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호 [예술인열전] 작곡가의 인생을 따라 걷는 32개의 계단 피아니스트 백건우






[예술인열전]



작곡가의 인생을 따라 걷는 32개의 계단 피아니스트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지난 2007년 12월, 베토벤의 32개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가졌다. 32개의 소나타를 매일 4개씩, 일주일 동안, 8회 연주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전곡 연주를 통해 베토벤의 인생을 만나는 대장정은 오래도록 찬사가 이어졌다. 10년이 지난 2017년. 백건우는 다시 베토벤과 만난다. 2007년 연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전국 각 도시를 순회하며 34회 이상 공연을 펼친다. 보다 많은 사람, 넓은 층의 사람과 나누고 싶어 달리 구성한 것이다.



글 이지영 음악칼럼니스트 사진 오성진



또 다시 베토벤이다



백건우는 작품 탐구를 위해 작곡가에게 공들이는 시간이 꽤 길다. 라벨, 프로코피예프, 무소륵스키,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메시앙, 쇼팽, 포레... 그는 연주할 때마다 작곡가와, 작품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 한동안 라흐마니노프 연구에 몰입했을 땐 차를 마실 때도 러시아에서 만든 것이 더 끌린다고 했다. 작곡가, 작곡가의 나라, 그의 문화까지 끌어안고 또 오래 품는다. 한 작품을 만나기 위해 작곡가의 인생과 역사, 문화를 모조리 훑는다.

그래서일까. 많은 연주자들이 작곡가 연구에 공을 들이겠지만, 백건우가 사랑한 음악을 따라가보면 그 작곡가의 음악세계, 인간적인 모습까지 진하게 만나게 된다. 아내 윤정희에 대해 얘기할 때도 같은 모습이다. 결혼 40년이 지난 부부지만 남편은 아내를 보며 “나는 당신이 점점 더 좋아져”라고 말한다. 이것이 백건우가 음악과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인가보다. 그 지치지 않는 사랑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백건우에게 베토벤은 큰 숙제였다. 뭔가 어색하고 불편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뜸을 들였다. 제대로 다가갈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한 곡, 두 곡 천천히 만났고 5~6년간 연구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32개 소나타의 기록을 음반으로 남겼다. 그리고 2007년, 전곡 연주회를 가졌다. 일주일 간, 아니 연주회를 기다리던 더 많은 시간, 청중들도 그와 함께 길을 걸었고, 과정 과정을 곱씹으며 베토벤의 세계에 한껏 몰입했다.

“이렇게 진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정기간, 베토벤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나도 힘들고, 관객도 힘들겠지만 한 자리에서 전체 작품을 만나고 보면, 베토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음악을 했는지 그 기간만큼은 오래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나도 관객과 한 자리에서 베토벤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인지, 그것을 알고 싶었고요.”

이 정도면 한 작곡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또 베토벤이다. 아쉽지 않을 만큼 뜨겁게 사랑했을 것 같은데, 그 사랑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 이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떼게 했을까. 이것을 감당할만한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베토벤은 일생을 붙잡고 있어도 새롭고 흥미로워요. 신기한 것은 다른 어떤 작곡가에게 한참 빠졌다가도 다시 멀어지곤 하는데, 그의 음악에는 우리가 홀리니까. 음악의 가치, 그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을 얘기하자면, 베토벤 같은 사람은 없어요.”



베토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음악을 했는지 그 기간만큼은

오래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사랑으로 가득한 베토벤의 생애



2007년 공연까지, 백건우는 ‘베토벤과 나’의 관계가 중요했다. 베토벤과 나의 관계를 바로 세우자, 이제는 ‘베토벤과 관객’을 매개하는 역할에 더 중점을 두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극장, 여러 도시를 찾는 것이다. 백건우가 찾아가는 관객에는 장애가 있어 공연장을 찾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포함한다.

“한 번은 소리에 민감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주회를 가졌어요.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를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었죠. 소리가 나니까 신기하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쪽으로 다가오고, 악기를 만져보고 몸을 기대어 울림을 느껴보더군요. 악기를 아이들이 앉아 있는 자리까지 갖고 내려와 편하게 다가가니 아이들도 음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죠.”

