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 발자취를 따라 걷다 - ‘오빠생각’ 노랫말을 지은 최순애


서울 간 오빠, 출판인 최영주를 그리워하며 어린 소녀가 12살이라는 나이에 동시를 지어냈다.





아름다운 풍경 속 화성 안 동네에서 나고 자란 오누이의 문학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오빠생각’의 길을 따라 걸어보자.

그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당신도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노영란_작가 사진 박정민



 



 



 



 



 



태풍이 지나간 여름의 끝자락 오후,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124년 된 신풍초등학교 교정에는 풀이 무성하다. 행궁 복원으로 2016년 2월말 학교가 광교신도시로 이전되면서 이곳 교정은 문을 닫았다. 현재는 1996년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사료관만이 남아 있다. 방역하느라 잠시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가 사료관 교정을 걸었다. 오랜만의 인적 탓인지 풀벌레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경계하느라 분주하다.



 





 



잠긴 사료관 입구 앞에 빨간 우체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소식 한 자 적힌 우편물 또한 있을 리 만무하지만, 100여년의 시간을 연결해 주는 것 같아 한참을 보았다. 열쇠로 잠긴 사료관 입구 앞에 겹쳐지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황금시대’에서 어린 광철은 일본으로 돈 벌러 간 아빠를 찾아 몰래 배에 올라탔다. 아픈 엄마를 위해 아빠를 찾아 나선 길. 우여곡절 끝에 아빠가 일하는 공장에 도착했으나 아무도 없었다. 오래 전에 공장은 문을 닫았고, 아빠의 흔적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비가 쏟아지는 저녁, 폐허가 된 공장 처마 밑에서 어린 광철은 쪼그리고 앉아 노래를 불렀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떨어집니다.





떨어집니다.



 





이국땅에서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아빠를 찾지 못하는 막막함으로 떨고 있는 어린 광철을 달래주던 노래, ‘오빠생각’이었다.



 



 





12살에 동시 ‘오빠생각’을 지은 최순애





‘국민학교’ 세대에게는 익숙한 동요 ‘오빠생각’ 노랫말을 지은 것은 최순애(1914~1998)다. 수원 화성 안 동네에서 나고 자란 최순애는 1925년 12살에 동시 ‘오빠생각’을 썼다. 이 시는 그해 11월 소파 방정환이 펴낸 『어린이』 잡지에 실렸다. 이 시를 보고 감명을 받은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붙여 ‘오빠생각’ 노래가 만들어졌다. 노래는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일제강점기 엄혹한 시기에 사람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오빠생각’ 노래를 부르며 위로를 받았다. 어린 광철이가 그러했듯이.



 



동요 ‘오빠생각’의 주인공은 최순애 보다 8살 많은 오빠 최영주(1906~45), 문학을 사랑한 출판인이었다. 최영주는 수원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고향 수원으로 내려와 ‘화성소년회’를 조직해 소년운동에 전념했다. 또한 소파 방정환이 중심이 된 어린이 문학운동단체인 ‘색동회’ 동인으로 활동했다. 국내 최초의 월간 수필잡지인 <박문>의 편집 겸 발행인이기도 했던 그는 문인들 사이에서 편집의 귀재로 불렸다.



 





이원수 선생과 최순애 여사, 수원에서, 1978.



 





최순애는 서울에서 활동하며 한 달에 한 번 수원 고향집에 오는 오빠를 기다렸다. 오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시가 되었다.



 



“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오질 않았다. 오빠가 집에 올 때면 선물을 사 왔는데 한번은 “다음에 올 땐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줄게.”라고 말하고 서울로 떠났다. 그러나 서울 간 오빠는 소식조차 없어 과수원 밭둑에서 서울 하늘을 보며 울다가 돌아왔다. 그때 쓴 노래가 <오빠생각>이었다.” (최순애 증언, 경향신문, 1992. 3. 1.)





서울 간 오빠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열두살 최순애는 부모님이 하는 과수원 밭둑에서 앉아서 종일토록 오빠를 기다렸다. 광교산 시루봉 너머 서울쪽 하늘을 보다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고, 그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시로 풀어냈다. 최영주는 여동생이 쓴 시어 중 ‘비단댕기’를 ‘비단구두’로 바꿔서 잡지사에 보냈다. 후세에까지 불려지는 노랫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고향의 봄’ 작사가 이원수와의 만남



시를 짓는 그 마음으로 살다



 







어릴적 풍금반주에 맞춰 불렀던 ‘오빠생각’을 나지막이 읊조리며 행궁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순애의 발자취를 따라 화성 안 동네를 걷기로 했다. 성안 마을에는 '오빠생각'의 두 주인공에 대한 안내표지가 없다. 노래비도 없다. 최순애가 지금의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를 졸업 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최순애의 모교로 향했다.



