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 집순이의 산책길, 모여봐요 일월공원


걷고 싶은 4



 



나는 집순이다. 특기는 주말마다 뒹굴기, 낮잠 자기. 황금 같은 주말연휴를 내리 낮잠으로 날려버린 경험이 있을 정도로, 집을 좋아하고 이불 속을 사랑한다. 주말마다 기절한 사람처럼 온종일 자는 탓에 혹시나 아픈 것은 아닐까 쏟아지는 가족의 걱정은 덤. 이젠 익숙해져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다른 가족들에 비해, 하나뿐인 막내딸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아버지의 걱정은 여전히 이만저만이 아니다.



 



글 박지은_더페이퍼 에디터   사진 김주원



 



 



 



걷고 싶은 5



 



집 바깥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괴로워하며 한숨을 내쉬면 어머니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단단히 팔짱을 낀다. 장소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기스팟인 일월공원.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며 느긋하게 보낼 예정이었는데, 주말이니 운동을 나가자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혀 도살장에 끌려 나온 돼지마냥 공원으로 끌려갔다.



 



잔디가 깔린 공원 바로 옆엔 자연과 책, 사람이 함께하는 공원 안의 휴식처가 존재한다. 아버지가 자주 바둑책을 빌려오는 일월도서관이다. 나도 무더운 여름이 오면 책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을 빌리러 간다. 아니, 시원한 바람은 열람만 가능, 대출 불가. 도서관 옆을 따라 나아가면 공원 주차장과 작은 생태공원이 조성되어있다. 생태공원 내에는 동네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장도 만들어져 있어, 여름만 되면 물장구를 치며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원 안 잔디밭에는 그늘진 곳마다 주민들이 나와서 느긋하게 쉰다.



 





“우리도 돗자리 들고 나와서 저렇게 할까요?”



 





죽을상을 하고서 영혼 없이 물으면, 어머니가 코웃음 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한다 하신다.



 





“돌아오는 길에 그냥 가족과 함께 먹을 과일이나 사들고 들어가자.”



 





우리 어머니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 탈이다.



 



 



걷고 싶은 7



 



흰 벽돌로 정돈된 길을 따라 공원에 들어서면, 넓은 일월저수지를 끼고서 빙 둘러져 있는 둘레길과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걷기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다며 어머니가 웃는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은 낯선 느낌이 든다. 이곳이 어머니의 주말운동코스이자 동네사람들 모두가 애용하는 산책로다. 둘이서 오른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길을 따라서 줄지어 서서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나무들. 발을 디딜 때마다 밟히는 모래와 자갈. 무성히 자라 저수지를 장식하는 듯한 온갖 풀들. 어머니의 걸음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빠른 걸음이 되어 있다. 조깅을 이어갈 힘이 없어 헐떡이고 있으면, 어머니가 걸음을 멈춰서며 말한다.



 





“늘 집에서 나가기 싫어하니까 겨우 이것가지고 숨이 찬 거야.”



 





체력이 없는 것도, 실내를 더 좋아하는 집순이인 것도 부정할 수 없어 말없이 꽁해있자니 어머니가 얼려둔 물을 꺼내 건넨다. 말없이 병을 받아들자 어머니가 웃는다.



 





“너무 웃지 마세요, 정 들어요.”



 





그렇게 투덜거리니 또 웃는다.



 



 



걷고 싶은 6





천천히 저수지를 따라가 보면 나무로 된 다리가 공원 군데군데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다리 한가운데 멈춰서 물가를 내려다보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잔뜩 받아먹기라도 한 것인지 펄떡대며 입을 벌리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팔뚝만한 커다란 물고기들이 잔뜩 몰려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섭다. 징그럽다 몸서리를 치며 빠르게 다리를 건너면, 날 두고 어느새 저만치 앞서 계시는 어머니. 어, 어머니?



 



허둥지둥 어머니를 따라가면 넓게 펼쳐진 잔디와 함께 둥근 지붕으로 덮인 야외음악당이 보인다. 이곳에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어 가끔씩 이곳에서 문화행사가 열리고는 하지만 아쉽게도 어머니와 함께 갔던 주말엔 특별한 공연이 없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머니는 여기서 여러 번 음악회나 단체댄스 같은 행사를 보셨다고.



 



길을 더 가다보면 저수지 위에 깔린 긴 나무 데크가 있다. 네모나게 이어진 다리의 형태로 되어 있어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데는 제격이다.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나 아이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은 한 번씩 이 데크에 발을 딛는다. 물가에는 이름 모르는 새가 내려앉아 퍼드덕거린다. 서서히 길의 끝이 보인다. 산책이 끝나가다니 어쩐지 조금 아쉬웠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 드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공원 모퉁이에는 사람들이 직접 가꾸는 시민체험 텃밭이 있다. 토마토, 고추, 대파, 상추 등 다양한 종류의 농작물들이 심어져 있다.



 



 



걷고 싶은 8



 



어머니 친구도 이 텃밭을 신청한 적이 있다고 한다. 수확한 깻잎과 상추는 삼겹살과 함께 맛나게 드셨다는 모양. 싱싱한 쌈 채소에 고기 한 점.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고기에 싱싱한 채소는 언제나 옳다. 우리는 신청하지 않냐 묻자, 어머니는 주인 몰래 따가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 있어 그 고생이 싫다고 하신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훔쳐가는 사람은 전부 다 벼락이나 맞았으면 좋겠다.



 



일월저수지 둘레길은 그리 길지 않다. 운동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30분 정도면 가뿐하게 돌아볼 수 있을 정도. 내 걸음에 맞추다보니 어머니와 1시간이나 공원을 돌았다. 공원을 나올 무렵에는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저무는 노을과 함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잔디 위에서 누워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랑 횡단보도 앞에 서서, 저수지 너머에서 본 새 이름이 뭘까 하는 시답잖은 이야길 나눴다. 둘 다 모르니 결론이 날 리가 없다.



 



뾰루퉁한 얼굴로 나란히 걷었던 산책길. 별다른 것 없었던 주말 한때였지만, 집과 이불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에게는 유럽여행 못지않은 신선함을 주었다면 당연히 과장이겠지.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걷는 일은 어쩌면 오랫동안 기억에 소중하게 남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늘 사소하고 가까운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걷고 싶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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