백건우는 베토벤을 ‘인류에 대한 사랑이 많았던 사람’으로 말한다. 괴롭고 비참한 삶이었지만 그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그의 삶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 말한다. 누구보다 ‘소리’가 간절했던 사람,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았던 사람은 청력을 잃음으로써 음악과,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되었다. 어쩌면 음악가로서, 세상의 위로가 가장 절실했던 사람은 베토벤이 아니었을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독한 세계, 그러나 눈을 감고 있어도 온몸을 휘감는 음표와 터져 나오는 악상들, 그 사이에서 혼자 감당했어야 하는 지독한 외로움.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소통할 수 없어 처절하게 버려진 순간들마다, 오직 ‘들리지 않는’ 음악과 소통했어야 했던 그.

베토벤의 삶을 ‘사랑’으로 정의한 10년 전 백건우의 말은, 누군가 ‘베토벤, 아니, 음악을 왜 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답이 될 것이다. 인류를 뜨겁게 사랑한 베토벤의 생애, 그 생애를 다시 그리는 백건우의 인생도 사랑으로 가득하다.



끝날 듯 말 듯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처럼 베토벤 사이클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사이클을 꿈꾸는 무대가 될 것이다.





넓이와 깊이를 다져가는 기나긴 여정



“작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프레임은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갖게 된 생각의 변화가 많았어요. 베토벤은 볼 때마다 새로 발견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매일 뭔가 찾게 되고, 감탄하고 놀라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숨겨놓은 구상에 매일 놀라요. 한 번에, 어느 순간 ‘이거다’하고 정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는 지금 다시 연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만약 새로운 것이 안 보이고, 안 들린다면 음악인으로서 생명이 끝나는 거죠.”

10년 전 공연은 ‘드디어 백건우의 베토벤을 만난다!’는, 일종의 완성과 성취의 느낌이 있었다. 이번 공연 타이틀은 ‘베토벤 그리고 백건우, 끝없는 여정’이다. 백건우의 베토벤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2000년 서울 연주회 이후 다른 도시에서 베토벤 공연 요청이 많았어요. 다시 연주한다면 장소를 옮겨가며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죠. 이번엔 1년간 준비하고 긴 시간 동안 관객과 만나야 하는데, 준비 기간이 턱없이 짧아요. 하지만 우리 인생이 그런 거니까, 준비된 상태라는 건 없으니까요.” 이번 투어는 한 번도 찾아가보지 않았던 장소가 많다. 수원 SK아트리움 역시 처음 찾는 무대. 공연은 10월 14일. 9월 첫 주부터 시작한 2017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 ‘32회’ 공연 중 피날레를 장식하는 공연이다. 수원 프로그램은 소나타 17번 d단조, Op.31-2 ‘템페스트’, 소나타 30번 E장조, Op.109, 소나타 10번 G장조, Op.14-2, 소나타 23번 f단조, Op.57 ‘열정’이다. 같은 베토벤을 연주하더라도 극장의 울림과 관객을 고려한 프로그램 구성이다.

“2017년 긴 공연의 마지막을 수원에서 장식하게 됩니다. 처음 가보는 공연장이지만 좋은 울림을 갖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올해 베토벤 소나타 무대는 총 32회입니다. 마침 베토벤의 소나타가 모두 32개인데, 재미있죠?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사이클을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숫자가 됐네요.”

2017년 베토벤 사이클의 32번째 공연은 32번째 소나타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32번은 정열적인 1악장 ‘마에스토조Maestoso’를 지나 2악장 느린 템포의 ‘아리에타Arietta’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끝날 듯 말 듯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처럼 14일 수원 공연 역시 베토벤 사이클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사이클을 꿈꾸는 무대가 될 것이다.

“처음 베토벤과 만나 연주회를 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 준비했어요. 내가 베토벤을 깊이 이해를 못했던건지, 나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늘 거리감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 베토벤을 쳐야 한다.’는 욕구가 생겼고 녹음했고, 전곡 연주 회를 강행했고, 10년이 지나니 또 만나야 할 이유가 생긴 겁니다. 아마도 이 여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죠”.



이지영 음악전문지 월간 <피아노음악> 기자를 거쳐, 음악실> 작가, 성남아트센터 홍보미디어실, 공연기획부 과장, 음악문화공간 감독 역임. 현재 공연계간지 편집장, <한화클래식> 진행 실장을 맡고 있다.




