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 [문화읽기] 정조 (正祖)의 매력
정조(正祖)의 매력
글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
정조(正祖)의 매력
수원은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있는 도시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수원화성은 조선조 제22대 왕인 정조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이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아 조선조 실학사상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축성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선조의 역대 왕 중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왕을 꼽으라면 단연 세종을 내세울 수 있지만 정조의 업적 또한 만만치 않다. 세종과 정조의 공통점은 인재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중용하여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세종은 성삼문 · 신숙주 ·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을 중용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정조 또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정약용을 중용하여 수원화성(水原華城) 등 수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국에는 적지 않은 고성(古城)이 있으나 수원화성이 그 중 인정을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원화성은 조선이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드러난 취약점을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 보완하여 축성하였기 때문이다.
정조의 업적 중 또 하나를 꼽으라면 그가 완성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당시의 무예서들이 전략과 전술 등 이론을 위주로 한 것들인 데 비해 24기의 전투기술을 중심으로 한 실전 훈련서로, 당시의 무예와 병기에 관하여 종합적인 조감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무예서이다. 또한 조선조의 전통무예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무예 중 받아들일 만한 무예를 담고 있어 정조의 실학사상과 호국강병의 의지가 담겨있다. 무예도보통지는 한 · 중 · 일 3국 중 유일하게 국가에서 편찬한 무예서이자 동아시아 무술학의 귀중한 자료로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정조는 원통하게 돌아가신 생부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리고 못 다한 효를 실천하기 위하여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님의 묘소를 수원 융릉(隆陵)으로 이장하고 원찰인 용주사를 중창했다. 또한 수원화성 행궁에서 어머님의 환갑에 거대한 진찬연(進饍宴)을 바칠 정도로 정조의 효심은 조선조의 어느 역대 왕보다 뛰어나다. 군주가 효행을 몸소 실천하여 보인바 백성들이 정조의 효행을 본받은 점이 컸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정조는 재위 당시 백성들을 무척 사랑하였으며 백성들에 대한 배려심이 컸다. 조선조의 왕이가는 길에는 백성들이 감히 왕의 거마(車馬)를 올려다 볼 수 없었으며 왕의 행렬이 완전히 지나갈 때 까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허나 정조는 백성들을 사랑하고 배려하여 아버님의 능행차길에 백성들로 하여금 왕의 거마행렬을 자유롭게 보도록 하였다. 그것은 정조의 능행차 모습을 사실 그대로 그려놓은 『화성원행반차도(華城園幸班次圖)』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또한 정조는 화성 축성 당시에 축성 작업에 노역한 백성들에게 후한 임금을 주도록 명령하여 시행하였다. 봉건왕조인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또한 그의 어머님의 환갑잔치인 진찬연에도 수원에 거주하고 있는 노인들을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하였다. 정조의 애민 사상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