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호 우리에겐 아직 꺼내지 않은 춤이 있다 ‘삶, 해석으로서 춤’으로 하나 된 사람들


“나 같은 게 무슨 춤이야. 춤을 배우기엔 너무 늦었어.” 춤이란 타고난 유연함과 리듬감, 치열한 과정을 밟아야만 구현할 수 있는 ‘특별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여기, 자기 안의 춤을 추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다. 8개월 전까지만 해도 춤은커녕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무대 위에 섰다.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삶, 해석으로서 춤’은 춤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중장년을 모아 자기 안의 춤을 일깨우게 한 프로그램이다. 수업을 결산하는 무대에서 그들이 추는 것은 단순한 춤이 아니다. 그동안 한 번도 말 걸지 않았던 자기 자신이다.



 



글 김건태 사진 Hae 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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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춤, 인문학 선생님 김옥희



 



《인인화락》 독자들을 위해 프로그램 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서울무용교육원 대표이자 이번 프로그램의 강사 김옥희라고 해요. ‘삶, 해석으로서 춤’은 한국문화예술연합회와 수원SK아트리움, 그리고 저희 서울무용교육원이 중장년층 대상으로 8개월여에 걸쳐 총 30회 동안 행한 ‘춤, 인문학’ 프로그램이에요. 움직임, 몸짓, 춤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게 되죠.



 



춤과 인문학의 결합이 낯설어요.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나요?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지혜와 교양을 말해요. 우리가 다루는 춤 역시 호흡, 갈등의 표현, 몰입 등을 내재하고 있어서 인문학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춤과 인문학이 하나로 모여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몸으로, 춤으로 사유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겠죠. 나를 담고 있는 몸, 신체기관을 탐색하는 것부터 시작이에요. 먼저 자기 몸을 이해하는 과정을 마친 뒤에는 내 몸을 위한 위로의 춤을 추죠. 중장년이 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지 못하잖아요. 춤의 요소 중 리듬, 관계, 협업을 이해하고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사유하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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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대부분이 춤을 배워본 적 없는 비전공자라고 들었어요.



중년을 살아간다는 건 자기 삶의 경험을 몸속에 가지고 있다는 의미예요. 저는 다만 그것을 춤과 무용으로 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칠 뿐이에요. 화려한 기술을 연마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읽고 몸짓으로 표현하는 거죠. 춤은 몸속에서 나오는 거라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해요. 춤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그렇죠. 각자 살아온 인생과 경험이 달라서 그 몸짓도 달라요. 억지로 똑같은 동작을 만들지 않아요. 자신의 춤을 존중하고 상대의 춤과 공감하는 게중요해요.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잃었던 관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게 되죠.



 



한편으로는 중년의 몸이 생각처럼 유연하지 않을 텐데, 참가자들이 힘들어하진 않던가요?



처음에는 뻣뻣한 몸 때문에 갈등하지만 그것 또한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식의 틀을 깨도록 해요. 내 몸은 왜 딱딱할 수밖에 없는지 알고 나면 그 몸에 호흡을 불어넣는 방법도 저절로 터득하게 되죠. 개중에는 처음보다 유연해지는 사람도 있지만, 유연하지 않아도 내 몸이 잖아요. 그 몸을 안고 추는 거예요. 사람의 몸에 절대성은 없으니까요. 유연성을 기르라거나, 더 높게 뛰라는 식의 교육은 하지 않아요. 내 안의 무언가를 움직이는 것이 곧 춤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느닷없이 창의적인 동작도 나오게 되고 그 안에서 성찰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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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잘 추고 못 추고 판단하는 것도 이 수업 안에서는 무의미한 일이겠네요.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여기 모인 참가자들의 춤을 보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봤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몸이 좀 뻣뻣해 보이지만, 다시 보면 귀여움도 묻어나고 당황하는 모습도 있고, 더 도전해보려는용기와 고집도 보이게 될 거예요.



 



자기만의 춤을 출 때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요?



끊임없이 자기를 들여다보는 성찰이 필요해요. 마음먹은 동작이 안 돼서 우는 분도 있어요. 자기 자신의 몸을 인정하지 못한 경우죠. 하지만 끊임 없이 자신을 돌보게 되면, 동작이 안 되더라도 마음이 넉넉해져요. 또 함께 춤추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용기를 얻기도 하고요. 우리가 배우는 움직임은 결국 수행과 같고, 수행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이며,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힘이 돼요. 참가자들이 자신을 속박하는 절대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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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나요?



자연으로 현장 학습을 나간 적이 있어요. 비가 오는 숲이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나무이고, 풀이며, 바람이었어요. 넓은 터에서 다 같이 명상을 하던 그 고요한 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아요.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는데, 끝으로 참가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제가 믿는 것 중 하나는 30회에 걸쳐 춤추는 동안 우리 스스로 진실했다는거예요. 무대를 앞두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다들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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