 



행궁광장 맞은편에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수원종로교회가 있다. 일찍이 개화한 기독교집안이었기에, 이들 남매는 종로교회에 숱하게 발걸음을 했을 것이다. 오빠 최영주의 후손들은 이곳 종로교회에 잠시 다녔다고 기억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교회 창문에 장식된 스테인드 글라스가 오후 햇살에 영롱하게 빛났다. 문학을 사랑했던 최순애, 최영주의 열정처럼, 깊고 아름다운 빛이 배어나왔다.





최순애는 1902년에 지어진 삼일여자보통학교(지금의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 16회 졸업생이다. 화홍문이 바로 보이는 수원천 옆에 있으며, 올해로 개교 118년 된 유서 깊은 학교다. 북수동에서 학교를 가려면 수원천을 건너야 한다. 화홍문으로 다녔거나 수원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야했다. 학교 정문 가까이 놓인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건너갔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물줄기가 제법 거셌다. 잠시 멈춰 서서 물소리를 들었다. 신풍동에서 나고 자란 나혜석(1896~1948)이 쓴 시 ‘냇물’은 수원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삼일여자보통학교 1회 졸업생인 나혜석은 최순애에게는 대선배였다. 문학소녀 최순애는 수원천을 건너 등하교하면서 나혜석의 시를 낭독했을지 모르겠다. 여성에게는 더 불평등했던 시대, 한 동네에서 태어나 글을 썼던 두 여성의 삶을 헤아려보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삼일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최순애는 서울 배화여고를 다니다 중퇴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탓에, 매일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학교 가는 것이 힘에 부쳤다. 문학청년이었던 오빠의 책들을 다락에서 꺼내 읽으며 종일 시간을 보냈다.



 



최순애는 결혼하기 전까지 이곳 성안 마을에서 살면서 글을 썼다. 윤석중 이원수 신고송 서덕출 윤복진 등과 함께 ‘기쁨사’라는 동인을 만들고 글을 썼다. 문학활동을 하면서 ‘고향의 봄’ 노랫말을 지은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를 만났다. 두 사람의 연애담은 한 편의 소설처럼 달달했다. 마산에서 살던 이원수는 최순애보다 한 해 늦게 『어린이』 잡지에 ‘고향의 봄’ 동시를 발표했다. 이원수는 최순애의 ‘오빠생각’ 동시에 깊은 인상을 받고 먼저 편지를 보냈고, 두 사람은 10여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수원과 마산이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은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최순애 부모님은 가난한 문인 이원수와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오빠 최영주가 적극적으로 도왔다. 결혼을 하면서 최순애는 수원을 떠나 마산에서 생활했다.



 



 





골목박물관에서 만난 최순애

최영주의 삶과 문학



 







최순애, 최영주의 생애를 담은 전시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북수동에 위치한 골목박물관, 오래된 한옥구조 건축물로 100여 년의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골목박물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동신교회 앞에 잠시 멈췄다. 매향여고 옆에 있는 이곳은 최순애의 어머니가 서울 사는 아들 최영주 집에 머물다가 수원으로 내려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동신교회 또한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골목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오빠생각’ 벽화골목길을 만났다. 댕기머리를 한 열두살 최순애가 서울 간 오빠를 기다리는 그림이 정겹다. 골목 끝에서 금방이라도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빠 최영주가 달려올 것 같다. 벽화 위에 설치된 ‘뜸북뜸북 뜸북새’ 첫 소절 음표들을 따라 노래를 부르며 골목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벽화골목길에서 5분 거리에 있다.



 



골목박물관에는 ‘오빠생각’ 최순애, 최영주 이야기를 담은 전시가 상설로 열리고 있다. 2017년 화성 안 동네를 기록하면서 ‘오빠생각’의 주인공 최순애, 최영주의 생애를 재조명했다. 최순애와 최영주의 일대기를 꼼꼼히 기록한 전시를 찬찬히 읽어갔다. ‘오래 불러지는 노래에는 힘이 있다.’로 시작되는 전시 설명글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렀다.



 



 



 



 



 



노영란 작가는 화성 안 골목길에 여행하듯 살아가며 짬짬이 글을 쓰고 기획을 하는 작가이다.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과 예술인들이 함께 활동하고 어우러지기 위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의 일상을 즐겁고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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