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 영화 <굿 윌 헌팅>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셀 수 없이 많은 타인과 만난다. 그중 누군가는 그저 스쳐가지만 누군가는 우연히 찾아와 삶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윌에게는 숀이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우연히 찾아온 그를 받아들인 것은 윌의 의지다. 앞뒤 안 가리던 반항아 ‘윌 헌팅’이 ‘굿 윌 헌팅’이 되는 데까지는 좋은 사람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글 이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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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사람을 안다는 것은

감히 단언컨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전부 알고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20년을 함께 지낸 친구도, 말 못 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연인도, 설령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한 부모님일지라도. 사람을 목적어로 두고 ‘안다’고 말할 때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줄줄 읊고 마는 게 아니라,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켜켜이 쌓여온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나 숨기고 싶은 아픔을 품고 있고, 그 아픔은 때로 나 자신조차 마주하기 두려울 만큼 커다랗기에 타인을 진정으로 알기란 쉽지 않다.

스무 살 청년 윌 헌팅의 역사에는 깊은 어둠이 깔려 있다. 고아였고, 입양 후 몇 번이나 파양되었고, 그 과정에서 끔찍한 학대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 겪은 불행은 날카롭게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삶을 찔러댔을 것이다. 그런 삶을 피해 도망만 다니다가 스무 살이 된 윌은 자신의 천재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발휘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시간을 죽이면서 자신의 젊은 날이 이대로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날마다 맥줏집을 전전하면서 살아도 시간은 흐르고, 그 안에서는 굳이 아픈 과거를 들춰낼 일도, 앞으로 나아갈 필요도 없을 테니까. 윌에게는 분명 누군가가 필요해 보였다. 꽁꽁 잠가놓은 그의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봐 줄 누군가, 바로 숀 같은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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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마음의 주인

8개월 남짓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내 마음 곳곳에는 상처로 얕게파인 웅덩이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웅덩이에 오랫동안 고여 있던 물을 퍼내 주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녀는 내가 스스로 물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함께 길을 터주었을 뿐, 물을 옮길지 말지 결정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말하자면 마음도 상처도 다 내가 주인인 것이다.

정신과 교수인 숀과 내담자로 방문한 윌이 처음 만난 날,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것처럼 서로에게 날을 세운다. 서로를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짐작과 달리 윌은 두 번째 만남에서 숀의 진심을 알아챈다. 치기 어린 말로 자신의 상처를 헤집은 윌에게 숀은 말했다. 너는 단지 오만으로 가득한 겁쟁이 어린아이일 뿐이고,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으면 어떤 것도 알 수 없다고. 네가 너를 보여준다면 나도 너를 기꺼이 돕겠다고.

숀은 지루한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데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리고 윌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마주 보게 하려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오만함으로 감춰오던 그의 속내는 수많은 ‘왜?’라는 질문 앞에 점점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천재성을 발휘하고 싶은 욕구, 연인에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어린 시절 느끼던 이유 모를 죄책감 같은 것들. 숀은 진심을 간파당할 때마다 다시 도망가려는 윌의 손을 슬며시 잡아끌며 천천히 마음을 어루만졌다. 발가벗은 마음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까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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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문 앞에서 기다려준 사람들

인생이 1층부터 100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각자 1층의 첫 계단에서 걸음을 뗄 것이다. 어떤 계단은 너무 얕아서 한 번에 

세 칸씩 올라갈 정도로 수월할 테고, 어떤 건 한 칸 내딛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파를 수 있다. 윌의 앞에는 아마 무척 가파르고 거친 계단이 놓여 있었을 것이다. 겨우겨우 8층쯤 올랐는데 누군가 아래로 밀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윌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모든 계단에는 층마다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가끔은 숨통을 터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윌의 문 앞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처키, 연인 스카일라, 그리고 숀이 서 있었다. 윌의 인생에 그들이 찾아온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행운이다. 나도 저런 멋진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고 싶다고 바라며 내가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곱씹어본다. 문득 지나가는 얼굴 중에 나를 알고 싶어 하고, 상처가 나갈 수 있는 길을 함께 터주려던 사람들이 이미 존재하거나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만에 하나의 경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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