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호 요리도 조리도 자연스럽게, 자연요리연구가 이선미


수원전통문화관에서 진행되는 체험 프로그램 ‘전통문화관의 요리팁’이 막 끝났을 무렵, 이선미 자연요리연구가가 조리실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문을 열면 맛있는 냄새가 잔뜩 풍겨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강하고 화려한 향 대신 은은하고 깊은 온기가 조리실을 담뿍 메우고 있었다. 복잡한 가공이나 인위적인 양념 없이,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로 순수하게 요리하는 자연요리연구가. 그녀가 내어준 음식은 정말 맛있었지만, 나는 이내 걱정에 휩싸였다. 대화하면서 속이 더부룩하면 어떡하지? 불편한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어떡하지? 그런데 이게 웬걸, 배 속은 이루 말할 데 없이 편안하고 느슨한 미소마저 흘러나온다. 어… 건강식이 이런 거야? 이거… 음식으로 부린 마법 아냐?





글 이주연  사진 Hae 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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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주신 음식은 정말 맛있었어요. 자연요리연구가라는 직업을 소개해주시겠어요?

저는 우리 땅에서 자란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있는 그대로 먹는 걸 추구해요. 성장촉진제를 비롯한 인위적인 처리를 하지 않은 제철 재료는 생김새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영양이 살아 있거든요. 그런 식재료를 활용하여 본연의 맛을 살리는 요리를 연구하고 있어요. 지금은 마트에만 가도 각종 양념들을 쉽게 살 수 있는데요. 저는 양념을 최대한 덜어내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방금 마친 수업에서도 직접 볶은 황토 소금,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만 사용해서 수강생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었죠.





자연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21년 전에 출산한 아이의 호흡기가 이유 없이 좋지 않았어요. 생후 1개월 때부터 병원 생활을 시작했고, 그때 건강과 식생활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이를 위해 요리를 공부하면서 자연요리가 치유식 그 자체라는 것 또한 알게 됐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연요리와 함께하면서 어느덧 직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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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행한 전통문화관의 요리팁은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수원전통문화관 전통식생활체험관에서 10월부터 진행한 요리 체험 프로그램이에요. 총 3기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주제로 진행되는데요. 처음에는11, 12월에만 진행하기로 해서 이유식으로만 구성했는데, 수원문화재단에서 전통 음식과 더불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해주셨어요. 앞으로 진행될 2기는 고추장 담그기, 3기는 집에서도 외식처럼 먹을 수 있는 브런치 프로그램으로 꾸려질 예정이에요.





오늘은 ‘1기: 이유식을 부탁해’의 세 번째 시간이었어요. 어떤 요리팁을 전수하셨나요?

3회차는 유아기 후기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잇몸으로 씹어 먹을 수 있는 이유식을 함께 만들어봤어요. 메뉴는 채소 쇠고기 밥죽과 두부 청경채 우엉덮밥이었는데, 오늘 수강하신 분들은 대부분 이유식을 먹는 아기의 아빠들이었어요.





아빠 수강생이라니! 의외네요.

수강생 중 9개월 된 아기 아빠는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요리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배운 레시피로 아내와 아기에게 음식을 대접한다고 해서 뿌듯하고 기뻤죠. 이유식을 테마로 하고 있다 보니 1기 수강생의 연령은 대개 2~30대인데요. 오늘은 50대인 수강생도 계셔서 사연이 궁금했는데, 90세가 넘은 아버지께 음식을 해드리기 위해 신청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기력이쇠하고 노화가 진행되는 아버지는 아기가 성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씹는 음식에서 미음으로, 미음에서 유동식으로 드셔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이유식 프로그램에 노쇠한 부모를 위해 찾아오는 수강생이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효심을 마주하곤 마음이 뭉클했어요.





요리가 삶의 필수 사항은 아니지만, 인생에 득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에게 요리란 무엇일까요?

요리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감동을 주는 메신저 같아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어도 구성원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존재들이잖아요. 그렇지만 요리와 식사를 통해 한자리에 모여 대화하게 되고 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설사 혼자 살고 있더라도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이 백 번의 위로보다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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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자연요리를 기본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는데요. 앞으로 더 진행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요?

2~40대의 젊은 아빠들부터 나이 많은 아버님들까지 함께 모여 진행하는 아버지 요리 교실을 열어보고 싶어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남성들이 요리에서는 사소한 것에도 미숙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경험이 없을뿐더러 누군가 알려주지도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 아버지 교실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주 간단한 레시피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했거든요. 쌀 씻기부터 밥 짓기, 무채나물 만들기, 미역국 끓이기 같은 것들이죠. 그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요. 밥은 해 먹지 않으면 사 먹어야 하는데, 사실 외식은 건강과 거리가 멀잖아요. 식단이야말로 건강과 직결되는 요소인 만큼 스스로 내 밥상을 차릴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으면 좋겠어요.





타 지역에서도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는데, 수원 수강생에게만 보이는 특성도 있었나요? 

수원에서 만난 수강생들은 모두 ‘멋쟁이’예요. 외모도 물론 멋지지만 무엇보다 매너가 무척 좋아요. 수업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고, 수업이 끝나면 깔끔하게 정리 정돈까지 하시죠. 기본적인 에티켓이 몸에 배어 있더라고요. 또한, 제 말은 물론이고 다른 수강생들 말까지 공감하고 반응하는 것도 수원분들의 특징이에요.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배워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팁을 하나라도 더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요.



 



문득 자연요리연구가가 생각하는 ‘최고의 요리’가 궁금해지는데요!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요. 먹고 싶을 때 언제든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야말로 최고가 아닐까요?

저도 저만의 최고의 요리를 마련해두어야겠네요(웃음). 2019년도 저물어 가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올해는 독거노인에게 친환경 재료로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해왔어요. 내년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또 학교 밖 청소년들과의 활동도 해보고 싶은데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편견을 가진 분들이 참 많은데 사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보통의 아이들이거든요. 틀린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을 뿐이죠.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사비를 써서라도 수업을 진행해보고 싶어요. 일회적인 활동이 아닌, 계속해서 이어가는 프로그램이기를 희망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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