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호 칼럼-대선 후보도 춤을 추는 숏폼 콘텐츠 시대


대선 후보도 춤을 추는 숏폼 콘텐츠 시대



Writer 정호훈 자유기고가 Illustrator 한진선



 



대선 후보도 춤을 추는 숏폼 콘텐츠 시대



 



“인식만이 실체다. 하지만, 인식은 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요즘은 짧은 것이 대세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만, 긴 콘텐츠는 보지 않는다. 틱톡에 이어 인스타그램의 릴스, 유튜브의 쇼츠, 네이버의 블로그 모먼트까지, 이름하여 숏폼 콘텐츠(혹은 플랫폼) 전성시대다. 짧은 이유로 전후좌우 없이 결론만 말하니, 직관적으로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과관계나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10초 남짓한 콘텐츠가 세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



 



1.짧은 영상의 시대



‘물아일체(物我一體)’에 빗대어 '폰아일체’라는 말이 있다. ‘휴대폰 과 나는 하나'라는 것. 현대인의 휴대폰에 대한 애착은 ‘노모포비아 Nomophobia(케임브릿지 사전 ‘2018년 올해의 단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노모바일 폰 포비아No Mobile Phone phobia’의 줄임말로 휴대폰 분리불안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가 되며 더 심해지고 있다. 이렇게 휴대폰 없이 살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한창 미디어 시대에 휴대폰으로 무엇을 할까? 주로 영상과 이미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작은 화면으로 촘촘한 글보다는 쉽게 볼 수 있는 영상과 이미지를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특히 최근에는 호흡이 긴 영상보다는 짧은 영상이 대세다. 이렇게 수초에서 10분 이내의 짧은 콘텐츠를 숏폼short-form이라고 한다.



숏폼의 반대는 길이가 긴 롱폼long-form이다. 숏폼과 롱폼 콘텐츠의 차이는 길이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콘텐츠 소비자 입 장에서 말한다면, 시간을 내서 보느냐, 아니면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 로 볼 수 있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히, 모바일에 익숙한 현대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모바일을 본다. 그러므로, 갈수록 콘텐츠의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서 현재 전 세계는 숏폼 콘텐츠(혹은 플랫폼)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럼에도 숏폼의 대명사인 틱톡TikTok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시간 때우기killing-time용 15초 짜집기 영상이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하지만 틱 톡 앱의 누적 다운로드 건수는 금세 30억 회를 돌파했다. 그리고 이제는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뛰어넘는 사용량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 한 숏폼 인기의 이유는 모바일 소비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보다 복잡 한 이유와 함께 다양한 문제를 담고 있다.



 



대선 후보도 춤을 추는 숏폼 콘텐츠 시대



 



2.인터넷 밈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사실 숏폼이 나오기 전부터 짧은 콘텐츠가 점점 더 많이 소비되는 현 상은 있었다. ‘폰아일체’가 되자 모바일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극단적으로 많아졌다. 사람들은 이내 피로감을 느끼고, 시간과 장소 에 구애받지 않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스낵과 같은 일명 ‘스낵 콘텐츠’를 즐기게 된 것이다. 가령,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는 대신, 3줄 로 요약된 스낵 콘텐츠를 통해 책을 평가하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식의 문화-스낵 컬처-가 이미 확산되고 있었다.



SNS나 메신저를 통해 소비하는 콘텐츠 대부분이 짧으니, 틱톡과 같은 숏폼이 새로운 현상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숏폼 플랫폼 에는 기존의 SNS와는 다른 가벼움과 재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SNS 는 친구 맺기와 같은 관계의 형성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숏폼에는 관계에 대한 부담 없이, 단지 재미있는 콘텐츠를 가볍게 즐기기만 하 면 된다. 이는 재미를 중요시하고 소비하는-‘펀슈머Fun-sumer’-Z세대의 입맛에 딱이다.



더욱이 크리에이터와 같은 거창한 기술이나 지식도 필요 없다. 숏폼 플랫폼이 무료로 제공하는 특수효과와 음악을 이용하여 손쉽게 ‘재미’를 생산할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포노사피 엔스Phono Sapience인 Z세대는 콘텐츠 소비자를 넘어 능동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알리기를 즐기고, 이러한 행위를 일종의 놀이라 고 생각하기 때문에 숏폼은 금새 주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숏폼이 온라인 놀이터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데 코로나19 덕도 있지만, 그 기저에는 인터넷 밈Internet Meme도 있다. 본래 밈이란 ‘인간의 유전자와 같이 자기 복제적 특징을 갖고, 번식해 대를 이어 전해져 오는 종교나 사상, 이념 같은 정신적 사유’를 의미리처드 도킨스한다. 그런데 인터넷 환경에서 모방의 형태로 전파되는 문화 현상이 이를 닮았다 하 여 인터넷 밈이라 한다. 기존의 SNS가 단순히 재미를 공유하는 데 그 쳤다면, 숏폼에서는 그 재미가 인터넷 밈으로 재생산되어 폭발적으로 확산된다. 이러한 확산 과정에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인기가 없을 수 없다. 틱톡 구독자 1억 명을 처음으로 돌파한 미국의 10대 자매 찰 리 다멜리오와 딕시다멜리오는 80억을 넘게 벌어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짧다’라는 것이 가지는 문제는 ‘짧지 않다’.



