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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트렌드 키워드




거대언어모델이 새로운 시대의 글쓰기 도구로 부상할 수 있었던 연원은,

가깝게는 실리콘밸리의 몇몇 천재들이 쓴 논문의 폭발적 결과이면서,

기원전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글쓰기의 수학적 기원에 맞닿아 있다.



Writer 임태훈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초거대 AI 모델의 등장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이어진 필연적 진행 방향



글쓰기는 인간의 말을 기록할 목적으로 음절 단위 쓰기, 음성 표기 체계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호적 상황들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페니키아 단어 spr( )은 본래 ‘셈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쓰다’의 의미가 생겨난 것은 그보다 후대의 일이었다. 알파벳의 기능 역시 최초에는 수학적 필요에 종속된 것이었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텍스트를 사람이 쓴 것과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의 원형은 기원전 480년 전부터 있었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인간의 마음과 기억을 외재화(外在化)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테우트 신화와 그림 그리기 비유 및 현명한 농부의 비유를 통해 글보다는 말이 근본적 우위에 있음을 주장했다. 문자와 글에 의존할수록 우리는 기억력이 떨어지고 지혜롭지 못하게 되는데, 영혼이 기억을 제대로 훈련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영혼은 글과 문자가 아니라, 말에서만 생동한다고 강조했다. 훗날 데리다는 음성중심주의로서의 서구 로고스중심주의를 비판하며 「파이드로스」에 해체적 분석을 가했다.



정신이 음성을 통해 직접적인 자기 현전, 무매개적 자기관계를 경험한다는 관념은 18세기 루소의 시대에도 강고했다. 루소는 「언어의 기원」에서 언어의 발달 과정을 순수한 자기표현인 최초의 언어가 점진적으로 타락해가는 과정으로 인식했다.



글쓰기의 알고리즘적인 잠재성이 비약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탈 음성체계로 프린티 드 잉글리시(Printe d English)가 활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전기 신호를 이용하여 송신할 내용을 보내는 통신 방법인 전신(電信, Electrical Telegraph)은 단점(·)과 장점(.) 두 종류의 기호 조합에 알파벳을 치환시켰고, 이를 발전시켜 0과 1의 이항 대립의 수학적 기호 형태를 활용해 현대 정보기술 체계의 근간이 구축됐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암호기술에 대한 군사적 필요성이 각별해지면서 무선통신 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기계적·전자적 암호장치가 개발되고 사용됐다. 냉전 시기를 거치며 이 기술은 컴퓨터를 이용한 암호기술과 인터넷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정보통신 사회의 핵심 토대가 글쓰기의 알고리즘적인 잠재성으로부터 성립한 것이다.



초거대 AI 모델의 등장은 느닷없이 갑자기 생겨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글쓰기의 수학적 기원으로부터 근현대 정보기술의 발달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진행 방향이었다. 따라서 특정 시기의 문학·글쓰기를 시원으로부터 보존된 본질적인 원형인 것처럼 생각할 수 없을뿐더러, 새로운 기술의 잠재성을 타협해선 안 될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관념은 생존의 위협을 자초하게 된다.



 



AI로 뭘 더 할 수 있을지 상상해내는 일과 더 많은 실험이 필요



그렇다면 이 기술에 힘입어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예술가이면서 과학자의 정체성(Artist-Scientis)을 고수하며 뉴로 테크 예술과 체험 건축(Experience Architect) 작업을 이어온 미셸 황의 사례를 소개한다. 그이는 10년 넘게 작성한 어린 시절 일기를 API(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로 끌어온 지피티-3에 입력 해서, AI로 생성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대화를 시도했다. 같은 방법론으로 춘원 전집과 횡보 전집을 데이터베이스삼아 이광수 AI, 염상섭 AI를 생성할 수 있을까?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허〉(2014)에서도 같은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인공지능 OS가 대중화된 시대를 예리한 통찰로 상상한 영화다. 이 영화의 시간대는 지금으로부터 겨우 2년 뒤인 2025년이다. AI 사만다가 다른 인공지능들과 협업해서 1973년에 죽은 작가인 앨런 와츠(Alan Watts, 1915~73)를 복원한다. 그가 남긴 저작과 음성 데이터, 그에 대한 온갖 연구를 활용해 앨런 와츠 AI를 구성한 것이다. AI 강령술이라 부를 수 있겠다.



앨런 와츠 AI는 AI OS와 사랑에 빠진 남자인 테오도르와 대화한다. 그는 테오도르가 쓴 글을 모두 읽어봤노라며 감상을 말해준다. 사만다가 앨런 와츠를 복원한 이유는 AI들이 특이점을 넘어 말도 안 되는 정신적 존재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어서, 앞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이광수 AI, 염상섭 AI를 상대로 이런 상담이 가능할까? 어느새 기술이 문제가 아닌 시대가 되고 말았다. 할라치면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문제는 이걸로 뭘 더 할 수 있을지 상상해내는 일이다. 춘원이나 횡보를 연구한 박사 논문의 심사자로 AI를 투입할까? 그것도 아니면 춘원, 횡보가 남긴 미완성 소설을 AI가 마저 완성하게 할까? 상상의 속도가 기술 발전보다 느려터진 게 아닐까?



