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 코로나와 예술



나이를 먹으면 새로운 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게 이미 겪은 일이고 새롭다 해도 이전에 경험한 것에서 조금 변형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맞닥뜨리고 있는 세상은 난생 처음이다.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에 병에 들고 사망자가 속출하며, 정부에게서 하루에도 몇 번씩 행동지침이 문자메시지로 전달되면서 일상생활이 거의 마비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히 전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운 좋게도 전쟁을 겪지 않고 한 세상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 난리가 제3차 세계대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이 아주 새로운 것일까?



 



글 임수택_수원연극축제 예술감독



 



 



 





춘천마임축제는 축제를 취소하고 그 대신 ‘백신’으로 읽히는 “100 Scene”이라는 이름 하에 축제에서 예정되었던 작품을 100일간 나눠서 공연하였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는 엄격하게 지켜야 했다.



 



 



 



비대면 문화





이 상황이 비록 전쟁만큼 참혹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타인의 접촉을 막는 일은 전쟁 때도 없던 일이다. 이제는 친구 만나는 것을 삼가야 하고 옆 사람을 주의하며 심지어는 의심까지 해야 한다. 타인과 가급적 접촉을 피하고 가능한 한 나 홀로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길을 거쳐오고 있지 않았던가? 산업화가 되면서 우리는 고향을 떠나야 했고, 때로는 가족과도 떨어져 생활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도 늘어나 직장동료는 예전 같은 끈끈한 사이가 아니다. 그리하여 작금에는 ‘혼밥’, ‘혼술’이 점차 주류문화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산업 형태가 변화하면서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굳이 타인과 어울릴 필요가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해야 했던 시절에서 이제는 나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심지어는 타인이 없어도 사랑을 나누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비대면 문화는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계속 상상해가면 우리가 자연스러운 일이 자연스럽지 않게 되고, 자연스럽지 않던 일이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에 도달하게 된다. 분명 나는 그런 시대를 겪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만 멀지 않은 후세들은 자연이 비자연이 되고, 비자연이 자연이 되는 극심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다만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세상을 미리 맛보게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앞당기고 있는지 모른다.



 



 



 



언택트 예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많은 분야가 타격을 입었고, 다수 대중을 상대로 해야 하는 공연예술계도 그중 하나다. 축제가 아예 취소되거나, 기약 없는 초청공연을 기대하며 축제 감독들을 위해 관객 없이 영상을 통해 비대면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공연장을 산개시키고 날짜를 늘려 관객이 밀집하지 않도록 운영하고 있다. 실내공연들은 좌석 수를 크게 줄이거나 아예 폐쇄해야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이미 지난 봄 코로나가 퍼지자 아예 2021년 상반기까지 프로그램을 전격 취소하였다. 전쟁 때도 공연예술은 프로파간다 형식으로라도 펼쳐졌다. 그러니 예술계에게 지금의 사태는 전쟁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전혀 예술 행위를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영상을 이용한 비대면 예술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비대면을 전제로 제작하는 영상예술이 아닌 바에야 관객 앞에서 직접 펼쳐 보이는 공연예술은 아무리 영상으로 잘 만들어도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나 영국 국립극단과 같은 유수의 공연예술단은 공연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전 세계에 송출한 바 있다. 물론 그 목적은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많은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카메라 수십 대를 동원하고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치고 영화 못지않게 편집을 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심지어 공연 전 소란스러운 객석의 모습과 오케스트라단이 악기를 테스트하는 소리도 내보내는가 하면 공연 중간의 휴식 시간까지 영상에 담아 송출함으로써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마치 공연장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유명한 공연을 값싸게 관람하기는 했지만, 스크린으로 대하는 것은 공연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것이어서 마치 짝퉁 명품을 걸치는 것 같았다. 이 시도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금방 사라졌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영상으로 공연예술을 대한 것에 전혀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공연들은 적어도 현장에 관객이 있는 상태에서 치러졌다.



