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 예술, 지금은 질문을 던져야 할 때 - 김종길ㆍ배인석 대담


 



모두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갇혀버렸어도 봄은 꽃핍니다.



사람의 마음도 꽃피고, 이야기도 꽃피고. 어쩔 수 없이 예술도 꽃필 겁니다.



함께 만나 꽃피는 일, 그게 바로 예술 아닐까요?



 



글 조동흠_더페이퍼 편집부장 그림 박들



 



 



 



만나고 싶은 1  만나고 싶은 2





좌: 김종길(김).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                                                                              

우: 배인석(배). 화가, 전 한국민예총 사무총장

 

 

 

예술을 일으켜서 역병에 항거한다





Q   그냥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거로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배   우린 아주 자유롭죠. (웃음)



김   지금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 사실 예술의 문제가, 예술가의 문제가 너무 심각해져 있는 상태고. 아까 오면서 잠깐 봤는데, 대만에 있는 친구가 <제주의 소리>에 글을 올린 거예요. 제목을 예기항역(藝起抗疫)이라는 한자를 썼는데, ‘예술을 일으켜서 역병에 항거한다.’ 이런 뜻이에요.



함께   오!



김  ‌ 전업 예술가들은 뭐 굶어죽기 딱 십상인 상황이고. 이런 시대와 상황일수록 사실은 예술이 이 사회를 치유하거나 더 보듬거나 따뜻하게 해야 하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라는 게 있는 건데 그 부분을 우리가 좀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 사회적 공동체에서 가장 큰 적폐가 뭐냐 하면 거리두기인데 아파트도 거리 두고 살고 있고 집들도 거리 두고 살고 있는데 (웃음) 이게 사회적 의제가 돼버린 시대에 우리가 와 있으니까 앞으로 이런 사회가 지속된다고 했을 때는 예술이 어떻게 가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예술의 사회 참여라고 하면 독재라든지 또는 권력이라든지 또 억압이라든지 이런 언어들만 떠올랐다는 거죠. 의제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술이 사회에 접근하는 방식을 다르게 볼 필요도 있겠다.

 

 

코로나 때문에 일찍 찾아온 미래

 

‌ 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미술뿐 아니라 여러 예술 분야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행정이나 지원에 대해서 배려나 이런 게 없었다, 그 주체나 발주하는 곳이. 



배   코로나 때문에 기관에서 그동안 굉장히 숙원했던 것이 빨리 와버린 거예요. 인건비라든지 보고서가 없는 건 우리가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할 수가 없는데 지금은 그걸 빨리 넘어서 버린 거예요. 그래서 누가 일찍 온 미래라고. (웃음) 그 다음에 기본소득 같은 경우 다 주는 게 행정 낭비를 일단 없앤다. 그리고 두 번째, 주로 받고 안 받고의 차이에 의해서 사회적인 감정들을 자극하지 않는 거, 세 번째는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는 과정에서 행정의 비리가 있다, 이 말은 안 해. (웃음) 행정은 상당 부분 코로나 때문에 진일보해버린 거죠.



김  ‌ 나는 개인적으로는 예술인 기본소득이 아니라 사실은 전 국민 기본 소득 형태로 가야 한다고 봐요. 그러니까 예술가가 누구냐라는 문제가 발생해요. 이번에 논의가 너무 좋았던 것이 다 주자. 예술가라고 해도 또 선별이 발생하니까.



‌ 예술가를 정의하거나 증명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일 수 있죠. 오히려 예술의 쓸모를 사회적으로 고민하는 게 더 쓸모 있을 것 같아요. 아까도 나온 이야기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어차피 다 아파트에서 격리되어 살았잖아요?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예술의 오랜 기능들도 그런 점에서 재발견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   코로나 19 전에 작가들이 전시하면 관람객들이 많이 왔나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전시를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유명한 인사동 가나아트, 인사아트센터 같은 곳도 전시장 안에 한 명, 두 명 있는 게 다반사여서 그냥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어요, 이미. (웃음) 메워지지 않는 갭이에요. 다만 미술관 같은 데가 좀 문제가 되는 거죠.

 

 

예술가 지원, 미술은행에서 개방형 수장고 전시까지





김  ‌ 난리가 난 거죠, 사실은. 공립뮤지엄들은 공공성이라고 하는 화두를 늘 안고 가기 때문에 스톱되자마자 이걸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대안을 짜기 시작해요. 스톱 됐을 때 쓸 수 없는 예산들이 생겨요. 내가 10억 제안했는데, 5억 배정됐어요. 미술정책, 미술은행정책은 내년부터 짜더라도 선제적으로 100에서 300만 원 정도를 복지재단에서 경기도에 있는 긴급생계지원 대상 작가나 생계형 작가에 한해서 그냥 소품 한 점이든 뭐든 사 버리는 거예요. 이게 몇 백 점이 쌓이면 미술은행제도로 정책화하면서 내년에도 또 사자, 이렇게 얘기했는데 이게 먹힌 거죠.



