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 좋아하는 것을 짊어지고, 독립출판물 작가 5인과의 만남


음악 시장에 인디음악이 있다면 책 시장에는 독립출판이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주류를 비켜나 좋아하는 음악을 추구하는 인디뮤지션처럼 1인 출판사 또한 변방에서 홀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책이 대중에게 공감을 얻고 잘 팔리면 좋겠지만 아니라도 딱히 나쁠 건 없다. 야망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좋아서 책 같은 걸 만드는 사람, 그중에서도 수원에 살고 있는 다섯을 만났다.

글 오일   그림 장수용



 



 



가지가지하는 김가지, 김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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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김가지입니다. 고등학생 때 별명을 활동명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독립출판물을 제작하기도 하고 니들펠트 공예 작가로 활동 중이에요. 《우울전시집》은 20대 때 쓴 글을 모아서 만든 첫 시집이에요.



첫 책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글을 쓰는 동안 언젠가 이걸 책으로 묶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책을 만드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 그저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고 편집 툴인 인디자인을 다루면서 고대하던 책을 만들게 됐어요. 첫 시도이다 보니 지금은 허술한 구석이 많이 보이는데, 그땐 결과물에 꽤 만족했어요.



많은 책 중에 왜 독립출판물을 좋아하나요?

자유롭고 신선한 부분이 좋아요. 요새는 책 형태가 완벽하게 갖춰진 독립출판물이 많지만 제가 처음 이 신을 접했을 때만 해도 판형이나 제본, 제작 방식이 독특하고 다양한 책들이 많았거든요. 거기에 담긴 내용도 그렇고요. 이런 걸 누가 사나 싶은 책들을 보는 게 재밌어요.



다양한 수업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니들펠트(양모를 바늘로 찔러서 모양을 만드는 작업)라는 공예 기법으로 키링이나 브로치를 만드는 원데이클래스를 주로 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책 만들기 수업, 간단한 일러스트로 스티커나 엽서 같은 굿즈를 제작하는 수업 등을 진행했고요. 현재는 행궁동 ‘브로콜리숲’ 책방에서 나혜석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페미니즘 북클럽을 진행하고 있어요. 벌써 10기나 됐네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막연하게 헌책방이 하고 싶어요. 정말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책방 일은 돈을 못 번다는 걸 너무 잘 알게 돼버려서(웃음). 개인적으로 재활용에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는 헌책과 중고 물건을 함께 판매하는 공간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좋아하는 독립출판물을 추천해 주세요.

정하수의 《해는 우슴 달은 우름》. 정신분열증에 걸린 의대생이 폐쇄병동에 있을 때 어머니께 쓴 편지를 모아 만든 책이에요. 전국의 독립서점에서 구하실 수 있어요.



 



 



취향을 모아서 그림, 장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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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의 초상》은 어떤 책인가요?

행궁동 카페에서 만난 음료와 디저트를 그림으로 기록한 에세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찾지 않게 되는 사진보다는 편안하게 눈으로 본 걸 그림으로 남겨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첫 책과 두 번째 책을 펴냈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해요.

처음 만든 동화책은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어리둥절했다면 두 번째 책은 내심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그런데 국제도서전에 참여해서 어떤 책방에 제 책을 가져가 보여 드렸더니 흔쾌히 입고해달라고 하시지 뭐예요. 그때 ‘아, 내 취향에 공감하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꼭 있구나!’ 하는 걸 깨닫고 다시 의욕을 다졌어요. 부지런히 입고처를 알아보자고 다짐했죠.



독립출판을 하면서 크게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스스로 책을 내고 유통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발견을 계속하게 돼요. 책을 둘러싼 여러 상황에 처하면서 내가 모르던 나를 알아가는 게 재밌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창작하는 게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프리랜서일 때는 일이 없으면 생활에 쫓겼는데,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게 되니 이번에는 일에 치여 제 작업을 못 한다는 게 슬펐어요. 어떻게 하면 돈벌이와 좋아하는 일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가던 차에 <타샤 튜더>라는 영화를 봤어요. 정원을 가꾸고 그림책을 지으며 90세까지 살다 간 동화책 작가의 삶을 다룬 작품이었는데요. 바로 그녀를 롤모델로 삼자고 생각했어요. 일도 생활도 좋아하는 방향으로 오래도록 즐기면서 늙어가고 싶어요.



