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 [책 나들이] 현륭원에 정조 임금이 약 1,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책 나들이]

현륭원에 정조 임금이 약 1,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글 김희만 역사학자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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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지음, 북촌, 2016

‘식목왕植木王’ 정조를 아시나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 임금은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 ‘개혁군주’, ‘화성건설’, ‘규장각’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영조와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그리고 정약용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 각본의 설정 인물이다. 책나들이를 하는데 서가에서 『정조, 나무를 심다』라는 제목을 발견하면서 다른 책들은 손에서 멀어져 갔다. 우선 사진이 나무와 지도들로 채워져 기왕의 책들과는 다른 점이 확인되고, 글 구성도 유익한 면이 찾아져 나그네의 시선을 빼앗아갔다.
이 책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나무를 심은 임금, 정조이다. “정조는 수목만이 아니라 산림생태계의 순환에 대해서도 정통한 ‘숲 박사’ 임금님이었다.” 낯선 언어의 재단이다. 지금껏 정조 임금과 여러 차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저자가 사용하는 ‘식목왕植木王 ’ 정조라는 용어는 아주 생소하기 그지없는 개념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정조 임금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지, 아니 이런 수사가 가능한지 그 논리를 따라 나들이를 시작해본다.



“버드나무를 심은 것은, 수水 가 목木 을 내는 것이 비록 오행五行 의 순서이기는 하지만, 산이 초목으로 무성하게 덮여 숲을 이루어야 지맥地脈 이 축축해져 샘이 솟아오르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언덕과 산기슭이 벌거숭이가 되어서 열흘만 비가 내리지 않아도, 시냇물이 그 즉시 마르고 며칠만 비가 내려도 하천변이 무너져서 논밭을 모두 잃게 되니, 어찌 버드나무 한 종류만 심어야 한단 말인가. 소나무 · 개오동나무 · 흰느릅나무 · 느릅나무 · 이나무椅 · 오동나무 · 가래나무梓· 옻나무도 안 될 것이 없다.”



『정조실록』 22년 조에서 찾은 내용이라는데, 정조 임금의 박학다식함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니 또다시 만세를 부를 만하지 않은가. 7년간 현륭원에 심은 나무가 대략 1,200만 그루였으며, 1796년 정조 임금이 심은 나무는 현재 융건릉 면적의 600배에 달하는 면적에 심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하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그런데 정조 임금의 나무심기는 그의 치세 24년간 이루어진 많은 업적들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이 되지 않았으며, 이 책은 그것을 밝혀주기 위해 저술하였다고 한다. 전공의 다양성이 낳은 쾌재가 아닌가.



정조 임금의 새로운 면모, 다시 생각해보자



이 책은 1, 2부로 나뉘는데, ‘정조, 위대한 숲을 꿈꾸다’에서는 죽은 나무 뒤주, 천이백 만 그루의 숲이 되다, 경희궁의 버드나무, 온양행궁의 느티나무, 경모궁의 단풍나무, 창덕궁의 규장각, 영우원의 노간주나무, 그리고 효창묘의 소나무 등이 다양한 일화와 함께 널을 띈다. ‘왕의 숲, 백성에게 깃들다’에서는 대기만성 밤나무, 소나무와 송충이, 호위병을 닮은 전나무, 까칠한 잣나무, 현륭원의 상수리나무, 물가의 버드나무, 비단을 품은 뽕나무, 그리고 국왕이 품은 오얏나무 등의 나무숲을 정조 임금과 연관하여 친근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에 흐르는 내용의 핵심은 아마도 정조 임금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무관하지 않다. 영조 38년(1762)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그 무덤을 수은묘垂恩墓 라 하였으나, 왕위에 오른 정조 임금은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존하면서 무덤의 이름도 영우원永祐園 으로, 다시 화산으로 옮기면서(정조 13년, 1789) 현륭원顯隆園 을 조성하였으며, 광무 3년(1899) 고종이 장헌세자를 장조莊祖 로 추존하면서 융릉隆陵 으로 완성된다.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덤의 변천사를 자세히 살펴주고 숲의 변화도 보여준다.

정조 임금이 현륭원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 7년이 지나자, 책 1,000권 정도 분량의 문서가 생겼는데, 이 7년짜리 문서꾸러미를 한 권의 가벼운 책으로 만나고 싶어서 명을 내렸는데, “한 권의 책이 아니고서는 상세하게 기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로 많은 분량의 장부와 문서를 너는 한 장으로 정리하였구나. 참으로 훌륭하다”라고 칭찬을 하는 내용이 나온단다. 물론 칭찬을 받은 신하가 등장하는데, 바로 다산 정약용이란다. 여기에는 나무를 심은 연도, 나무 심는 임무를 맡은 고을인 8개 읍, 심은 나무의 수, 심은 나무 가운데 대표라 할 수 있는 소나무 · 전나무 · 상수리나무 등이 기록되어 있다니, 가히 놀랄 만하다. 온라인 검색시스템, 인공지능 컴퓨터 역할을 한 것이다.

왕릉에 가장 많이 심는 나무는 소나무란다. 정조 임금과 연관해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소나무와 송충이 사건이다. 그런데 ‘정조와 송충이가 연결되는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라고 하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정조 임금이 현륭원을 비롯한 다른 능에 행차한 내용을 검토해서 총 13회를 수합하고, 그 결과 송충이가 활발히 활동한 시기에 행차한 1795년에 주목한다. 이 해는 장헌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이하는 해인데, 그때에 어머니와 두 여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충이를 삼키지는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 후세에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참신한 결론이다. 이 부분은 더 이상 가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공감이다.

이 책은 정조 임금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잘 알려진 유명 인사도 있지만, 당시 식목 관리에 참여했던 인부들의 이름까지 세세하게 만나볼 수 있다. 조선의 왕릉과 궁궐들을 만나는 것도 자연스러우며, 특히 역사와 관련된 나무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아마 이 책의 큰 장점일 것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내용도 여럿 확인해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신선하다. 책은 최상의 대리만족을 해준다. 따뜻한 경험을 타인에게 공유해줄 수 있는 여유도 고마움이다. 책을 가까이할 시간이다.



김희만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의 이해』,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등의 공저서와 「수여선의 개통과 사회변화」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뉴스피크에 ‘헌책방의 인문학’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격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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