이미 직업 생태계에선 생성형 AI 활용법을 엑셀이나 워드 프로그램 사용에 버금가는 직무 역량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입문을 위한 문턱은 충격적으로 낮고, 직관적인 입출력 인터페이스에 처리 속도와 용량까지 출중한 서비스가 속속 출시 중이다. 1인 미디어 생산자라면 챗지피티와 미드저니를 활용해서 비용과 시간을 단축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일례로 성균관대에서는 2023년 1월에 〈AI × BOOKATHON 대회〉가 열렸다. 기획과 글쓰기, 인공지능 활용을 합쳐놓은 콘셉트의 경진대회인데, 출판 콘텐츠 기획에 맞춰 인공지능을 활용해 글과 그림을 생성하여 결과물을 겨루는 행사였다. 교내 문학상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한 작품도 지피티를 창작 도구로 활용한 단편소설이었다. 이 학생은 교내 AI 창작 워크숍에서 지피티 활용법을 배웠고, 마음에 드는 소설의 결말을 채굴하기 위해 프롬프트를 수정하며 수십 개의 후보군을 만들었다고 한다. 심사평에서도 무엇보다 결말이 인상적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이런 시기일수록 삶과 일, 기술을 횡단하는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당장에 돈을 벌기 위한 실험이 아니라, 이 횡단으로부터 가능한 사유와 행동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려는 도전이다. ‘GPT CRUSH’라는 곳을 눈여겨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지피티를 API로 끌어와서 온갖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공유한다. 엑셀, 워드, 이메일 등의 문서 작성 툴에 지피티를 붙이는 아이디어도 사업화되기 전에 이곳에서 먼저 시도되었고, 각종 디자인 툴과 프로그래밍 엔진이 개조되기도 한다. 이런 실험은 한층 가속화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을 과대평가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의 ‘싫증’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기술 발전이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 대중의 싫증과 환멸이 대전환의 최종 상수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엄청난 생산성이 문제다. 온갖 콘텐츠가 무한정 생산되고 즉물적으로 소비된 뒤 쉽게 잊힌다. 끝없이 휘발되는 텍스트와 이미지, 사운드는 예술과 창의노동 전체를 하향 평준화할 소지가 다분하다.



 



인류 문명의 발전과 진화를 위해 집단 저능의 미래를 고민하며



집단 저능의 미래를 경고하는 이야기를 되새겨 들어야 할 때다. 조지 오웰의 『1984』(1949)에는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하층 대중 계급 프롤(Proles)에게 버시피케이터(Versificator)라는 단말장치가 지급된다. 이 장치에선 이런저런 노래를 재조합해서 팝 음악이 무한 재생된다. 오늘날 대중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콘텐츠를 즐기는 것처럼, 프롤에게 버시피케이터는 일상의 동반자다. 그들에게는 말초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읽을거리와 합성 알코올음료가 염가로 공급된다. 그리하여 프롤들은 전쟁 동원 자원으로 생을 저당 잡히는 파시즘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은 의미 있는 단어와 문장, 책을 압축, 삭제, 소각하는 일을 한다. 스피커 라이트와 메모리 홀(소각장치) 등으로 구성된 윈스턴의 작업 공간은 IT 노동자의 작업 풍경을 닮았다. 윈스턴은 빅브라더의 지배 질서에 반항하기 위해 텔레스크린에 감시당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일기를 쓴다. 펜으로 노트 종이에 꾹꾹 눌러쓰는 옛날 방식의 글쓰기로 세상과 불화할 결심을 한 것이다. 그는 과거의 고루한 글쓰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디스토피아의 한복판에서 테러리즘의 도구처럼 글쓰기를 재발명했다.



각본가 나카무라 시게키가 〈기묘한 이야기 SMAP 특별편〉을 위해 쓴 「엑스트라」(2001)는 생성형 AI에 언어 활동을 외주화했을 때 어떤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가를 경고하는 작품이다. 작중에는 인터넷은커녕 스마트폰도 등장하지 않지만, 각자에게 배당된 대본에 맞춰 일평생을 살아가는 작중 인물들은, 검색엔진에 이어 인공지능에 종속되어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미래인과 겹쳐 보인다. 주인공 타다노 이치로는 자신이 사는 세계가 대본 바깥을 허락하지 않는 곳임을 뒤늦게 각성한다. 그는 반항하기 위해 대본을 거부하지만, 자기 생각으로 하는 말로는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고, 경제 활동 일체를 차단당한다. 결국 그는 굴복해 대본의 세계로 돌아가 시스템이 출력해주는 대로 말하고 순응하며 여러 해를 보낸다. 그리고 결혼 상대마저 대본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또다시 반항한다. 하지만 『1984』의 윈스턴이 쥐 고문 끝에 빅브라더에게 굴복했듯이, 타다노 이치로의 탈주도 대본에 적힌 연기를 그대로 따른 것에 불과하다는 결말에서 이야기가 멈춘다.



챗지피티에 의지해서 온갖 귀찮은 문서를 손쉽게 만들고, 디지털로 찍어낸 말초적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에 신경을 종일 잠식당한 일상이 인류 문명의 발전이고 진화일 수 있을까? 검색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한계에 갇혀 그 너머를 욕망할 줄 모르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을 싫증 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한 심신이 되었다면 빅테크 플랫폼에 갇혀 구독료를 채취당하는 가축이나 다를 게 없다.



 



PROFILE​ 임태훈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문학과 테크놀로지, SF 문화와 사운드스케이프 예술을 통해 상상력의 구조 변동을 공부합니다. 공저로 「SF프리즘」, 「물질혐오」,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가 있고, 대표 저서로 「검색되지 않을 자유」, 「우애의 미디올로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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