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 길 위에 선 사람들,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감독 신교준


조선의 문화적 황금기를 이끌던 22대 왕 정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그의 효심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전해진다. 1795년 어머니와 함께 8일간의 대장정에 오른 ‘을묘년화성원행’은 현대에 들어 단순한 행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중심에서 축제를 지휘하는 신교준 감독을 만났다. 글 김건태  사진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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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수원 시민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2019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감독을 맡은 신교준입니다. 작년에 이어 2년째 행렬을 맡게 됐어요.





어떤 인연으로 이번 행사를 감독하게 됐나요?

저는 1999년 세종대왕 즉위식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순수 전통 행사를 재현하고 있어요.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어가행렬, 즉위식, 의례, 왕과 관련된 행사를 맡았고, 작년부터 수원문화재단에서 정조대왕 행차를 재현하게 됐죠.





역사 공부도 많이 하셔야겠어요.

전국 지자체 거의 모든 행사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다뤄요. 저 역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조대왕 능행차를 맡으며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했죠. 정조대왕 관련 책자만 8권 정도를 공부한 것 같아요.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 경제, 정치, 군사 등을 중점적으로 공부했어요.





정조대왕 능행차는 어떤 고증에 의해 진행되나요?

정조대왕께서 1795년에 8일간 수원화성에 오셨어요. 그걸 정리해놓은책이 《원행을묘 정리의궤》인데, 책 안에 수록된 ‘반차도’에 의거해 능행차를 재현하고 있어요. 당시 6천 명 정도의 인원이 본 행렬을 꾸렸고, ‘반차도’에는 1,779명이 표현되어 있죠. 지금 저희 행렬 역시 1,779명의 인원으로 진행하고 있고요.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규모네요. 당시 행렬의 먹고 자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기록을 보면 행사를 위해 임시 관청인 정미소를 만들었는데요. 10만 냥 정도의 비용을 계획했다고 해요. 그런데 정조대왕께서는 전체 비용 중 6만냥만 사용하시고, 나머지 4만 냥은 쌀을 사서 백성들에게 나눠주셨다는 미담이 있어요.





그 해에 유난히 규모가 컸던 이유는 뭔가요?

정조대왕은 평소에도 화성 융릉(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에 종종 방문하셨어요. 그러다 1795년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처음 함께 행차하셨죠. 아버지를 모신 융릉을 방문하시고, 회갑연도 치르시고, 화성행궁 축성도 시찰하실 겸 8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려와 계셨어요.





1996년에 처음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하다 2016년부터 ‘공동재현’이라는 표현이 추가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정조대왕 능행차는 수원화성문화제의 대표 프로젝트 중 하나였는데, 2016년부터 수원시와 서울시, 화성시가 공동으로 재현하기 시작하면서독립적인 행사가 됐죠. 거기에 경기도까지 공동 주관을 하며 지자체 간 소통이 중요해졌어요. 총 59.2km의 거리를 연속성 있게 잇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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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19년 일정과 규모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오는 10월 5일과 6일, 이틀간 진행되는데요. 정조대왕께서 서울 창덕궁에서 출궁하셔서 저녁에 시흥행궁까지 오시는 게 첫째 날의 행렬이에요. 둘째 날은 금천구청에서 출궁해, 안양시와 의왕시를 지나 수원까지 행차하시죠. 수원에서는 노송지대부터 종합운동장, 장안문, 화성행궁을 거쳐 연무대에서 마무리하는 일정이에요. 같은 날 아침에 화성행궁에서 융릉으로 올라가는 행렬이 동시에 진행되고요. 규모를 보자면 안양행행(구간), 의왕행행, 수원행행에 총 2,662명, 말 355필이 참여해요. 특히 수원 2구간의 경우 《원행을묘 정리의궤》 ‘반차도’에 그려진 1,779명이 그대로 투입되고, 말 역시 140필을 준비 중이에요.





행렬의 인원은 어떻게 선발하나요?

기본적인 인원 구성은 국방부와 문화관광부의 협조 아래 군인들의 참여로 이뤄져요. 군인의 참여는 장용형과 수어청 등 당시 최고의 정예병들이 함께 행차했던 것을 재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죠. 그 외에도 지자체별로 가족 체험단 같은 시민 체험단을 별도로 모집하고, 외국인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해요.





외국인 체험단을 통해 축제의 세계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왕의 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는 세계적으로도 몇 없어요. 특히 동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죠. 일본은 천황이 살아 있어서 불가능하고, 중국과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라 할 수 없거든요. 이번 어가행렬에는 300여 명의 외국인

이 참여해요. 하나하나 분장하고 조선시대의 화려한 복식과 무기, 대열 등을 체험할 예정이에요.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발돋움하기에 잠재 요소가 많은 행사죠.