[예술인열전]



작곡가의 인생을 따라 걷는 32개의 계단 피아니스트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지난 2007년 12월, 베토벤의 32개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가졌다. 32개의 소나타를 매일 4개씩, 일주일 동안, 8회 연주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전곡 연주를 통해 베토벤의 인생을 만나는 대장정은 오래도록 찬사가 이어졌다. 10년이 지난 2017년. 백건우는 다시 베토벤과 만난다. 2007년 연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전국 각 도시를 순회하며 34회 이상 공연을 펼친다. 보다 많은 사람, 넓은 층의 사람과 나누고 싶어 달리 구성한 것이다.



글 이지영 음악칼럼니스트 사진 오성진



또 다시 베토벤이다



백건우는 작품 탐구를 위해 작곡가에게 공들이는 시간이 꽤 길다. 라벨, 프로코피예프, 무소륵스키,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메시앙, 쇼팽, 포레... 그는 연주할 때마다 작곡가와, 작품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 한동안 라흐마니노프 연구에 몰입했을 땐 차를 마실 때도 러시아에서 만든 것이 더 끌린다고 했다. 작곡가, 작곡가의 나라, 그의 문화까지 끌어안고 또 오래 품는다. 한 작품을 만나기 위해 작곡가의 인생과 역사, 문화를 모조리 훑는다.

그래서일까. 많은 연주자들이 작곡가 연구에 공을 들이겠지만, 백건우가 사랑한 음악을 따라가보면 그 작곡가의 음악세계, 인간적인 모습까지 진하게 만나게 된다. 아내 윤정희에 대해 얘기할 때도 같은 모습이다. 결혼 40년이 지난 부부지만 남편은 아내를 보며 “나는 당신이 점점 더 좋아져”라고 말한다. 이것이 백건우가 음악과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인가보다. 그 지치지 않는 사랑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백건우에게 베토벤은 큰 숙제였다. 뭔가 어색하고 불편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뜸을 들였다. 제대로 다가갈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한 곡, 두 곡 천천히 만났고 5~6년간 연구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32개 소나타의 기록을 음반으로 남겼다. 그리고 2007년, 전곡 연주회를 가졌다. 일주일 간, 아니 연주회를 기다리던 더 많은 시간, 청중들도 그와 함께 길을 걸었고, 과정 과정을 곱씹으며 베토벤의 세계에 한껏 몰입했다.

“이렇게 진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정기간, 베토벤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나도 힘들고, 관객도 힘들겠지만 한 자리에서 전체 작품을 만나고 보면, 베토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음악을 했는지 그 기간만큼은 오래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나도 관객과 한 자리에서 베토벤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인지, 그것을 알고 싶었고요.”

이 정도면 한 작곡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또 베토벤이다. 아쉽지 않을 만큼 뜨겁게 사랑했을 것 같은데, 그 사랑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 이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떼게 했을까. 이것을 감당할만한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베토벤은 일생을 붙잡고 있어도 새롭고 흥미로워요. 신기한 것은 다른 어떤 작곡가에게 한참 빠졌다가도 다시 멀어지곤 하는데, 그의 음악에는 우리가 홀리니까. 음악의 가치, 그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을 얘기하자면, 베토벤 같은 사람은 없어요.”



베토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음악을 했는지 그 기간만큼은

오래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사랑으로 가득한 베토벤의 생애



2007년 공연까지, 백건우는 ‘베토벤과 나’의 관계가 중요했다. 베토벤과 나의 관계를 바로 세우자, 이제는 ‘베토벤과 관객’을 매개하는 역할에 더 중점을 두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극장, 여러 도시를 찾는 것이다. 백건우가 찾아가는 관객에는 장애가 있어 공연장을 찾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포함한다.

“한 번은 소리에 민감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주회를 가졌어요.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를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었죠. 소리가 나니까 신기하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쪽으로 다가오고, 악기를 만져보고 몸을 기대어 울림을 느껴보더군요. 악기를 아이들이 앉아 있는 자리까지 갖고 내려와 편하게 다가가니 아이들도 음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죠.”

