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 정조(正祖)의 염치를 알리는 이 - <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교수


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는 정조(正祖)와 화성(華城) 전문가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원에 살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 소개를 빌려보면, 그는 정조의 위민 정신과 개혁 정신을 세상에 알리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명이라 생각하며 산다고 한다.

2020년 6월, <리더라면 정조처럼-정조대왕의 숨겨진 리더십 코드 5049>를 발간하여, 개혁 군주 정조의 특별한 리더십과 정치적 기술을 세상에 알린 그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직접 만나 정조의 매력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글 한아름_더페이퍼 에디터 사진 박정민



 



 



 





 



정조 같은 리더를 바라는 사회





2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매력 군주 정조, 그를 알고 싶다’라는 특강으로 4.27%의 시청률을 이끌어낸 김준혁 작가는 이 폭발적인 반응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정조의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조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요. 그게 맞는 거였어요. 그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 주제가 정조였거든요. 역사 교사 500명을 대상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리더를 뽑았는데, 그때 1위가 정조였대요. 2위가 이순신이고, 3위가 세종이었다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생각해보니, 저는 현대사회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불건전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정조는 지금보다 더욱 분열이 심한 시대를 조율하고 화합시켰어요. 그러면서도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함께 이루어 낸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우리 역사 속에 존재했고, 현대인들은 정조 같은 리더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는 거예요. 저 스스로는 정조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제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나 일반 대중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글을 썼어요.”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수원 화성’을 축성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김준혁 작가는 「리더라면 정조처럼」을 통해 정조의 지도력과 통솔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정조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질문에 김준혁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정치는 간단한 거예요.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게 정치에요. 옛날 도로는 일직선이 없고 지그재그로 되어 있었어요. 백성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당연했고, 상업의 발전에 비해 유통이 늦어져 어려움이 있었죠. 정조는 그런 상황에서 수원부터 시흥까지 일직선으로 도로를 뚫었어요. 이게 그 유명한 시흥대로에요. 당시 기득권 세력이 반대했지만 끝내 관철했죠. 왜? 백성들에게 이로운 정책이었기 때문에.”



 



 



허공으로 쏜 마지막 활에 담긴 두 가지 의미





정조는 신궁이었다. 그가 활을 쏠 때면 50발 중 49발을 쏘아 명중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발을 허공으로 쏘아 올리곤 했다. 김준혁 작가는 이 행동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한다.



 



“정조는 과녁의 크기도 줄였어요. 줄이고 줄이다가 결국에는 작은 부채를 세워 놓고 쏴요. 명중했지요. 50발을 다 명중시킬 수 있는데 한발을 허공으로 쏜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오만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사람이 처음에는 겸손하지만, 어느 자리에 올라가면 겸손함을 잃어버리죠. 겸손이 없어지면 사람도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져요. 오만함을 갖지 않고 지도자로서 철저하게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

람들을 생각하려는 정조의 의지를 상징하는 행동 중에 하나에요. 두 번째는 ‘제왕의 산가지’에요. 주역에서 점을 칠 때 보통 시초라고 하는 50개의 산가지를 사용하는데, 그중 49개만 가지고 점괘를 뽑아요. 마지막 한 개를 허공에 쏘아 올렸다는 것은 왕의 굳건함을 보여준 거예요.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이 강인함과 의지에요.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하고, 시시비비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하죠.”





김준혁 작가는 정조의 리더십 중에 ‘겸손’과 ‘굳건함’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한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해요. 비 오는 날 허리 아픈 할머니가 폐지 줍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찡해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힘없는 사람을 잘 보살펴줄 수 있어요. 더불어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아서 좋은 일만 계속 생기는 것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겸손하게 살면 좋은 일이 있다가, 나쁜일로 가는 것을 늦추거나 대비할 수 있어요.”



 



 





 



염치가 사라진 시대는 존중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정조를 접해왔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이산>이나 영화 <사도>는 정조의 삶과 사랑에 대한 서사를 다뤘다. 김준혁 작가 정조의 정치적 고난이나 지도자적 면모를 재조명했고, 특히 정조의 ‘염치’를 강조한다.