공연은 공연자들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객이 공연자의 공연을 바라봐주고 거기에 반응하면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대 위 공연자는 객석의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웃음이나 한숨 등 관객의 반응이 다시금 무대 위 공연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관객이 숨죽이고 가만히 있는 상태도 공연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해서 관객은 공연자와 함께 공연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공연의 삼 요소에 무대와 공연자 외에 관객이 포함된다. 그런 공연예술을 관객 없이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또 엉성하게 준비를 한 채 영상으로 송출하면서 비대면으로 공연한다는 것도 눈 감고 아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이후 - 새로운 예술



 



비대면 예술 행위는 대부분 영상을 매개로 한다. 사실 영상이라는 미디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많은 공연예술이 영상을 이미 사용해왔고 특히 젊은 예술가들은 영화를 비롯한 영상예술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미디어 예술에 대한 공적 자금지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코로나 이후의 문화를 전망하는 ‘2020 문화소통포럼’이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등 주최로 26일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렸다. 이 포럼은 당연히 화상을 통한 비대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포럼에서 프랑스 디지털부 장관 세드리크오가 “오프라인 공연장에 갈 수 없는 관객을 위해 프랑스판 ‘연극 넷플릭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언하자,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기존에 없던 예술이 등장할 것”이라고 대꾸했다.(1) 세드리크 오가 기존의 공연예술형식을 유지한 채 영상매체에 공연을 충실하게 담아 영화처럼 공급하겠다고 큰 소리쳤다면 아탈리는 단순히 영상을 이용하여 공연형식을 변형시키는 것은 성공하기 어렵고, 그 대신 완전히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로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무대를 잃고 집에 칩거하면서 자기들의 예술혼이 이끄는 대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어떤 시도는 우스꽝스럽고, 어떤 시도는 슬프기 짝이 없다.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여 어처구니없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이 엉터리같은 시도 중에서 미래의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지를! 코로나 이후 우리는 다시 안전하게 대면 사회로 돌아갈 수도 있고,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백신이 발명되어도 이내 계속되는 바이러스의 침공으로 영원히 비대면 사회 속에 갇힐 수도 있다. 공연예술을 영상에 담아 제공하겠다는 것도 믿음이 가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예술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다만 이미 오래전에 변화의 바람을 타고 온 디지털과 가상현실을 이용한 비대면 예술이 보다 성행하리라는 정도는 조심스럽게 예상할 수 있다.



 



(1) “코로나 이후의 시대 … 모든 사람이 예술가 될 것”, <조선일보>, 2020. 8. 27.,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7/2020082700257.html



 



 



 



가상과 진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가상현실은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데 이 가상의 세계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가상을 현실로 곧잘 믿는 순진한 사람들에겐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게임이 가장 대표적이다. 사실 연극 역시 가짜다. 배우는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역할을 연기할 뿐이다. 미술은 물감으로 그린 것일 뿐이고, 조각은 돌덩어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배우의 연기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을 느끼곤 한다. 잘 만들어진 천 인형은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보인다. 로댕의 돌덩어리에는 우리의 참된 모습이 너무나도 잘 담겨있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모든 것이 가짜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인간에 대한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회화가 그려서 보여주는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악보나 악기로 구현해내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대면 사회건 비대면 사회건 상관없이 미래에는 디지털을 이용한 가상현실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해갈 것이다. 하지만 순진한 대중들의 눈을 현혹하는 데 만족하고, 목적지를 바라보지 않은 채 단순히 가상현실의 기술만을 발전시키면서 그것을 예술이라 부를 경우 우리는 예술에서 ‘감동’이라는 감정을 잃게 될 것이다. 가상에는 진실이 담겨있어야 한다. 미술 평론가 에브라임 키숀은 관객을 배제하는 현대미술을 비판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지 않은 예술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2) 관객을 배제한다는 것이나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재주만 부릴 뿐 진실을 담고 있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인류는 늘 이 진실을 담은 아름다운 그릇인 예술을 가지고 놀았다. 그 속에서 인간은 ‘아름다움’을 즐기는 동물로서 품위와 우아함을 확인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우리에게 다가올, 타인이 필요 없는 비대면 사회가 진실에 눈을 가리고, 품위와 우아함 그리고 자부심이라는 단어에까지 무감각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2)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반성완 옮김, 마음산책(1995)



 



 



 





창작집단 미아의 이동형 거리극으로 배우들이 모두 투명 마스크를 의상처럼 착용한 채 공연을 했다.



 



 



 



세상은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 60년 넘게 살다 보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하지만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고, 여전히 아이들은 철이 없으며, 노인들은 걱정이 많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피라미드 벽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세상 참 걱정된다’는 글이 쓰여 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00년이 넘게 인류는 생존해왔고, 심지어 많은 부분에서 크게 발전했으니 당시 노인네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에 닥칠 비대면 사회, 비대면 예술, 이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기를 바란다.



 



 



 



 



 



*임수택 감독의 주요 연출작으로는 연극쟁이,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순간, 별에서 들리는 소리 등이 있다.

현재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 총감독 및 수원연극축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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