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반가운 사람들 1-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


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



인간의 역사에서 빛은 어둠 속 유일한 탈출구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그리고 빛이 존재할 때 드리우는 그림자는 어두운 이면이자 미지의 영역이다.
빛과 어둠은 정조가 왕의 무게와 더불어 견뎌야 했던 인간 이산의 삶과 어렴풋이 닮아있다.
그의 두 가지 면모를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추풍미담(秋風美談)’ 특별전을 선보인 경수미 기획자와 지역작가 7인을 만났다.


Writing 편집실 Photo 수원문화재단 제공



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



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



▪ ‘추풍미담(秋風美談)’을 주제로 특별전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경수미) 가을은 하루 중 밤이 낮보다 길어 지고, 자연의 색이 서서히 바뀌는 계절 입니다. 그맘때 바라보는 화성행궁의 밤이 달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다 문득 가을밤 궁궐을 비추는 빛과 그림자의 깊이를 개인의 삶과 접목하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죠. 나아가 역사적 공간에 개인의 삶이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풍미담’ 특별전을 기획했어요. 그중 작품이 드러날 수 있도록 쏘아지는 조명이 아닌 달빛의 은은함을 뒷받침하는 간접조명을 중점적으로 활용했어요. 조명으로 궁궐과 작품을 하나로 만들며, 작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조화롭게 연출하고자 했죠.



 


▪ 정조와 인간 이산으로 나눠 빛과 그림자로 표현한 대목이 인상 깊은데요.


(경수미) 인생에 빛이 부재한 시기, 어둠이 주는 의미와 인간의 삶에서 느끼는 감정을 빛과 그림자로 은유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성찰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표현이에요. 문명인으로서 개화를 의미하듯, 어둠을 밝히는 빛은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과 의미를 담고 있죠. 긍정적인 감정은 빛과 에너지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림자로 비유되는 부정적인 감정은 때로 우리의 도전과 성장을 위한 시간을 유예하니까요. 또한 화성행궁이라는 장소에 맞게 왕으로서의 ‘정조’와 인간 으로서 ‘이산’을 빛과 그림자로 빗대어 은유함으로 효의 의미를 재인식할 수 있는 메시지도 녹였어요.



 


▪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 모두 수원의 문화 예술과 교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경수미) 화성행궁에서 열리는 전시답게 수원과 교류한 적이 있는 작가들로 구성 했습니다. 고창선, 김아라, 송태화, 이선미 작가는 수원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화성과 안산에서 작업하는 전경선, 최범용, 정철규 작가는 수원에서 기획하는 전시와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며 수원의 문화예술에 대해 교류한 적이 있어요.





▪ 그렇다면 작가분들께 출품작 소개와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


(고창선) <달 그리고 빛 2023>이라는 영상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저는 공간보다는 조금 더 넓은 의미의 유물, 복원된 건축물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했어요. 사실 수원을 비롯한 한국의 건축물은 재료 특성상 원형 그대로의 보존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은 복원 수준의 건축물이에요. 그러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것은 누구일까’하는 의문에서 시작해 이 작품을 만들었죠. 인류에게 일어나는 일을 누군가, 어쩌면 달이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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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라) 유여택 내부 벽면은 미장 바른 회벽 면에 흰색과 검은색 선을 두른 벽들이 둘러싸고 있어요. 그 벽을 보자마자 여러 고건축 구조들 속에서 붉은색의 반복된 벽면들이 눈에 들어왔죠. 고궁 속에서 작업 소재를 찾는 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될것 같았어요. 기존에는 선을 중심으로 작업해 왔다면 이번엔 유여택에서 발견한 벽의 패턴을 생각하며 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캔버스 화면 안에 면을 중심으로 작업했습니다. 작품 속 문양이나 색감들을 있는 그대로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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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화) 정조대왕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긴 여행을 즐거운<여행>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화성행궁 뒤주에서 바라본 영상을 통해 삶과 죽음을 바라본 관람자의 모습과 뒤주 안의 여행하는 여상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관람객의 예상 밖 반응을 의도한 셈이죠. 역사적으로는 슬픈 일이지만 이를 하나의 ‘여행’으로 풀어 관람객이 ‘이런 곳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라고 감탄하며 새롭게 생각해 주길 바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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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화성행궁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에 <달항아리>를 전시했습니다.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산이 어우러진 고택의 형태, 위치에 맞는 작업을 선보이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을 본 관람객이 쓸쓸한 가을밤, 좀 풍요롭고 따뜻한 마음을 갖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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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선) 왕의 무게에 눌린 정조의 숨겨진 내면과 형식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 속에서 소외된 우리의 내면을 에 녹였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이 자신의 ‘투명한 내면’을 되새기며 치유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이번 작품은 특히나 유여택의 역사성과 작품의 조화에 가장 중점을 두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유여택에 뜬 달을 바라보는 정조와 현대사회에 사는 저의 투명한 내면을 사고하며 작업을 진행했어요. 야간개장 특성상 조명과도 어울리는지도 함께 고민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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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규) 특별전 장소가 마음에 들었어요.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곳에 현대미술 작품이 설치된다면 의미 있겠다 싶었죠. 아무래도 공간이 주는 정체성이 강해 제 작품 중 장소성을 가진 <브라더 양복점>을 선보였어요. <브라더 양복점>은 사회와 연결된 인간의 보이지 않는 감정선과 미약한빛의 움직임을 손바느질 실드로잉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작은 빛이 누군가의 가슴에 닿았을 때 저마다의 그림자가 맺힐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했어요.