“예전에는 염치가 있었잖아요. 지금은 염치가 없어졌죠. 염치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자 예의에요. 정조는 신하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신하가 난처해할까 봐요. 정조의 이런 면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도 드러나요. 회갑연에 남녀가 모여서 합연(合宴)을 벌였다고 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 시대에는 남녀가 따로 잔치했거든요. 이 사건은 여자들을 존중한 것이고 나아가 인권의 문제, 인간과 관련된 근대화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봐요. 이건 당시 18세기에 전 유럽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이 일을 너무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세계 역사에서 여성을 이렇게 존중한 사건이 없었거든요. 더불어 정조는 정순왕후에게 일관되게 존중의 언어를 굉장히 많이 씁니다. 자기가 여러 음해나 좋지 않은 일을 잘 참아내고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게 다 대비마마 뜻이라고 해요. 하지만 정순왕후가 계속 적대적 관계를 두죠. 한 기록을 보면 정조는 정순왕후에게 국가의 공식적인 일은 알렸지만, 국왕이 진행한 행사는 알리지 않았다고 해요. 왜냐하면 정순왕후는 정조가 개최한 행사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으니까요. 정조도 굳이 안 오셔도 된다고 판단하고 알리지 않은 것이지요. 문재인 대통령이 이 책에서 ‘금난전권’ 부분이 좋았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금난전권은 완전히 경제개혁의 새로운 혁명과도 같은 거죠. 그 이전까지는 조선의 시전 상인들만 장사를 할 수 있었는데, 조선의 백성 모두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바꾼 거잖아요. 그때 신하들이나 기득권 세력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렸죠. 지금까지 안 하던 걸 왜 갑자기 하려고 하느냐고 주장했어요. 정조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고 선조 때 하려다가 못한 것이라면서, 백성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죠.”





김준혁 작가는 정조가 백성들에게 베풀었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지금도 의료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사전 의료 시스템을 갖추자고 하는데. 정조도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인부들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사전 예방을 했어요. 더운 여름에는 인부들에게 ‘칙서단’이라는 영양제를 지급하고, 가을에는 홍역을 예방하기 위해 ‘제중단’이라는 환약을 먹여서 체력을 보강했다고 해요. 실제로 전염병이 돌았을 때 정조가 자기 예산을 들여서 홍역 치료제를 잔뜩 만들어서 도성에 뿌렸대요. 이건 기본적인 존중의 이야기죠. 인부들에게 인건비를 준 것도 몹시 놀라운 일이죠. 관습적으로 보수를 주지 않고 백성을 동원하는 일이 당연시되던 때였으니까요. 조정 예산으로는 어렵지만, 왕실 예산은 따로 있잖아요. 정조는 왕실 재산을 절약해서 써서 남는 것을 국가로 돌려주려 했어요. 그래서 당시 화성 축성의 반이 왕실 재산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전부 다예요. 다른 기관에서 빌려오고 이걸 10년 동안 왕실에서 갚았죠. 그러니까 자기 돈을 들어내서 백성들 인건비를 해결하려는 것이 놀랍죠.”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런 수용이 사라진 사회에 대해 김준혁 작가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정조의 가장 위대한 측면이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했다는 거예요. 현대에 존재하는 다양성과는 조금 다른. 그러니까 정조 시대의 문화적 다양성은 지역의 지방 분권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지방 분권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실험한 도시가 수원이에요. 정조가 수원을 유수부로 승격시키면서 독자적인 행정 시스템을 갖추게 하지요.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수원만의 방어 시스템, 농업 시스템 등이 생겨요. 즉, 중앙의 군대가 수원을 지킨게 아니고, 수원 자체적으로 산업 기반을 마련하고 방어했죠. 정조는 각 지역의 관료가 그곳의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이게 정조의 계획이고 지방분권의 시작이었어요. 현재 한국 사회에는 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졌어요. 저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법을 자행하거나, 나의 자유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자유가 침해되면 안 되겠죠. 앞으로 시대가 발전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더불어 그는 문화적 다양성이 행복과 연결 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 저는 어려서 방에 다섯 식구가 같이 살았어요. 고모가 오시면 여섯 식구도 살고 그랬죠. 그러면서도 잘 살았어요. 목욕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요.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부탄, 핀란드 등이래요. 이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요. 그냥 사람들 간에 따듯하게 살아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거죠. 올해 2월에 마지막 해외여행으로 라오스를 다녀왔어요. 경찰이 거의 없어요.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이도 없죠. 라오스는 전 세계에서 행복하게 사는 나라 5위에 든다고 해요. 우리는 더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고 봐요.”





김준혁 작가는 ‘수원’과 ‘수원 화성’이 가진 우수성을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수원이 가진 문화적 정체성은 충분히 세계화될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시민 모두가 문화적으로 성숙해지고, 마을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수원이 가진 무궁무진한 유산을 누구나 누리고 향유할 수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현재 ‘정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이를 통해 세계적인 농업 벤처를 탄생시키고 싶다며 끝을 맺었다.



 



 



 





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봄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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