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호 사는 게 즐거워, 취향껏 선물한 물건들


1



 



“너무 춥다. 목도리나 하나 있으면 좋겠네.” Y가 흘린 한마디를 꼭 쥐고 목도리를 찾아 나섰다. ‘선물’이라는 말이 설렘을 부추기고, 설렌 나는 추위를 뚫고 외출하는 번거로움을 기어코 이겨내고 마는 것이다. 만남과 고민이 잦은 계절. 연말에 만날 그들의 물건을 고른다. ‘아, 이건 내가 갖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면 성공이다. 내 취향이 한껏 묻은 선물을 건넬 땐 마치 아끼는 물건을 건네는 기분이 드니까.



 



글 하나 그림 소근



 



2



 



빼빼로데이에 태어난 Y에게

247 라이트-웨이트 하프 머플러 | 247 서울 | 38,000원



11월 11일. Y는 그날 태어났다. 같은 반 친구들이 생일에 빼빼로만 준다는 하소연을 듣고 가방 속 빼빼로를 꺼내지 못한 게 스무 해 전의 일이다. 함께하는 스무 번째 생일. 이제는 그동안 준 선물을 다 기억하는 일도 어렵다. 잘 포장된 빼빼로 세트를 집어 들고 싶은 충동을 참고 그동안의 대화를 더듬어 힌트를 얻었다. 올겨울 Y에게 필요한 건 목도리. 늘 가방이 무거운 그에게는 짐이 되지 않을 물건이 좋다. 즐겨 보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짧고 가벼운 목도리를 고르고, 그의 회사 주소를 적었다. “꼭 너 같은 색깔을 골랐다 싶어서 혼자 웃었잖아.” 생일날 감색 목도리를 두르고 나타난 Y가 낄낄 웃으며 목도리를 가리켰다.



 



3



 



직장인이 된 J에게

서클 테이블 미러 | 아우어스숍 | 25,000원



직장 생활 1년 차, J는 아침이 버겁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후 제시간에 일어나기가 영 어렵다는 그는 화장품 보따리(파우치가 아니고 보따리가 맞다)를 들고 출근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화장을 시작하하는데, 그때마다 조그마한 손거울을 들고 애쓰는 자신이 한심해지는 게 요즘 그의 고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늦잠을 자고 민낯으로 출근한 날, 나도 화장실에서 마스카라를 바르는 나를 바보같이 느낀 적이 있다. “맞아, 나도 그 기분 알아” 하고 맞장구를 치는 게 전부였던 그날 저녁. 그의 필사적인 마음을 응원할 겸 조금 늦은 취업 선물로 거울을 찾았다. 단아한 원목 오브제를 만드는 아우어스숍의 거울은 차분한 색감의 나무로 만들어졌다. 필요할 때 꺼내 쓰기에도 좋은 크기인데다가, 초승달 모양의 받침이 독특해서 책상 위에 장식처럼 세워두기도 좋다. 거울이 예쁘면 잠깐 들여다보는 사이에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J의 아침과 점심시간이 조금은 여유로워지길 바라며 거울을 주문했다.



 



4



 



이웃이 된 T에게

전자동 커피 메이커 | 비탄토니오 | 79,000원



동네로 이사 온 T의 이삿짐 정리를 도와준 날의 일이다. 짜장면을 시켜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오는 길에 문득, 커피 드리퍼를 보며 “집에서 내려 마시면 더 편하려나” 했던 그가 떠올랐다. 핸드드립보다 쉽고 편하게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커피 메이커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릴 때 집에서 쓰던 커피 메이커를 떠올리며 검색했는데 요즘은 더 많은 기능을 가진 게 많다. 그중 가장 편해 보인 건 통원두를 분쇄하는 그라인딩 기능이다. 분쇄 크기까지 정할 수 있으니 원두만 준비해두면 언제든 손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을 테다. 아이보리색 커피 메이커와 그의 입맛에 맞는 고소한 원두를 골라 이번엔 집들이를 갔다. 원두는 소음 없이 갈리고, 금세 뜨끈한 커피 두 잔이 뚝딱. 온기와 함께 커피 향기가 그윽하게 퍼졌다.



 



5



 



살이 오른 B에게

원목 캣폴 캣타워 | 캣츠드림 | 89,000원



때가 왔다. 고양이가 살찌는 계절. 가을이 지나면서 부쩍 먹는 양이 늘어난 B가 통 움직이질 않는다. 통통한 뱃살이 귀엽긴 하지만 이대로 겨울 내내 늘어지게 둘 순 없었다. 캣폴은 바닥과 천장에 기둥을 고정해 설치하는 고양이 놀이터로, 대형 캣타워에 비해 자리를 덜 차지하고 좀더 안전할 것 같아서 골랐다. 브랜드마다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그런 와중에 유심히 본 건 기둥의 소재와 발판이다. 먼저 기둥은 원목으로 골랐다. 요즘은 가벼운 알루미늄 기둥도 나오는데 혹시나 더 흔들리진 않을까 걱정이 돼 묵직한 쪽을 선택했다. 발판은 물방울 모양의 큰 발판 대신 땅콩 모양으로 골랐다. B의 몸집에는 소형 발판으로 충분해서 골랐는데, 설치해보니 이 땅콩 모양이 꽤나 귀엽다. 장난감도 귀찮아하던 고양이는 매일같이 거대한 나무를 오르고, 스크래처 카펫을 뜯으며 기지개를 켠다.



 



6



 



손끝이 트는 K에게

누드에이치앤드크림 000 | 탬버린즈 | 65ml 32,000원



K는 손을 자주 씻는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자전거를 탄 날에는 특히. 날이 건조해지면서 손끝이 텁텁해진 그에게 핸드크림을 건넸다. 이맘때쯤 가장 흔한 선물이지만, 은은한 숲 내음을 꼭 한번 선물하고 싶었다. 이 핸드크림은 탬버린즈가 가장 첫 번째로 선보인 제품이다. 시그니처 향 ‘000’은 차분하고도 우아한 향이다. 이후에 출시된 향수를 시향해봤는데 크림으로 바를 때 좀더 부드럽고 촉촉하게 느껴진다. 크림도 피부에 금세 스미는 제형이라 손이 산뜻한 걸 좋아하는 K에게 딱이다. 매번 신선하고 감각적인 비주얼 캠페인을 펼쳐 쇼룸에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브랜드. 이 은은한 향이 그의 마음에도 든다면 ‘누드에이치’ 캠페인이 얼마나 근사했는지도 설명해주어야지.



 



7



 



새해의 나에게

아젠다 다이어리 만년형 | 라이브워크 | 21,000원



새로운 기분으로 펼치는 첫 장은 기분 좋지만, 어쩐지 다이어리는 지난해가 조금 남아 있는 편이 좋다. 그러니 날짜를 밀려 쓰는 시행착오를 몇 번이나 겪고도 만년형 다이어리를 산다. 지난가을부터 쓴 수첩의 책장이 바랜걸 봤을 땐 뿌듯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첫 출근을 앞두고 부랴부랴 산 수첩이다. 전직에 가까운 이직을 하면서 나는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을 잘 적어두려 애썼다. 그날그날의 일과 메모 사이에 흐릿한 ‘아, 모르겠다’라던가 ‘잘할 수 있겠지?’에서 그때의 마음이 보인다. 몇 장 안 남은 수첩을 덮고 같이 해를 넘길 다이어리를 사러 갔다. 다행히 대형 서점이 새해를 준비하는 때와 나의 다이어리 주기가 꽤 잘 맞는다. 새 다이어리에 날짜를 적으며 남은 겨울을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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