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호 그런 마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어, 영화 <원더풀 라이프>


1



2



ⓒ<원더풀 라이프>



 



오늘 당신이 죽는다면, 딱 오늘까지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면.



글 김지수



 



3



ⓒ<원더풀 라이프>



 



질문과 답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영화는 시작부터 질문을 던진다.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중간역, ‘림보’. 죽은 이들은 이곳을 거쳐 가며 행복한 순간 하나를 꼽고, 림보의 직원들은 그 기억을 영화로 만든다. 그렇게 죽은 이들은 가장 행복한 기억을 안고 천국으로 향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선택하려 했다. 언제가 좋을까. 무엇이 좋을까. 물론 가장 처음 생각난 기억이 있었지만,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서 더 크고 멋진 순간을 꼽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엔 가장 처음 떠올린(‘떠오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으로 정해버렸고 계속 기억이 쌓여가는 지금도 그 선택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영화가 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보니, 도리어 질문이 생겼다. 왜 영화일까? 등장인물 중 와타나베 할아버지는 소중한 기억을 선택하지 못해 자신의 인생이 담긴 테이프를 받아 보게 된다. 테이프 속엔 왜곡되지 않은 날것의 ‘사실 기억’이 있다. 그의 인생은 한 편의 긴 다큐멘터리 영상처럼 잘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림보의 사람들은 잘 보존되어 있는 기억의 일부분을 다시 재구성해야 하는 영화로 만들어야 했을까.



 



4



ⓒ<원더풀 라이프>



 



재현과 생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실제로 편집 단계에서 예정에 없던 일반인 배우의 메이킹 영상을 영화에 기록하기로 했다. 극 중 인물의 행복한 기억을 촬영하는 장면도 실제 배우의 추억으로 담아냈다. 배우들은 촬영 중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으로 자신만의 시선을 반영해 촬영 현장을 바꿔갈 때를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대로 현장을 바꿔야 하는 수고가 들었지만, 히로카즈는 그 순간에도 두근거렸다고 한다. 그는 현실과 극을 넘나드는 촬영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영화로 만드는 행위가 ‘재현’이 아니라 ‘생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원더풀 라이프>는 자신의 기억을 표현하려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담으려는 림보의 직원들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그들이 함께 영화를 만드는 순간 속엔 하나 이상의 관계가 엉켜 있고, 그건 우리가 사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5



ⓒ<원더풀 라이프>



 



원더풀, 원더풀 라이프



내 소중한 기억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할수록 궁금하고 언젠가 그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영화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아마도 림보의 직원이 되어 평생 일을 해야겠지만(소중한 기억을 선택하지 못하면 림보의 직원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아직은 싫다. 그때의 기억과 조금이라도 다른 장면을 본다면 무척 아쉬울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 히로카즈는 재현이 아니라 생성이라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때를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무언가를 다시 만드는 일은 조금 미뤄두고 싶다. 어쩌면 림보의 사람들도 이처럼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남아 있



는 걸지도 모르겠다. 도무지 자신의 인생에 함부로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어서, 그 소중한 기억을 너무나 아끼는 마음 때문에.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언젠가 선택해야 할 날엔 최대한 많은 기억을 후보로 두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하루하루를 더 유심히 살펴봐야겠지. 그러다 보면 행복을 멀리서 바라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댓글달기_글자수 500자로 제한되며 욕설, 비방글 삭제됩니다.

댓글입력
  • 댓글 내용이 없습니다 ..



수원문화재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