 



3.더 짧게, 더 자극적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전통적 권위에 부정적이며 정치에 무관심하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유행을 좇지 않으며, 자 신만의 개성을 표현한다. 무슨 일이든 전문성이 더 중요하고, 과도한 진지함과 무게감보다는 밝고 가벼운 것이 좋고, 성에 개방적이다.” 워 크맨과 뮤직비디오를 즐기던 90년대 초반, 20세기 말의 신세대, 이름하여 ‘X세대’에 대한 설명이다. 느낌을 중요시하는 그들은 새로운 소비와 문화를 이끌었었다.



짐작건대, 당시의 X세대는 지금의 Z세대보다 더 충격적인 세대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인 Z세대는 너무 감각적 이고 자극적이다. X세대와는 달리 숏폼 콘텐츠와 플랫폼이 있기 때 문이다. 고작해야 15초 내외의 영상 안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정확한 정보보다는 순간을 사로잡는 이미지나 자극이다. 물론 가성비를 즐기는 Z세대는 길이가 짧으면 짧을수록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하 지만 이 만족감의 정체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정체불명의 인터넷밈 은 작위적이거나 저질의 콘텐츠를, 콘텐츠 경쟁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자극 콘텐츠의 생산으로 종종 연결된다. 이러한 콘텐츠는 갈등과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재미있기 때문’에 중독적으로 소비된다.



특히, 짧은 영상 안에 이것저것을 구겨 넣는 과정에서 욕망과 한계, 가상과 현실이 패치워크patchwork, 조각천을 이어 붙여 1장의 천을 만드는 수예 되어 스스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문제다. 최신 트렌드를 추구하면서도 차별적인 경험을 선호하는 MZ세대는 소위 플렉스flex, 사치성 소비하고 싶은 욕망이 크다. 하지만 현실은 한계투성이다. 돈을 모아 집을 사고 결혼을 하는 등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MZ세대에게는 고용과 개인의 재정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적 공허함이나 스트레스를 잊기에 좋은 것이 숏폼에서 재미를 소비하거나 생산하는 자기 보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것은 결국 미래를 회피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외에도, 정보가 아닌 자극에 의한 소비생활 조장과 같은 부정적인 영향이 많다. 이러한 문제들이 있음에도 숏폼에 대한 비판 적인 시각은 어디에도 없고, 숏폼을 이용해 잠재고객인 MZ세대를 확 보하려는 움직임만 있다.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어떻게든 유행하는 플랫폼에 올라타 인기몰이와 지지를 얻으려 한다. 특히, 진지하고 실 천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야 할 선거판에서조차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숏폼에서 의미 없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보면 젊은 세대에 “지못 미”라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대선 후보도 춤을 추는 숏폼 콘텐츠 시대



 



4.10초의 조각들로 인식하는 세계



때로는 긴 이야기 보다, 짧은 영상 하나 혹은 좋은 글귀 하나가 더 강 력한 힘을 가질 때가 있다. 하지만 숏폼의 소비 패턴을 보면 짧은 것 이 ‘때로는’이 아니라 ‘언제나’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대로 ‘짧은 호흡’의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져 기존의 매체와 멀어진 다면, 과거로부터 축적된 다양한 형태의 지식체계와 같은 ‘긴 호흡’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또 다른 우려는 숏폼 콘텐츠가 우리의 인식체계가 정상적으로 형성 되고 작용하는 것을 막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 은 다양한 자극을 지각하고, 인지하고, 기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념이나 태도와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우리의 인식체계가 깊은 사려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숏폼 콘텐츠의 파편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 했다. 항상 진지할 수만 은 없으니, 숏폼을 통해 재미를 소비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사유와 사색 없이는 세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호훈 자유기고가,



문화칼럼리스트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영상대 겸임교수로 브랜드 마케팅 분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여론 분석 및 마케팅컨설팅 사업을 하며, 경영을 비롯해 문화와 심리학 칼럼니스트로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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