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호 예술 인문학-나는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 따윈 없다고 생각해 _강희영 신작 장편소설 『녹색 커튼으로』


나는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 따윈 없다고 생각해 _강희영 신작 장편소설 『녹색 커튼으로』



Writer 강일서 data 강희영 작가



 



나는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 따윈 없 다 고 생각해



 



강희영 신작 장편소설 『녹색 커튼으로』



독특한 화법과 진지한 탐구 의식, 탄탄한 구성으로 “어디를 봐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뛰어난 작품(소설가 박민정)”, “에너지와 기운이 강력한 소설(소설가 정용준)”이라는 찬사와 함께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강희영의 두 번째 장편소설 『녹색 커튼으로가 출간됐다.



 



온 감각이 만개하는, 초록빛이 무성한 여름의 두 사람



패션계의 대표적인 행사로 손꼽히는 유럽 패션 위크, 덴마크의 어느 골목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포토그래퍼를 꿈꾸는 ‘차연’이 모델 ‘다민’과 마주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이국에서 만 난 또래의 두 여성은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며 자연스레 이끌 린다. 둘은 패션쇼 애프터 파티에서 패션계 사람들과 섞이고, 아 릿한 술기운으로 밤거리를 거닐고, 방파제의 바닷바람을 맞으 며 빵집에서 버린 데니시 롤과 호밀빵을 나눠 먹는다. 젊음이 가져다주는 무모하고도 들뜬 환희를 만끽하는 다민과 차연의 모습에서는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설렘과 웃음, 아찔함, 애틋함 이 초록빛 이파리처럼 반짝인다.



다민의 소개로 유명 패션지 에디터에게 자신을 알리고 그의 추천서를 얻은 차연은 귀국한 뒤로 패션 잡지에 사진을 실으며 커리어를 쌓아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한층 성장한 차연과 다민은 다음 해 여름 파리에서 재회하며, 함께 튈르리공원을 산책하고 이브 생로랑의 회고전이 열리는 프티팔레를 찾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나프탈렌 냄새 속에서 어색하게 손목 이 뒤틀린 동일한 체형의 백색 여성형 마네킹들과 이제는 클리 셰처럼 보이는 옷들, 그리고 살 수 없는 그 옷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뿐이다. 어쩌면 그때 차연은 다민이 모델 생활에 피로를 느끼고 있음을, 순간의 유행일 뿐 결코 영원하지 않은 패션에 대한 의심과 회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눈치 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후 다민은 모델 생활에서 은퇴해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차연은 그런 다민 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다민의 부탁으로 패션 쇼 준비를 돕는다. 예쁜 걸 모아놓고 그걸 망쳐보겠다는, 그래서 유행을 끝내고 자신과 모두를 위한 옷을 만들겠다는 다민의 무모한 기획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예상하지 못한 채로.



패션쇼보다는 연극적인 퍼포먼스에 가까웠던 그 날의 쇼 이후 다민은 차연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연락을 취하지 않은 채로 패션계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민의 안부보다 다 민이 만든 옷의 행방에 관심을 가질 뿐, 오직 차연만 다민이 남긴 메시지를 이해한다. 그리고 다민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민을 기억하며, 패션이란, 예술이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비로 소 다시 생각한다. 다민이 남긴 것을 손에 쥐고, 다민의 뒤를 잇기로 결심한다.



 



나는 그 누구도 아닌 유행 그 자체, 허공을 떠다니는 녹색 커튼



강희영 작가의 첫 작품 『최단경로』가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더욱 두드러지는 삶의 돌발성과 그로 인한 상실의 슬픔 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면, 두 번째 작품 『녹색 커튼으로』에서 작가는 패션과 사진을 소재로 삼아 빠르게 부상하고 허무하게 사라지는 유행의 시대에 진정한 자아란,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 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아름다움과 예술의 문제에 접근하 는 참신한 시각과 눈이 부실 만큼 선명한 감각으로 다가오는 섬 세한 문장이 어우러져 새로운 소설 세계를 만나는 반가운 기쁨 을 깨닫게 한다.



『녹색 커튼으로』의 대부분은 지난해 여름에 썼다고 한다. 강희 영 작가는 2020년 7월부터 8월에 걸쳐 네덜란드와 한국에서 연달아 자가격리를 하는 중에 초고를 완성했다. 반은 그곳에서, 나머지 반은 한국에서 쓴 것이다. 그는 작금의 팬데믹으로 인해 암스테르담에서의 유학 생활을 중지했고, 그곳에 애써 꾸린 공 간을 헐면서 이 이야기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 그런 아이러니 가, 무너지는 가운데 세워지는, 어떤 자연의 풍경을 연상시켰던 것도 같았다고 말한다. 당시 그에게 청명한 하늘이나 짙은 녹음 같은 친밀한 풍경은, 정말이지 창틀로 표구한 그림이나 다른 바 없었다고. 창밖이 그런 경치로 채워져 있었던 것은 분명 큰 행 운이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속이 상했었는지도 모르겠다며, 어릴 적 쇼윈도 앞에서 느꼈던 기분이 자주 되올라왔다고 한다.



『녹색 커튼으로』가 차연이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되짚어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쉴 새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걸음을 멈추고 장막으로 가려진 무대 뒤에서 영원을 꿈꾸는 일, 젊음과 낭만, 아름다움으로 장식된 세계의 허위를 찢고 어떤 형식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생생한 감각을 그려 보이는 일은 그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녹색 커튼으로』 는 자신을 활발하게 표현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건이 된 소셜 네트워크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 기일 것이다.



 



강희영 작가



1986년 수원 출생. 서울과 암스테르담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2019년 장편소설 『최단경로』로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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