듣자하니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의 역할에는 특별한 선발 기준이 있다고요.

정조대왕은 1795년 당시 나이가 44세였고, 혜경궁 홍씨는 60세였어요. 그 기준에 준하는 분을 우선 고려했고요. 사회봉사 활동이라든지 평소에도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기회를 드렸죠.





직업 배우를 섭외하는 줄 알았어요.

행렬 중간에 왕과 백성의 격쟁 부분이나 자객이 등장하는 부분에 한해 전문 배우가 활약하지만 그 외에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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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된 것 같은데, 격쟁이 뭔가요?

조선 시대 한양의 백성들은 신문고를 두드려서 억울한 일을 호소할 수 있었는데, 지방의 백성들은 하소연할 방법이 딱히 없었어요. 그래서 왕께서 내려오실 때 목숨을 걸고 그 앞을 가로막아 간언을 하는 거죠. 왕께 가까이 갈 수 없는 백성은 멀리서 징이나 꽹과리를 쳐 시선을 끌기도 했고요.

이번 행사에서는 행렬 중간에 30명의 백성이 왕께 호소하는 장면을 넣었는데요. 청년의 취업 문제나 주택 문제, 노인에게 걸려오는 보이스피싱 등 현대적으로 각색해서 진행할 예정이에요.





이미 한 번 행사를 감독하셨으니 보완해야 할 점을 연구하셨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고증에 좀더 신경 썼어요. 특히 궁중 복식에 관해 엄격한 자문을 받아 서울시와 수원시, 화성시의 의복을 통일했고요. 병사들의 복식과 기물 등을 매뉴얼화하는 데 힘을 쏟았어요. 행사의 매뉴얼화는 10년 후에도20년 후에도, 누가 맡아도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일이거든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사실 궁중의례는 딱딱한 행사거든요. 장엄하고 엄숙하죠. 하지만 정조대왕께서는 일반 시민들과의 어울림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그 뜻을 받아 일반 시민들이 축제로 느낄 수 있을 만한 프로그램을 보강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본 행렬은 장엄하고 엄격하게 진행하되 외적인 부분은 축제로 즐길 수 있어야 하겠죠.



 



축제로 즐기기 위한 프로그램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세계적인 퍼레이드에는 보통 가무가 들어가요. 정조대왕 능행차에서도 ‘조선백성 환희마당’이라고 해서 경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요. 단체 신청을 받아서 본인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행렬 후미에서는 전문 퍼레이드 팀이 8미터짜리 정조대왕의 인형이나 황룡 등 왕을상징하는 오브제를 선보일 거예요. 상당히 수준이 높아요.





8미터라니, 잘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건물 2~3층 정도 높이인데, 문제는 장안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거예요.대왕이 고개를 숙일 수는 없기에 정조대왕 오브제는 특별히 장안문 안쪽에서 행궁광장까지 피날레를 장식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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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씀하신 퍼레이드가 상당히 기대되는데, 즐거운 감상을 위한 팁을 알려주세요.

올해는 전년 대비 관람석의 비율을 2배 정도 늘렸어요. 장안문에서 행궁광장까지 3단짜리 관람석이 지정석으로 설치되어 편의를 높였죠.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면 행사 당일에는 하루 종일 본인의 자리가 되는 거예요. 중간에 다른 볼거리를 보고 와도 늘 비어 있는 자리인 거죠. 개인적으로 여민각 앞쪽 좌석을 추천 드리고 싶어요. 격쟁과 자객 공방전 등을 모두 그곳에서 진행하거든요. 물론 다른 좌석에서도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행렬을 감상할 수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문화해설사도 있나요? 

각 좌석의 사이사이에서 행렬을 구성하는 인물과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역할을 해요.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죠.





이번 행사가 끝난 뒤에도 능행차 콘셉트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루트로 시작하면 좋을까요?

정조대왕 능행차 테마로 여행 일정을 잡으신다면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계획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행궁을 둘러본 뒤 성곽을 따라 서장대에 오르는 걸 추천해요. ‘야조夜操’라는 야간 군사 훈련의 흔적을 경험해보고, 산 아래 펼쳐진 성곽길의 야경도 감상하고요. 낮에 여행하신다면 행렬의 일부인 노송지대를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좁은 소나무길을 걸으며 운치를 느낄 수 있답니다.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큰 사고와 실수 없이 행사를 끝마치고 싶고요. 앞서 말한 능행차 매뉴얼 작업을 잘 마무리하고 싶네요. 철저한 고증과 감수를 통해 원형을 보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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