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 어느 왕의 비상贐鳖, 수원화성 <셩 : 판타스틱 시티>1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보내고 훗날 백성을 지키려 성을짓는다. 한 임금의 아픈 과거와 혁신적 도전, 백성들의 힘겨운 노고, 훌륭한 실학자의 활약까지. 수많은 노력의 결과로 세워진 수원화성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쌓여 있다. <셩 : 판타스틱 시티> 전시는 이 모든 역사의 바탕이 된 수원이라는 도시를 10명의 작가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우리는 그들에게 묻는다. 정조와 수원화성, 그리고 수원은 어떤 도시인가요?

글 김지수 / 사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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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시작, 현실의 정조



시절이 봄날처럼 좋고 풍성해야 백성들이 좋은 날만큼 보답할 수 있고,정치가 평화롭고 풍속이 밝아야 사람들이 좋은 시절을 그만큼 즐길 수 있다。

- 정조,《홍재전서》49권 <삼일> 중



효심 지극한 아들, 백성을 위하는 군주, 강력한 왕도정치의 중심이었던 정조.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팔달산 아래에 수원화성 축조를 계획했다. <셩 : 판타스틱 시티> 전시의 ‘셩’은 적의 공격에 맞서 백성을 지키는 ‘성城’의 의미와 밝게 살며 세상을 헤아린다는 정조의 이름 ‘셩祘’의 뜻을 합친 중의적 제목으로 전시의 주제를 아우른다. 현재 변화한 수원의 거리 한복판엔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는 수원화성의 모습이 굳건하다. 그때와 지금이 공존하는 이 풍경처럼 오래전 정조와 수원화성의 이야기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다시 한번 기록됐다. 10명의 동시대 작가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수원의 역사를 바라본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로. 총 3부로 나뉜 이번 전시는 왕릉의 도입부를 재현한다. 우리는 현실의 역사와 여과 없이 마주본다.

산 주변을 돌고 물길을 가볍게 지난다. 그 사이 높은 건물의 굴곡이 이어진 그림, ‘서장대에서 본 광교산’은 민정기 작가의 작품이다. 도시와 산의 경계가 수채화의 맑은 색감으로 자유롭게 풀어졌다. 시간의 충돌이 만들어낸 매력적인 그림이다. 한편 역사의 이면을 과감하게, 또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작가 서용선은 정조의 외로웠던 정치적 삶과 인간으로서의 아픔을 담아냈다. 뚜렷한 색채와 형상의 불균형으로 한 임금의 삶을 들춰본다.수원화성이 지어진 배경엔 《기기도설奇器圖說》이 있었다. 16세기 서양의 기술이 담긴 도서로 정조가 수원화성 축조 당시 정약용에게 건네주었으며 거중기의 시작이 된 중요한 자료였다. 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나현 작가는 개망초와 클로버 등 외국에서 건너온 귀화식물을 기록했다. 수원화성이 다름 아닌 소통의 결과물이라는 추리를 내놓은 것이다. 정조가 만약 서양 문물을 배척하는 왕이었다면, 이 성이 빠른 시간에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완성될 수 있었을까?

1부의 마지막, 박근용 작가의 ‘이젠, 더 이상 진실을 덮지 마시오’는 수원에 버려진 네온 간판을 새로운 문장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진실은 거짓의 반대편에 있다”라는 정조의 문장이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팽배하는 거짓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의 교차라는 전시의 또 다른 주제와 깊게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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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군주, 미완의 군주

전시의 2부에서는 개혁정치 아래의 정조와 죽음 이후의 정조를 함께 말한다.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개혁을 이끌던 그에게 반대 세력은 늘 따르는 장애물이었다. 삶과 죽음의 교차 공간이기도 한 두 번째 전시장은 정조의 지난한 고전을 담았다. 



인재는 때로 신분과 무관하게 나오니, 기이한 꽃이나

시기한 풀이 시골구석의 더러운 도랑에 나는 것과 같다。

- 정조,《홍재전서》172권 <일득록> 중



최선 작가의 ‘나비’는 인종, 성별, 언어, 이념의 간극을 넘어 오로지 사람의 숨결로 완성됐다. 하얀 바탕 위에 파란 잉크를 떨어트린 후 숨을 불어넣은 모양은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름답다. 인재를 들임에 있어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선한 목적을 위해 힘쓰던 그의 노력이 묻어난다.정조가 떠난 후의 시간은 잊히지 않았다. 그 어딘가에 모습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작가 김도희는 그 흔적이 이 땅의 흙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켜켜이 쌓여온 흙을 모으는 작가의 여정은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새, 매일 밟는 이 땅이 품은 시간을 가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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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달의 이상향

지금까지 과거의 정조와 수원화성의 세월을 더듬어봤다. 마지막 3부. 이제는 내일의 우리를 바라볼 시간이다. 정조가 바라던 이상, 그 찬란한 미래를 지금 여기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이이남 작가의 ‘다시 태어나는 빛’ 은 움직이는 이미지로 과거와 현재를 병치한다. 각각의 이미지가 스크린을 관통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상을 관찰한다. 그렇게 미래의 가능성을 목격한다. ‘안상수체’를 비롯해 다양한 한글 서체 개발을 이끌어온 안상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글 표현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수원이라는 도시를 비췄다. 수원화성 글자의 재배열로 새로운 의미를 조합했다. 그 밖에 원형 캔버스에 먹의 형태를 그대로 나타낸 김성배 작가의 ‘셩–온새미로’는 실존과 영원이라는 이념에 관해 질문을 던졌으며, 김경태 작가는 포커스 스태킹 기법(여러 이미지를 결합해 심도 깊은 사진을 만드는 기법)으로 건축물 ‘서북공심돈’의 이면을 세밀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냈다.

10개의 전시 공간을 모두 지나며 우리는 오래전 어느 왕의 호기로운 도전과 이상적 도시를 향한 염원을 느꼈다. 그렇게 또 한 번 역사가 가진 가치를 고민한다. 변화가 없다면 발전도 없다는 것. 오늘 우리가 이곳, 개혁의 도시 수원의 아름다운 거리를 걸을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노력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잊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상상한다. 그의 이름 뜻처럼 밝은 눈으로 세상을 헤아리는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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