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호 우리, 같이 사는 일 <뜻밖의 초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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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대는 물결 위에 떠다니는 오리를 본다. 물가를 빙 두른 억새 군락을 따라가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로 솟은 아파트 꼭대기 층에 시선을 멈춘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든 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렇듯 자연과 인간은 당연하게 공존하지만, 그를 위해 얼마나 세심한 노력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뜻밖의 초록을 만나다>는 광교신도시와 호수공원의 관계,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돌아볼 ‘뜻밖의’ 기회다.





글 이다은   사진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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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들이다



광교의 ‘초록’은 애초에 존재했다. 신도시가 조성되는 동안에도 저수지의 풀잎은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졌을 테다. 식물과 동물은 물론 바람과 물결, 그리고 햇빛까지. 그들은 한자리를 맴돌며 저수지가 호수공원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초草’는 이 도시가 광교라는 이름을 얻기 전부터 생태를 이루었던 자연을 담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서로 몸을 지탱하는 한 무더기의 억새가 고요히 서 있고, 옆에는 햇살이 잘 깃든 숲을 옮겨놓은 캔버스가 걸려 있다. 전시는 설치, 사진, 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을 들였고, 우리는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그 속으로 이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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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바라보다



두 번째 섹션 ‘록綠’에서는 사회적인 개념에 의해 으레 ‘녹색’으로 규정되는 자연을 여러 시선으로 편집하고 정의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가들은 자연을 시각적으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냄새를 채집해 맡게 하고, 꽃의 뿌리까지 본뜬 조각으로 살아 있는 것보다 더 생생한 질감을 표현한다. 그중에서도 실제 광교의 생태 연구를 바탕으로 새롭게 제작된 작품들은 지역 주민에게 한층 실감나게 다가온다.

전시 중반에 구성된 설치 작품은 일종의 공원을 연상하게 한다. 나뭇잎 덩굴이 옅게 비치는 하얀 벽 앞에 방석을 깔고 앉으면 마치 도심 속 공원에서처럼 쉼과 고민의 시간을 충족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자연을 ‘녹색’이 아닌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생각에 잠길 것이다. 그런데 자연을 규정하는 일 자체가 인간의 편의에 의한 것은 아닐까? 의문과 우려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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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포개어지다



우리는 흔히 도시와 숲을 반대 개념으로 여긴다. 도시가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계획된 삶의 터전이라면 숲은 인간 밖에서, 인간 없이 스스로 역사를 쌓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는 둘이 ‘숲이 있는 도시’라는 이름으로 균형을 잡아가며 포개어지고 있다.

마지막 섹션 ‘만나다’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게 되면서 맺는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시관 한쪽에 인간과 자연의 인연을 뜻하는 붉은 실들이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와 있는데, 실에는 호수 주변에서 주운 것들을 매달아 놓았다. 대부분 나뭇잎과 열매들이지만 곳곳에 페트병과 목장갑 같은 쓰레기도 보인다. 자연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려는 노력과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미숙함이 한곳에 섞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미숙함을 채워야만 한 겹씩 더 포개어질 수 있다.누군가에게는 이번 전시가 초록빛을 마주하기 힘든 계절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시가 던지는 질문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기에 그저 곱씹는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일에 대해, 그 일을 지켜내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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