배  ‌‌‌ 그거는 괜찮은 것 같아요. 일단 칭찬. (웃음) 그러면 5억을 쓰는 방법을 찾았네요.



김  ‌ 저작권에서 모든 사인과 진품 확인서까지 사실은 다 받아야만 나중에 이걸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정소요는 어마어마해요, 사실은.



배   그런데 이게 코로나 되기 전에 ‘5억 이렇게 합시다!’ 했으면? 



김   ‌안 먹히죠.‌ 작품이 어느 정도 쌓이면 은행이든 병원이든 이런 데 대여하고, 창고에다 넣어놓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 이걸 개방형 수장고 형태로, 한 점 한 점이 아니라 옛날 살롱전처럼 좌악 걸어서 도민이 와서 그냥 재밌게 보게 하자. 이제 창작센터 건물 하나를 개방형 수장고 형태로 해서 그 건물이 미술은행이 되는 거예요. 창작센터 대부도에 있는 거.



배   ‌뉴욕이 코로나 때문에 긴급 명령 내렸는데 40%가 다음 월세를 못 내는 정도거든요. 전 도시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식으로 굴렸다는 거잖아요. 경제적으로 굉장히 취약한 구조 위에 얹혀서 굉장히 화려하게 산 느낌인데. 예술은 자체가 취약한 게 사실이지만, 나는 뭐 별로, 그때나 이때나 똑같은 것 같아요. (웃음) 비엔날레 비용도 풀자, 이러는 게 나는 합당하다고 생각해요. 올해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는 경기도미술관을 보고서 ‘오! 경기도미술관이 우리 동네에 있었다니!’ 이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김  ‌ 그런데 사실 그 500명에 못 들어가는, 내 작품은 떨어졌다는 그런 사람들한테도 박탈감이 있을 수도 있어요.



배  ‌‌ 그러니까 돈을 좀 늘려야지. (웃음) 예전에는 무상급식 할 때만 해도 난리가 났잖아요? ‘이런 걸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에서 ‘받아도 되는 거였는데 왜 지금에서야?’ (웃음) ‘구청이 필요했나?’에서 이번에 ‘꼭 필요한 것 같아.’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공무원을 괴롭히자는 건 아니고 (웃음)

 

 

예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어?





김  ‌ 우리나라의 예술에 대한 태도는 예술의 깊이나 어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이나 이런 것보다는 소비하는 방식이었다는 거죠. 예술의 사회적 참여라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바이러스 때문에 주저앉은 절망감 또는 그 슬픔이나, 이 사회가 거리두기 하면서 생긴 여러 가지 이면들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사실은 예술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예술에 대한 다른 질문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커뮤니티 아트도 그 주체가 기관이었지, 예술가가 자발적으로 그 사회나 동네를 열심히 탐색하고 거기에 적절한 예술적 퀄리티를 확보하면서 주민과 함께했다? 아니에요. 프로젝트였죠.



Q   프로젝트죠.



김  ‌ 네. 돈 받는 프로젝트였죠.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예술이 가지고 있는 아주 근본적인 측면에서의 질문, 예술이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같은 게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코로나가 불러온 사회적 변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거예요. 더 강력한 바이러스들은 계속 인간에게 올 것이고, 인류가 맞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는 어쩔 수 없이 도래할 거예요. ‘예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어?’ 이런 거는 20세기 서구에서 폐기처분된 지 오래됐어요. 그래서 개념예술이나, 예술가의 아이디어나 이런 것이 진보였고, 새로움에 대한 아방가르드였단 말이죠. 그런데 동아시아 사람들은 예술 자체가 어떤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부적을 놓고 비는 거야. 영화가 됐든, 사진이 됐든, 회화가 됐든, 뭐가 됐든 예술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필요한 거죠. 그러니까 원래 예술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질문 같은 거죠.그 질문을 다시 한 번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거예요.

