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호 즐거운 수다 1_시대의 한복판에서 마주친 가장 어두운 이야기_작가 이주영


작가 이주영



작가 이주영



 



시대의 한복판에서 마주친 가장 어두운 이야기



 



수원천을 사이에 두고 재래시장들이 즐비한 지동교 위에 간당간당한 삶들이 흩뿌려져 있다. 구부정한 등에 자기 몸집만큼이나 큰 가방을 멘 노인,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무릎에 고개를 묻은 이, 온전치 않은 몸에 의지해 생을 살아내는 사람들……. 위험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이들이 지동교에 있었다.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한 2020년 초봄, 이주영 작가는 지동교 위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그려온 작가는 먹먹한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작품 속 이들의 눈을 통해 아픈 현실을 전한다.



 



작가 이주영



 



숙명과도 같았던 작품 속 그늘진 풍경들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았던 이주영 작가에게 그림은 삶의 전부였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집에만 있는 아이가 안타까워 어른들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선물해 주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즈음 스케치북 겉장에 그려진 명화를 접했고, 국민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스케치북에서 보았던 밀레와 고흐의 그림 을 따라 그렸다. 장래희망에 늘 화가라고 쓰던 소년은 청소년 시기 프랑스 화 가이자 판화가인 오노레 도미에를 알게 된다. 정치 풍자화로 투옥될 만큼 현 실의 부조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그림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 꼈다. 가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대학을 다닌 이주영 작가에게 시대의 모순에 대한 고민은 숙명이었다.



 



1986년, 목판모임인 ‘판’에서 민중 작가로 활동했던 故최춘일과 공부했어요.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철거문제가 대두되었는데 그때 동료들과 함께 철거 현장으로 가서 그 모습을 담았습니다. 현장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 어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외면할 수 없을 때마다 화판을 챙겨 현장으로 향했 습니다.” 



 



이후 민중미술운동에 참여한 그는 수원문화운동연합 시각예술위원회 등 다 양한 활동을 펼쳤다. 생계가 어려워 잠시 붓을 놓은 시기도 있었지만, 2003년 수원으로 돌아와 또다시 소외된 사람들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남수동의 꿈, 신대방동 아이처럼 우리네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를 그리기도 했고, 블라디보스톡과 같은 해외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얼핏 투박하고 거칠 어 보이는 그림이지만 따뜻하고 섬세한 작가의 시선은 한결같았다.



 



“생계 앞에서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저 히 타협할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 삶 속의 가장 약한 존재들, 자본이나 권력의 폭력에 삶이 흔들리는 풍경을 꼭 그려야만 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한, 예술가 로서의 나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속 지동교 위 위태로운 사람들을 그리다



 



2020년 1월, 그의 시선은 코로나19 속 소시민의 삶에 머물렀다. 지동시장 인 근 작업실에서 바라본 시민들의 모습, 바이러스를 향한 두려움 속에서도 삶을 살아내는,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을 담기 위해 지동교로 향했다



 



"다리가 상징하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반가운 만남도 있고 아픈 이별도 있는 반면에 완전하지 못한 두 장소를 겨우겨우 이어 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들 지요. 지동교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그랬어요. 간당간당한 다리 위에서 위태로 운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이를 꼭 담고 싶었습니다.”



 



먼지투성이에 낡아빠진 누더기옷을 입은 사람, 종일 한 자리에 웅크리고 앉 아 있는 사람, 구부정한 몸으로 매일 같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콩테(콘테, Conte)로 그려졌다. 하얀 장지 위에 흑색으로만 표현된 인물의 모습은 얼굴이 마스크에 가려져 있음에도 절망과 무기력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색의 덧입힘 없이 완성된 그림에는 사무치는 차가운 현실이 마주하고 싶지 않을 만큼 노 골적이게 담겨있다. 그가 1년 가까이 그린 120점의 작품은 지난 1월 수원 해움 미술관에서 열린 으로 공개됐다.



 



“그리고 싶은 걸 못 그리면 마음은 물론 몸도 힘들어요. 나이가 들면서 일일이 현장으로 가는 게 부칠 때도 있지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동교로 갔어요. 현장은 멀리 있지 않아요.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광경을 만나면 그게 바로 현장이지요. 그리고 그늘진 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속에 제가 있어요.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바로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작가로서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림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그의 말 처럼 이주영 작가는 자신의 숙명을 앞으로도 이어갈 계획이다. 전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또다시 지동교를 배경으로 한 연작 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우리 사회 속 가장 아픈 이야기는 예술이 계속 되어야 할 이유를 대신하고 있다.



 



Conte(콩테, 콘테) 나무를 태워 만든 목탄과 달리 콩테는 안료성분에 납과 기름을 섞어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 재료다. 콩테는 원래 Crayon de Conte라 불리는 고형 물감의 한 종류로 프랑스의 화학자이며 화가였던 니콜라 자크 콩테 (Nicolas Jcques Conte)가 만들었다고 해서 콩테(conte)라고 명명하고 있다.



 



작가 이주영



작가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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