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호 칼럼_부캐와 멀티캐로 대중을 사로잡다


부캐와 멀티캐1



 



현대인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자기 안에 담고 있다. 낮에는 회사원, 저녁에는 밴드 기타리스트, 주말엔 아르바이트까지. 생계를 위해 투잡도 불사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장소는 물론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부캐와 멀티캐 전성시대다.



 



Writer 김정연 자유기고가 Illustrator 한진선



 



1.



방송가 인기 아이템, 나도 부캐



 



멋진 드럼 실력을 뽐내는 ‘유고스타’, 트로트 신인가수 ‘유산슬’, 라면 끓이는 요리사 ‘라섹’, 하프 신동 ‘유르페우스’, 라디오 DJ ‘유DJ뽕디스 파뤼’, 치킨을 튀기는 ‘닭터유’, 그리고 여름 댄스 혼성 그룹 ‘싹3’의 멤 버 ‘유두래곤’까지. 바로 국민 MC 유재석의 다양한 모습이다. 이른바 ‘부캐’라고 일컫는다.



‘부캐’란 본래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다. ‘본캐(본래 캐릭터)’라는 온 라인 게임에서 원래 사용하던 계정이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 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후 일상생활로 사용이 확대되면 서 '평소의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 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의 시청자라면 알겠지만, 이것은 일종의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역할 놀이다. 유재석이 “저는 유산슬이라는 신인 가수고 소속사는 MBC이며 소속사 사장은 김태 호 PD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방송에서 또 다른 캐릭터를 연 기하는 것이다.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말하는 이 또 다른 캐릭터가 바 로 ‘부캐’이고 ‘본캐’는 유재석이다. 개인적으로 방송에서 나온 부캐의 큰 시발점은 마미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쇼미더머니 시즌 7에 출연 하여 매드크라운과 매우 비슷한 랩과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매드크 라운이라고 의심을 했지만, 본인은 아니라며 연기했다. 하지만 이때 만 해도 그저 하나의 재미 요소로 볼 뿐 부캐에 대한 열풍이 생겼다 고 보긴 어렵다. MBC 예능 프로그램 에서 인기 개그 맨 유재석을 내세워 다양한 부캐를 만들어내고 이를 콘텐츠로 활용 한 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요즘 방송가, 특히 예능계에서 부캐란 키워드가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효리 역시 유재석과 함께한 「놀면 뭐하니?」에서 부캐, ‘린다G’와 ‘천옥’을 선보였다. 개그우먼 김신영은 '다비 이모'라는 부캐 로 트로트 앨범을 내며 가수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제작사 갤럭시 코퍼레이션은 '부캐선발대회'를 개최하며,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 가 수, 개그맨, 스트리머 등이 새로운 정체성의 부캐를 공개하고 경연하 는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모았다. 시즌1의 최고 부캐 ‘아아(탁재훈, 이 지훈)’에 이어 시즌2에 참여할 새로운 부캐들을 모집한다.



 



 



2.



다양한 정체성, 멀티 페르소나



 



이렇게 많은 가면을 활용해 다양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을 ‘멀티 페 르소나’라고도 한다. 새해 트렌드를 매년 예상해온 김난도 서울대 교 수는 2020년 핵심키워드로 멀티 페르소나를 꼽기도 했다. 상황에 맞게 가면을 바꿔 쓰듯 다양한(멀티 Multi) 정체성을 가진 현대인을 일컫는 말이며, 페르소나는 라틴어로 '가면(페르소나 Persona)'을 뜻 하는 단어다.



이러한 멀티 페르소나는 셀럽들에게서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다. 멀 티 페르소나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이 이미 이 멀티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어린 시절 파워레인저, 프리큐어 등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따라 하거나 역할을 정해서 소 꿉놀이를 해본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이 발달 하면서, 모바일을 통해 정보 확산 및 교류가 많아지고 SNS에서 여러 부계정을 활용하며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멀티 페르소나는 20~40세대 직장인들에게서 흔히 찾을 수 있 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조용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주말 동안 락페스티벌이나 클럽에서 즐기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 니다. 또 즐거운 일상을 위해 주말에는 평소 배우고 싶었던 기타를 치 며 콘서트를 열고, 퇴근길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는 일상을 공유하 는 유튜버가 되어 자신만의 페르소나들을 만들어간다. 사회와 가정 에서의 역할까지 하다 보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몸이 열 개가 되니, 정체성도 열 개가 되곤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 맞춰 본인의 모습을 바꾸거나 때로는 감추며 생활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마 치 가면을 바꿔 쓰듯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며 자유롭게 상황에 따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캐와 멀티캐2



 



 



3.