 

 

예술소비, 해석이 아니라 마음을 던지는 일





Q   ‌믿음의 문제와 과학의 문제는 사실 양립할 수 없는 거지만,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게 신화거든요. 단군신화를 갖고 우리 조상이 곰이라는 비과학적 사실을 따지지 않는 건 그것이 믿음의 영역에 걸친 신화이기 때문이죠. 예술의 가장 정점은 믿음의 영역까지 넘어가는 이 지점에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의심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김  ‌ 제가 이 두 작품을 계속 봤거든요? 마음에 계속 와 닿았어요. 예술이 인간의 마음에 최소한 이렇게 들어와야 하는데, 그동안 항상 이것을 해석해야 하고, 구경하고, 관람해야 하는 것으로 삼아왔다는 거죠. 이런 시대일수록 사람은 고립될 거고, 아까 우리가 오면서 소소하게 잡담하듯이 왔잖아요. 이렇게 소소한 집단이 많아지고, 소소한 이야기가 풍요로워져야 하는 건데, 끊임없이 집단적인 축제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 시민의 일상과 그들이 얼마나 가난한가 이런 건 쳐다보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이걸 바꿔보자는 거죠. 행정적 요소를 떠나서 예술 영역으로 와 보면, 우리가 이제 소소하게 좋아했던 작품에 대해 마음을 던질 수 있는 상태로 오고갈 수 있다, 어쩌면 그것들을 우리가 열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이제 좀 필요하겠다 싶어요.



‌ 예술을 이해한다는 게 분석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근데 교육을 그렇게.



‌  그건 이론과 미학자의 문제죠. 그런데 그걸 모든 사람에게 강요했다는 거예요. 해석해야 하고, 뭔가 그래야만 할 것 같고. 사실 해석 없이도 내가 마음에 와 닿으면 볼 수 있는 건데, 그걸 ‘아니야. 이런 거야.’라고 끊임없이 훈육하고 교육시키려고 들었죠. 예술의 문제를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많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삶 자체가 철학한 사람이고, 예술하는 삶이 되는 거예요. 그런 삶을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거잖아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질문들을 계속 던져야 해요. 예술이 예술 작품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이 사고하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이게 사실 정상적인 인류의 삶인데 너무 바쁘게 뭔가에 몰아쳐 가는 삶을 살다 보니까, 20세기 내내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살아왔다는 거죠. 지금 코로나가 역설적인 상황을 도래시키고 있다고 봐요. 요즘 다 망하기 직전이니까 국가가 우리를 지원해 먹여 살려야지. 사람들이 그래서 선거장에 나간다, 이건 굉장히 역설이에요. 어쩌면 고민하고, 생각하고, 이 사회에 대해 사유하는 삶으로 다시 넘어오고 있어서 역설적으로 이게 예술하는 삶이다,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철학하는 삶, 예술하는 개인의 삶으로 나아가야





Q   공모 같은 걸 많이 했잖아요. 예술이 대부분 공적 프로젝트잖아요. 너무 피곤한 거예요.



김   ‌문화재단이 처음 생기던 시기를 보면 역설적으로 초기에 좋은 아이디어와 정책들이 많았어요. 문화재단은 거버넌스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렇게 전문위원으로 입사했었고.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완전히 경직된 조직으로 가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현장과 공공기관이 거버넌스로 협력주체라고 하는 기본적인 인식이 사라져 버렸어요.



Q   그러면 문화재단은 뭘 해야 하나요?



배  ‌ 내가 밖에서 보면 결국 정부의 예산 흐름으로 봐서 문화재단은 어쨌든 정책 손 안에 있는 거예요. 결국 문화재단의 연륜이 아직 짧아요. 끊임없는 투쟁도 필요하고. 거버넌스라는 게 그냥 주어지지 않아요. 어쨌든 정책은 벗어날 수 없어요, 공금이라서. 그 정책을 누가 주도하느냐의 싸움이 되는데 저는 문화재단이 좀 더 많이 생겨야 한다고 봐요. 자기네들끼리 경쟁도 하고. 이제 가야할 길의 반 정도 온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문화재단이 필요없다고 하는 건 화가 나서 그러는 거죠. 맨날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어, 이런. (웃음)



김   거버넌스로 가야죠. 문화재단이 예산을 가지고 현장과 어떻게 협업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거죠. 나는 누구인가와 내가 어떤 걸 할 것인가에 대한 내 목소리, 자기 목소리 찾기가 훨씬 더 중요한 시대에 와 있는 거죠. 코로나 이후 바뀌어 가는 삶을 고민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참여가 아니라 사실은 예술의 한 개인에 대한 관심, 나의 자각, 예술에 대한 개개인의 자각 같은 거, 어쩌면 그런 문제로 우리는 좀 돌아서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늘 멸사봉공 해왔어요. 나는 죽이고 늘 공을 앞세웠던 거죠.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자각,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고, 그것이 예술을 하는 개인의 삶, 사유하는, 철학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좀 던졌으면 좋겠다는 거죠. 공공(公共)이 원래 동사였어요. ‘공공하다’는 나라와 백성이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공공하는 삶이 중요한 거죠. 백성이 주체도 아니고 임금이 주체도 아니고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사는 주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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