를 찾아가게 되었다.
(포라파라 스페이스 포 아티스트는 10년 넘게 방글라데시 제2의 도시 치타공을 거점으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기획하고 외국의 작가들을 초청하여 함께 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방글라데시는 나에게 도전의식을 갖게 했다. 이유 중 하나는 단순 관광비자로 자유로이 방문할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보안상의 이유인지 관광자원이 발달 되지 않아서인지 꼭 현지 사람이나 단체의 초청장이 있어야만 입국이 허가된다는 것이다. 해서 가보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는 나라로 여겨져 그 곳에서 사진작가로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또 하나는 포라파라스페이스 포 아티스트에서 주관하는 해외 교류 프로젝트가 작가로서 참여하고픈 생각을 들게 했던 것이다.
다소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거쳐 드디어 방글라데시에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 수도인 다카에 도착했을 땐 한 동안 그 곳에 머물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포라파라(Porapara)에서 준비한 프로젝트 일정 때문에 곧바로 제2의 도시 치타공으로 향하게 되었다. 저녁 즈음 치타공 샤아나마트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었다. 머물게 된 숙소는 마당 넓은 벽돌집이었는데 그 곳이 포라파라 스페이스 포아티스트의 사무실이자 다카에 머물고 있는 단체 대표의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이곳이 방글라데시 여정의 시작점 이었다.
숙소는 샤아나마트 공항 근처 파텡가(Patenga)라는 마을에 있었다. 마을에는 낡은 초가집도 있었고 새로 지은 벽돌집도 보였다. 그리고 이 나라의 대표적 종교인 무슬림의 모스크도 있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적응도 하고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마을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고 다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를 위해 숙소 근처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마을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며 사람들과 친해 질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내 전공인 사진이 사람들과 더 친해지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 길거리의 사람들은 나를 불러 세웠고 자기 사진을 찍어 달라고 손짓을 하며 포즈를 잡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사진기에 찍히는 것 자체를 좋아했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사진을 보여 달라거나 자신에게 보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찍히기 만을 바랬다. 사진작가에겐 이 나라 사람들은 더없이 좋은 모델이었고 나는 너무도 즐겁게 사람들을 담을 수 있었다. 내가 방글라데시에 대한 기억 중에 잊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였다.



방글라데시 유람의 시작



그렇게 나름 적응 훈련을 마치고 포라파라(Porapara)에서 마련해준 일정을 위하여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첫 번째 일정은 수도 다카에서 333㎞ 떨어져 있는 쿨라(khulna)라는 지역으로 이동해 쿨라대학교khulna university)의 예술학부학생들과 교류의 일환으로 사진예술에 관한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쿨라로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방글라데시는 아직 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고속도로는 구불구불한 상행과 하행 단 2차선 뿐이었고 워낙 하천과 강이 많은 나라여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배를 타기도 했다. 더구나 현지 사람의 도움 없이 홀로 가는 것이었기에 긴장된 여정이었다. 거의 13시간동안 움직인 끝에 새벽 동녘과 함께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러자 미리 내가 도착할 시간을 포라파라에서 전달 받은 쿨라대학의 한 학생이 버스안의 유일한 외국인인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짐을 받아 주었다.



쿨라(khulna)에 가다



쿨라의 아침은 조용했다. 도시의 크기 면에서 방글라데시 제 3의 도시였지만 차량 많고 사람 많은 번잡한 도시는 아니었다. 대부분 주거지역이었고 사람들은 도시외각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공단지역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조용한 도시에서 3박 4일간 머물며 쿨라대학교 학생들과 워크숍도 진행하고 곳곳을 학생들의 안내로 살펴 볼 수 있었다.
첫 날은 쿨라대학교(khulna university)의 캠퍼스를 학생들의 자부심 어린 안내로 돌아보며 그들의 열정과 패기를 느낄 수 있었고 두 번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진예술에 관한워크숍을 위해 일정을 계획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획된 일정은 워크숍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함께 지역 곳곳을 돌며 각자 촬영한 사진으로 의논을 거쳐 최종적으로 작은 전시회를 여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배운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학생들이 사진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워크숍에 참여한 학생들이 말하길 쿨라 지역에선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다고 했다. 물론 사진을 찍는 기술적인 부분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배울 수가 있다. 학생들이 진정워크숍에서 느끼고 싶었던 것은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전시회를 통해 발표하는 단계였던 것이다. 사진에 있어서 전문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전시회를 열 수는 없었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이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각자의 주제에 맞게 정리하고 나열해 가면서 전시회를 준비했다. 그리고 세번째 날 학교의 몇몇 교수들을 초대해 그들의 첫 번째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장은 작은 방 한 칸이었지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무사히 전시를 마치고 다음 날 나는 다른 일정대로 움직이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학생들도 모두 나와 인사를 해주었고 아쉬움을 남기고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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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전시 준비 모습 / 포라파라 스페이스 포 아티스트의 전경 / 라즈샤히 예술대학 풍경 / 방글라데시의 아이들



라즈샤히(Rajshahi) 로 향하여



다음 행선지는 라즈샤히(Rajshahi)라는 도시였다. 그 곳에서 포라파라(Porapara)대표인 아부 나스르 로비(Abu Naser Robii)와 조우하여 라즈샤히 예술대학(rajshahi university fine arts)을 하루정도 방문하는 일정이었고 침대가 있는 기차를 이용해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9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였다.
이후 아부 나스르 로비(Abu Naser Robii)와 함께 학교를 방문하여 그 곳의 강의 과정을 둘러보고 대표의 친구인 그 학교 교수의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대접받고 대표와 함께 다시 기차에 올라 숙소가 있는 치타공으로 향했다. 라즈샤히는 내가 둘러 본 방글라데시 대도시 중에 도시의 환경과 자연 환경이 잘 어우러진 제일 아름다운 도시였다.



방글라데시 유람을 마치며



이렇게 보름 정도 방글라데시의 대도시들을 둘러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다시 보름간은 치타공 숙소에 머물며 마을 사람들과 현지인처럼 살아 보기로 했다. 포라파라에서 마련해준 공식적인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기에 나머지 기간은 내가 계획하고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하며 보낼 수 있었다.
약 한달 간 방글라데시를 동서남북으로 오가기도 했고 오랜 동안 현지인처럼 그들과 같은 밥을 먹고 그들의 축제도 참여해보고 결혼식에도 초대되어 함께 웃으며 정신적으로는 편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생활이 녹록치 않았다. 이유는 아직 방글라데시는 개발과 발전의 출발점에 있었기에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상, 하수도시설이 없었으며 전기 생산도 화력발전이 주된 수단이기에 대기 환경도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어디를 가든 쾌적한 환경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은 나 혼자 느끼고 있었다. 나를 빼고는 모두 불편함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집으로



예정된 시간이 다 되어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과연 경제적인 풍족함과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더없이 맑은 미소를 보여준 이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며… ….



윤휘섭 사진작가, 계원예술대학 사진예술과 졸업. 현재 경기지역 예술단체 소속작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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