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


(최범용) 마당이라는 넓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와 생각보다 어두운 상황에서 작품이 잘 보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행궁이라는 장소적 특징을 작품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어요. 그 결과 유여택 중앙에 원형 형태인 을 선보였죠. 낮과 밤에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다양한 색상이 중첩되며 어우러지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세계의 인간과 자연, 사회 간에 이뤄지는 정조가 꿈꾸던 세계를 빗댄 작품입니다. 저는 정조가 신분의 차이를 떠나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관람객이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 특별전을 준비하는 동안 화성행궁, 크게는 수원에 계속 머무셨을 텐데요. 수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느낀 바가 있다면요?


(경수미) 수원과 화성행궁의 모든 시간을 특별전에 녹이면서 고궁의 역사적인 배경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문화재에 현대미술을 입힘으로써 보존이 아닌 문화예술을 향유의 공간으로 확장할 수 있던 점이 좋았죠. 현대미술과 전통공간과의 차이를 녹여낼 수 있던 점도 특별했어요.



(김아라) 이번 특별전으로 제게 있어 공간은 작업하는 것에서 영감을 주는 매개체에요. 그런 점에서 화성행궁이라는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전시 공간을 만나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원 안에 새로운 전시 공간이나 레지던시 등 예술 공간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공간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 소통된다면 더욱 살기 좋은 도시로 발돋움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듭니다.


(송태화) 저는 변화되는 모습을 간직한 역사적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은 예술 활동을 하기에 좋은 곳이죠. 이번 특별전을 통해 지역 예술가의 연계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선미) 가까이 있어 소홀하게 생각했던 공간에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져 신기했어요. 오시는 분마다 작품을 보며 사진 찍고 감상하고 질문하시는 분들을 만나며 즐거운 시간도 보냈죠. 단순히 오래된 도시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젊고 활기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참여하여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



▪ 앞으로 수원이 살기 좋은 도시로 발돋움 하기 위해 콘텐츠 활용이나 네트워킹 활성화 방안 등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경수미) ‘추풍미담전’은 지역작가들에게 전시의 확장성을 콘텐츠로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례가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또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지역 예술인들과 외부 작가들 사이에 소통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수원의 문화예술이 발전했으면 해요. 수원의 문화 관광 자원과 예술을 조합한 새로운 인프라가 만들어져 지역발전의 일환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철규) 문화유산이라는 공간 속 창작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어요. 이렇듯 수원이 앞으로 가기 위한 움직임이 많은 도시였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여러 장애물에 부딪힐 텐데 그 충돌과 혼란 속에서 지역 문화는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해요. 좀 더 젊은 층, 그리고 예술가들을 위한 많은 지원이 있으면 좋겠어요.


(전경선) 한국 문화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는 현시대에 국내외 작가들이 서로의 문화 유산 공간을 활용하여 이번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수원의 문화유산과 예술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예술과 문화가 더욱 발전되리라 생각합니다.


(최범용) 수원이 지금과 같은 유적과 유물이 보존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향유의 개념으로 확장되어 좀 더 다양한 문화적 시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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