백건우는 베토벤을 ‘인류에 대한 사랑이 많았던 사람’으로 말한다. 괴롭고 비참한 삶이었지만 그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그의 삶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 말한다. 누구보다 ‘소리’가 간절했던 사람,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았던 사람은 청력을 잃음으로써 음악과,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되었다. 어쩌면 음악가로서, 세상의 위로가 가장 절실했던 사람은 베토벤이 아니었을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독한 세계, 그러나 눈을 감고 있어도 온몸을 휘감는 음표와 터져 나오는 악상들, 그 사이에서 혼자 감당했어야 하는 지독한 외로움.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소통할 수 없어 처절하게 버려진 순간들마다, 오직 ‘들리지 않는’ 음악과 소통했어야 했던 그.

베토벤의 삶을 ‘사랑’으로 정의한 10년 전 백건우의 말은, 누군가 ‘베토벤, 아니, 음악을 왜 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답이 될 것이다. 인류를 뜨겁게 사랑한 베토벤의 생애, 그 생애를 다시 그리는 백건우의 인생도 사랑으로 가득하다.



끝날 듯 말 듯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처럼 베토벤 사이클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사이클을 꿈꾸는 무대가 될 것이다.





넓이와 깊이를 다져가는 기나긴 여정



“작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프레임은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갖게 된 생각의 변화가 많았어요. 베토벤은 볼 때마다 새로 발견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매일 뭔가 찾게 되고, 감탄하고 놀라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숨겨놓은 구상에 매일 놀라요. 한 번에, 어느 순간 ‘이거다’하고 정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는 지금 다시 연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만약 새로운 것이 안 보이고, 안 들린다면 음악인으로서 생명이 끝나는 거죠.”

10년 전 공연은 ‘드디어 백건우의 베토벤을 만난다!’는, 일종의 완성과 성취의 느낌이 있었다. 이번 공연 타이틀은 ‘베토벤 그리고 백건우, 끝없는 여정’이다. 백건우의 베토벤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2000년 서울 연주회 이후 다른 도시에서 베토벤 공연 요청이 많았어요. 다시 연주한다면 장소를 옮겨가며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죠. 이번엔 1년간 준비하고 긴 시간 동안 관객과 만나야 하는데, 준비 기간이 턱없이 짧아요. 하지만 우리 인생이 그런 거니까, 준비된 상태라는 건 없으니까요.” 이번 투어는 한 번도 찾아가보지 않았던 장소가 많다. 수원 SK아트리움 역시 처음 찾는 무대. 공연은 10월 14일. 9월 첫 주부터 시작한 2017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 ‘32회’ 공연 중 피날레를 장식하는 공연이다. 수원 프로그램은 소나타 17번 d단조, Op.31-2 ‘템페스트’, 소나타 30번 E장조, Op.109, 소나타 10번 G장조, Op.14-2, 소나타 23번 f단조, Op.57 ‘열정’이다. 같은 베토벤을 연주하더라도 극장의 울림과 관객을 고려한 프로그램 구성이다.

“2017년 긴 공연의 마지막을 수원에서 장식하게 됩니다. 처음 가보는 공연장이지만 좋은 울림을 갖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올해 베토벤 소나타 무대는 총 32회입니다. 마침 베토벤의 소나타가 모두 32개인데, 재미있죠?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사이클을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숫자가 됐네요.”

2017년 베토벤 사이클의 32번째 공연은 32번째 소나타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32번은 정열적인 1악장 ‘마에스토조Maestoso’를 지나 2악장 느린 템포의 ‘아리에타Arietta’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끝날 듯 말 듯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처럼 14일 수원 공연 역시 베토벤 사이클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사이클을 꿈꾸는 무대가 될 것이다.

“처음 베토벤과 만나 연주회를 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 준비했어요. 내가 베토벤을 깊이 이해를 못했던건지, 나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늘 거리감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 베토벤을 쳐야 한다.’는 욕구가 생겼고 녹음했고, 전곡 연주 회를 강행했고, 10년이 지나니 또 만나야 할 이유가 생긴 겁니다. 아마도 이 여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죠”.



이지영 음악전문지 월간 <피아노음악> 기자를 거쳐, 음악실> 작가, 성남아트센터 홍보미디어실, 공연기획부 과장, 음악문화공간 감독 역임. 현재 공연계간지 편집장, <한화클래식> 진행 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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