수원에서 자주 가는 좋아하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선경도서관. 주로 3층에 있는 휴게실을 이용하는데요. 창 너머로 보이는동네 정경이 정말 멋져요. 휴게실이니까 조그맣게 떠들어도 될 것 같은데, 시끄럽게 굴면 어디에선가 아저씨가 와서 “조용히 하세요!” 하는 정숙한 분위기에요. 나름대로 인기 있는 곳이어서 자리가 없을 때도 있어요.



요즘 만들고 있거나 생각하는 책이 있나요?

영화 속 19금 장면들만 모아서 그림으로 엮어보고 싶어요. 19금이라고하지만 야하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센슈얼하다고 느꼈던 장면, 의외의 장면 같은 걸 캐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가을을 위한 책을 추천해주세요.

《디저트의 초상》. 행궁동의 감각적인 카페들을 그림으로 투어할 수 있는 드로잉 수필집이에요(웃음). 수원 사람이라면 ‘어, 여기 나도 가본 곳이네’ 하면서 반갑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의 글쓰기, 박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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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만 책방을 열고 있어요. 평일에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IT회사에서 3D 설계 프로그램을 교육해요. 책방을 연 후에는 직장에서 힘들 때마다 퇴사 위기가 오는데요. 책방을 유지할(월세를 내고 나면 수익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극복해요. 어찌어찌 경계에  서 있네요(웃음). 



책방은 어떻게 열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예전부터 막연히 책방이 하고 싶었어요. 내 책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기 전부터요. 심지어 책을 낼 때도 어떤 생각이었냐면 ‘아, 책 낸 주인이었으면 좋겠다’ 그랬어요. ‘그런의미에서’라는 책방 이름은 제 책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맨 끝 자는 한자로 글 서書 자를 써요.



꿈꾸던 책방을 차리고 나니 느낌이 어떠신가요?

딱 3개월 지나고 나니까 적응됐어요. 처음에는 책방에 출근할 때마다 웃으면서 나왔는데 차츰 일상이 돼버리니 감각이 무뎌졌어요. 그게 안 좋다는 건 아니에요. 초반에 힘을 빼고 책방 일을 시작했다면 이제는 진지한 고민을 하죠. ‘어떻게 하면 책방에 사람들이 더 많이 올까?’, ‘어떻게 하면 수익이 날까?’ 애초에 제 월급으로 책방을 유지할 생각이었지만요. 책방에 종일 손님이 없는 날도 크게 걱정은 안 해요. 그런데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책방을 운영한다면 엄청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요.



첫 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2017년 새해에 올해는 꼭 책을 써보자!’ 하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책 만들기 수업 공지가 뜬 걸 본 거예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입금을 해버렸어요. 퇴근하고 책방에 달려가 한 달 동안 수업한 결과물이 제 첫 책 《너이기도 했다가 너일 때도 있었다》예요. 당시에 제가 쓴 블로그 글이 1,000개 정도 됐는데, 그걸 간추려서 나온128개가 책의 글감이 됐어요. 



다음 책 소식이 궁금합니다.

이번 책도 지난 책들처럼 사랑에 대한 에세이가 될 것 같아요. 표지 그림은 디자인 하는 동생이 맡아줬고요. 제목은 《마음을 이야기 할 때의 마음》이에요.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80쪽짜리 얇은 책이 될 것 같아요. 9월에 서울 디뮤지엄에서 열리는 독립출판페어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발매할 예정이에요.



가을밤에 읽기 좋은 책을 추천받습니다. 

김아혜의 《달 사진을 보내주는 건 사랑받는 걸까》. 독립출판물 신간인데, 진짜 좋아요. 사랑 이야기지만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이 읽혀요. 마음 편히 독서하고 싶을 때 한번 읽어 보세요.



 



 



관계를 그리는 작가, 임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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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독립출판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창작 모임에서 시를 쓰시던 분이 같이 책을 내보자고 제안해주셔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첫 책을 냈어요. 그게 2015년에 나온 《여기부터》라는 책이에요. 이후에 독립출판 관련 행사에 다니면서 독립출판물에 친근감이 들었을 무렵 용기를 얻어 두 번째 책을 작업했어요. 제 연애 경험을 담아서 행복하지 않은 연애를 그린 《우리 이제》를 냈죠. 생각보다 많은 분이 공감해주셔서 힘을 얻고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우리 이제》는 디자인이음에서 재출간됐어요. 요즘은 출판사들이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출판 마케터의 취향이나 출판사의 콘셉트에 따른 거겠지만 좋은 책들이 더 널리 알려지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평소 그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오, 이런 책도 있구나’하고 독립출판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좋고요.