행복을 찾아가는 현대인의 또 다른 얼굴



 



2020년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5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멀티 페르 소나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7.6%가 회사에서의 모습이 평 상시와 다르다고 답했다. 이러한 답변은 40대 이상 직장인(71.2%), 20대(80.3%)와 30대(78.0%) 직장인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회사에 서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에 맞추기 위해서 그들만의 가면을 쓰게 된 다. 물론 이 같은 양면성은 악성 댓글을 다는 네티즌으로 활동하고 일 과 삶의 균형이 무너지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긍정적인 효과 를 낫고 있다. 이런 부캐들은 기존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원래 자신의 스펙트럼을 자연스럽게 넓히는 계기가 된다. 취미로 배웠던 요가나 필라테스에 빠져 요가 강사가 되고, 그저 먹는 게 좋아서 맛집을 돌아다니면 올렸던 사진들로 인해 SNS 스타, 인플 루언서가 된다. 또 본업의 연장선으로 자신들이 아는 것들을 다른 사 람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 시작한 동영상이 많은 조회 수를 얻으면 서 본격적인 유튜버로 활동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약 6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닥터프렌즈‘는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이비인후과 전문의 3명으로 구성된, 의학 상식들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다. 그들은 낮에는 의사로 본업에 임하다가, 퇴근 후 또는 주말 에 친구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동영상을 촬영한다. 인기 크리에이터 가 된 ‘닥터프렌즈’의 새로운 일상이다.



뿐만 아니라 직장을 잃었던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발판이 되기도 한 다. 지난해 6월 개그콘서트(KBS2) 폐지로 무대를 잃었던 개그맨들이 유튜브에서 ‘부캐’ 열전을 펼치며 더 큰 인기를 누린다. KBS 공채 29 기로 2014년 데뷔한 개그맨 이창호가 연기하는 부캐인 ‘피식대학’의 ‘이호창’이다. 개그콘서트의 ‘라스트 헬스보이’ ‘민상뉴스’ ‘귀생충’ 등 의 코너에 꾸준히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창호는 개콘 폐지 이후 도리어 전성기를 맞았다. 앞서 ‘부캐’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개그맨 추대엽, 일명 ‘카피추’도 있다.



 



 



부캐와 멀티캐3



 



 



 



4.



브랜딩, 마케팅 시장도 부캐 열풍



 



이러한 다양한 현대인의 정체성은 사람들의 생활 및 소비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유연한 자아의 멀티 페르소나는 다양하게 분리되 는 소비자들의 선호를 따라잡기 위해 ‘기업 소비의 특화성’을 강조하 는 의미도 크다. 기업은 주력상품과는 연관성이 없는 카테고리로 제 품 이미지를 확장, 전혀 다른 콘텐츠로 고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는 대한제분의 곰표 밀가루다. 2019년 겨울 출 시한 곰표 패딩이 이른바 '인싸템'이 되면서, 어떤 상품이든 곰표의 이름과 특유의 캐릭터를 달기만 하면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 났다. '인간 사료'라고 불리는 곰표 팝콘을 비롯해 곰표 맥주가 대박 을 터트리며 곰표 열풍을 이어간다. 또 예능 프로그램 의 캐릭터 ‘신묘한’도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제일기획의 부캐인 제삼기 획의 굿즈 등 다양한 형태로 상품 개발되고 있다.



하이트진로 역시 진로 소주의 로고 ‘두꺼비’를 다시 내세워 큰 변화 를 맞이했다. 젊은 세대에게는 레트로 감성을 중장년층에게는 추억 을 주는 캐릭터로 하이트진로 굿즈를 판매하는 ‘어른이 문방구 두껍 상회(시즌 한정)’도 오픈했다. 빙그레도 34년 된 ‘꽃게랑’을 재해석해 의류 및 패션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꽃게랑의 부캐격인 ‘꼬뜨-게랑 (Côtes Guerang)’은 모델로 패션 아이콘 지코를 내세우고, 꽃게랑 스 낵 모양으로 디자인한 로고가 적용된 선글라스, 티셔츠, 로브, 백, 마 스크 등의 제품은 큰 인기를 끌며 완판되었다.



이 같은 부캐 열풍은 한동안 우리 생활에서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그 놀이판에 기꺼이 올 라가 함께 논다. 그것은 분명 거짓말이고 연기며 장난이자 농담이지 만, 현실에는 없는 그 무엇이라 대중은 더 즐겁게 속아줄 수 있다.



 



 



김정연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출판잡지학과를 졸업 해 기업과 사회단체의 사보 및 사사 전문작가 로 활동하다가 교육 잡지사 편집장을 역임하고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워킹걸 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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