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 걸음마다 편지를 쓰는 여행, 수원화성 성곽길 스탬프 투어



수원화성을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단 두 시간. 걸음이 느린 이에게는 네다섯 시간. 길마다 추억이 서려 있는 사람에게는 하루 혹은 이틀. 아름다운 화성에 고요히 머물다 이윽고 편지를 써 본다. 곳곳에서 주어지는 열한 개의 도장은 마치 이 편지를 보내기 위한 우표와도 같다.

글·사진 박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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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어도 좋은 화성의 길

화성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흐른다. 그 어떤 변주나 거스름 없이. 푸른 자연 속의 성곽들은 언제나 한자리에서 수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수원화성 성곽길 스탬프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오전 11시쯤 도착한 화성행궁에서는 운 좋게도 무술 공연이 막 시작하고 있었다. 정조대왕이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등에게 편찬을 지시한 무예 훈련 교범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선보이는 시간. 신풍루 주변을 에워싼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색적인 무대에 찬사를 보낸다. 무술 공연이 끝난 후 행궁 안으로 들어가 안내소에 비치된 수원화성 성곽길 스탬프 투어 북을 찾아본다. 스탬프 북은 화성행궁 외에도 명소 11곳의 안내소마다 구비되어 있는데, 무료로 지급되고 있으니 한 사람당 한 부씩 챙겨 가면 된다. 첫 페이지를 펼쳐 제1경 화성행궁의 도장을 꾹 찍는다. 그림 같은화성행궁의 풍경이 종이 위로 담긴다.

푸른 자연 속에 어우러진 행궁의 모습은 몹시도 아름답다. 수원으로의 수도 이전을 꿈꾸던 정조의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일까. 오랜 세월을 견딘 궁궐인데도 어쩐지 청춘의 찬란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곳곳마다 깃든 역사 이야기를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들으면 더욱 유익할 터. 마침 화성행궁에서는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얻어 투어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하니, 관광안내소에서 해설을 신청하면 더 자세히 화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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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다 예쁜 단어가 새겨지는 여행

화성행궁 밖으로 나와 맞은편 길을 따라 걷는다. 도심을 가로질러 유유히 성곽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수원의 큰 매력 중 하나다. 조금만 걸으면 스탬프 투어 제2경인 수원화성박물관이 나온다. 화성의 역사와 문화를담고 있는 박물관은 화성의 옛이야기를 돌아볼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물론 이곳에서도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도장을 꾹 눌러 또 한 장의 빈칸을 채운다.

걸어가는 내내 옛 모습을 간직한 상점과 주택이 이어진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보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 분주하게 발전하는 수원이지만 한쪽 모퉁이에는 아직도 이토록 정겨운 모습이 반짝이고 있다. 즐거이 걷다 보니 제3경 창룡문에 발길이 닿는다. 수원화성의 동쪽 대문인창룡문. 그 주변으로 세워진 화성어차가 눈길을 끈다.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이 어차는 조선시대와 현재를 이동하는 수원화성 순환 열차다. 열차를 타고 성곽 주요 지점과 전통시장을 편안하게 일주할 수 있다. 

정조 시대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한 연무대에서는 활쏘기 체험이 한창이다. 어린아이, 연인 할 것 없이 연무대의 푸른 잔디 위에서 즐거운 웃음으로 추억을 채워나가고 있다. 이토록 그림 같은 풍경을 뒤로한 채 화성의 북쪽으로 향한다. 화홍문. 수원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의 수문 구실을 하는 곳이다. 수원천 위로 세워진 화홍문이 마치 둥근 무지개와도 같다. 맞은편으로 걸어가니 반가운 스탬프 함이 보인다. 다시 도장을 찍는다. 무지개, 청춘, 푸름, 사랑, 행복 등의 단어가 그 위로 같이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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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화성에게, 지난날의 나에게

제5경인 장안문은 뜻밖의 길목에서 마주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만난 것인데, 수원화성의 정문이기에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든다. 장안문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으며 수원을 수호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자리하고 있다. 수원 시민에게 화성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전통과 현대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일 테다. 그리고 그런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 역시 크나큰 축복이다.또 하나의 특별한 공간, 제6경 수원전통문화관으로 향한다. 역시 차들이 바삐 움직이는 장안문 버스 정류장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전통문화 예술의 계승과 수원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설립되어, 각종 전통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목재로 지어진 수원전통문화관은 푸른 잔디와 잘 어우러지며 그 존재 자체로 시민에게 아늑한 쉼을 제공한다. 문화관 옆길로는 행궁길 카페거리가 이어져 있어 산책 중에 곳곳에서 핫 플레이스를 발견할 수 있다. 예쁜 색감과 다양한 콘텐츠를 가진 카페들은 이 어여쁜 행궁길을 산책하는 내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길목마다의 풍경에 감탄하며 걷다 보면 수원화성의 서쪽 대문, 화서문을 만날 수 있다.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403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주변의 모든 풍경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데, 화서문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숨 쉬는 것이다. 갑자기 내가 걸어온 발자국 모양이 궁금해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에게는 화성의 변치 않음이 생소하다. 그러나 이 낯섦이 어쩐지 반갑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것은 때때로 삶의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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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 접은 이 편지를 보내며

그러니까 제8경인 서장대를 오르면서 느낀 것은 이 여행이 사실은 누군가의 편지 속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지나온 발자국이 문장이 되고, 이 넓은 화성이 편지지가 되는 것.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서장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전부다. 수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절로 한 소절의 시가 되고 만다.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팔달산 정상. 그곳에 자리한 서장대는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가만히 서서 가족의 얼굴이나 친한 친구의 안녕을 생각한다. 활기찬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제9경 팔달문과 제10경 남수문을 지나오면서도 그 마음은 떠나지 않는다.이토록 아름다운 문화재를 건립한 정조대왕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지금까지 이를 잘 보존해준 선조들에게 감사하다.

이 여행은 제11경 생태교통 마을커뮤니티센터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센터에서는 이토록 아름다운 수원의 생태를 보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운영되고 있다. 수원의 다양한 문화재를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 전기 사용을 줄이고 환경을 보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현재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 전기를 만드는 체험이 진행 중인데,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에게도 환경에 대한 생각을 친숙하게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스탬프 투어는 화성의 명소 11곳 중 10곳의 도장을 받아오면 지정된 완주 인증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 비어 있던 스탬프 북을 도장으로 가득 채워 넣고서 완주 인증 카페로 향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차분히 이 여행의 편지를 끝맺으려 한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우표를 달아, 미래로 가는 우체통에 넣고 싶다. 푸르게 기억될 화성의 문장들을 길이길이 간직하기 위해. 그 언젠가의 내게로, 또 누군가에게로. 추억이 담긴 즐거운 편지 한 통을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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