특유의 서정적인 그림체가 참 좋아요.

감사합니다. 제 그림의 담담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그리려고 하는 것 같고요. 요란하지 않은 느낌으로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제가 말하고 싶은 감정과 느낌을 단단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요.



나운 님의 도서 입고 여정이 궁금해요.

책이 처음 나오고 두세 달 정도는 책방에 책을 돌려요. 입고 신청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안 오는 책방도 있지요. 독립출판 시장이 아직까지는 에세이, 시, 소설류의 텍스트 위주잖아요. 제가 하는 만화는 주류가 아니다 보니까 책방 콘셉트에 따라서 들어가는 곳도 있고 못 들어가는 곳도 있어요. 책을 입고했으니 책방 계정으로 책 소개도 해주면 좋겠는데 안 올라오면 또 전전긍긍. 맨날 피드 새로고침 하고 계정 들어가 보고…. 저뿐만 아니라 책 만드시는 모든 분들이 처음에는 다 그런 시간을 거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9월부터 책방 별책부록에서 단편 만화 그리기 워크숍 5기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책은 올해 안으로 두 권을 내보려고 준비 중인데요. 제 일상 에피소드가 담긴 가벼운 네 컷 만화 《고냥일기》와 단편 소설집 느낌의 만화집을 작업하고 있어요. 두 권 중에 뭐라도 한 권은 꼭 11월 중에 내려고 해요.



내 책을 만들고 싶은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하고 싶다면 도와줄 사람은 많으니까 스스로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가세요. 의지와 지구력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가을을 같이 보낼 책 한 권을 추천받아요.

오일의 《순례의 해》. 동네 여행, 카페와 빵집을 순례하는 내용인데 수원 지역이 많이 소개돼서 재밌게 읽었어요.



 



 



시가 너에게 닿도록,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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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업 이야기책 《좋아하는 것은 나누고 싶은 법》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제가 올해로 교사가 된 지 10년이 됐어요. 아이들한테 내가 제일 전하고 싶을 게 뭘까? 국어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궁리하다가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첫째는 감수성이고, 둘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어른이 돼서도 그걸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아울러서 가르쳐줄 순 없지만 좋아하는 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정도는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를 전하고 싶던 저의 시도를 책으로 담게 됐어요.



첫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가장 처음 만든 책은 사진집이었어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찍어둔 사진들이 제가 보기에 좀 멋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혼자 보기 아깝다고 생각해서 책으로 만들었죠(웃음). 초판 10부를 찍고 책방 한 곳에만맡겼는데 지금은 재고가 없어요. 지금 돌아보니 종이 재질에 따른 가격이라든지 인쇄소 정보 같은 걸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진을 따져보지도 않고 비싸게 찍은 책이었네요.



독립출판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교사로서 아이들과 하는 시 수업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남들에게 소개했을 때, 관심 분야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제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거 하는 선생님도 있구나’ 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거요. 저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같은 책을 읽으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그 세계의 이면을 보게 되더라고요. 각각의 사람 사는 얘기를 포장되지 않은 날것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그리고 책을 둘러싼 모든 만남이 즐거워요. 책방을 구경 다니는 것도요.



쓰기의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내 책을 돈을 주고 사 간다는 건, 내 글이 어느 정도 읽을 만한 것으로 인정받았다는 거잖아요.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고, 피드백이 오면 힘이 나서 계속 더 쓰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지혜 님의 책을 읽고 무엇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얼마 전에 《경찰관속으로》라는 책을 읽고, 잘 모르는 사람이 생각하는 경찰의 이미지와 실제 경찰이 하는 일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알게 됐어요. 세상의 많은 경찰관이 이렇게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도 교사로서 이번 책을 썼잖아요. 누군가 제 책을 읽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도 많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면 좋겠어요. 선생의 일이라고 하면 그냥 편해 보이고, 교과서만 가르칠 것 같은 인식이 있는데 요즘 정말 노력하는 선생님들 많거든요. 영화로 수업을 한다든지, 요즘 나오는 소설책으로 수업을 한다든지. 이런 변화들을 더 많은 분이 알아준다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독립서적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서귤의 《책 낸 자》. 독립출판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세계의 명과 암을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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