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클래식 큐레이션-자신감부터 회한까지 솔직하게 담은 ‘얼굴’, 렘브란트 자화상을 다시 보다


자신감부터 회한까지  솔직하게 담은 ‘얼굴’, 렘브란트 자화상을 다시 보다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나’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고 연출하는 시대는 없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거울로 내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카메라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귀족만이 초상화로 얼굴을 남겼다.

또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은 특별한 순간에만 남기는 것이었는데, 스마트폰에 초소형 카메라가

부착되면서 나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소셜 미디어에는 멋진 공간에서 다양한 필터를

활용한 ‘셀피’가 넘쳐난다. 내 외모를 보는 것이 누구나 즐거운 일이 됐다. 그러나 발전한 기술이

우리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게 해 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Writing 김민 동아일보 기자 illustration 슬슬



 



 



17세기 화가가 얼굴에서 본 것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의 자화상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달까지 열렸던 국립중앙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에서는 1669년 작품 ‘63세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구미술관에서 내년 3월 17일까지 열리는 판화전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전에서도 에칭 드로잉으로 남긴 자화상 여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대구미술관 전시 속 판화들을 보면, 렘브란트가 자신을 멋진 모습으로만 표현한 것이 아님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덥수룩한 긴 머리의 자화상’(c.1631), ‘소리치는 듯 입을 벌린 자화상’(1630),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한 어두운 얼굴의 자화상’(1633) 등 다양한 머리 스타일과 차림에서부터 표정이 재밌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의 렘브란트를 보면, 혼자서 이런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이며 셀피를 찍는 현대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나는 어떻게 생겼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렘브란트에게 이러한 표정들은 나를 관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것이었다.

렘브란트의 판화 120점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자화상뿐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 역시 멋지게 연출된 사람들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보는 부랑자, 농부 등 평범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 지팡이를 짚은 농부, 떠돌이 가족, 의족을 한 거지 등 현실의 풍경이 그의 손길에서 사진 찍듯 포착된다. 아주 작은 종이 위에 찍힌 판화지만, 생생한 묘사 속에 실제로 17세기 네덜란드의 어느 거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이어지는 성경 작품들을 보면, 렘브란트가 성경 속 이야기를 교조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표현에 바탕이 된 것이 바로 이런 자화상과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묘사한 실험이었다. 전시는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풍경 △습작 △인물·초상 등 총 7개 주제로 렘브란트가 남긴 에칭(동판화)를 소개한다. 작품들은 사업가 출신으로 렘브란트 판화 220여 점을 수집한 문화인 얀 멀더스가 설립한 네덜란드 렘브란트 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의 소장품이다.

한편 렘브란트는 평생 회화 약 300점, 에칭(판화) 약 300점, 드로잉 약 2,000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도 회화로 그린 자화상만 40여 점에 달한다는 것이 독특하다. 자화상이 다른 점은 그것을 그리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도 함께 느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가 공들여 그린 회화 작품들을 보면, 렘브란트가 외모를 관찰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표현하려 노력했음이 보인다.



 



 



패기가 드러나는 34세 자화상



먼저 한국에 전시되진 않았지만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1640년 자화상을 보면, 34세에 그린 이 작품은 말년 자화상과 포즈나 표정이 비슷하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다르다.

벨벳과 모피로 장식된 재킷을 입고 있다. 이때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로 부유하며 자신만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그가 입고 있는 옷과 장식은 이 작품이 그려진 1640년대가 아니라 100년 전인 1520년대 스타일로 전해진다. 이 시기는 수많은 예술가가 동경했던 르네상스 예술이 정점에 달할 무렵이다.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왕성한 활동을 했던 1490년대부터 1527년까지를 ‘하이 르네상스’라고도 부른다.

또 그림 속 렘브란트는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있는데 이는 티치아노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전체적인 인물의 분위기는 북구 르네상스 거장은 뒤러, 혹은 라파엘로의 자화상과도 비슷하다. 젊고 능력있는 화가였던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그릴 무렵 어떤 대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의미심장한 것은 렘브란트가 참고한 티치아노의 작품이 이탈리아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소토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이 시대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수공예 장인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던 반면 문학가는 지식인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점에서 문학가인 시인의 복장과 포즈를 차용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에서 렘브란트의 젊은 패기와 뛰어난 기교가 거침없이 드러난다.



 



 





 



 



말년의 회한이 그대로 드러나다



이에 반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됐던 ‘63세의 자화상’ 속 렘브란트는 수수하고 단출한 모습이다. 모자와 깃을 자세히 보면 수가 놓여져 있는 좋은 옷임을 알 수 있지만 어두운 그림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림 속에서 빛나는 것은 그의 얼굴과 흰 머리, 그리고 옷깃 일부분뿐이다.

내셔널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X선으로 촬영해보니 렘브란트는 처음에 붓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최종 작품에서는 화가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붓마저도 사라졌다. 렘브란트는 손을 조용히 모은 채 앞을 응시하고만 있다.

30년 전 자화상과 비교하면 극명한 대조가 드러난다. 과거의 렘브란트가 자신을 보여주려고 치장했던 화려한 모든 것들이 물러났고 오른쪽 얼굴과 이마만 환한 빛을 받고 있다. 보석 달린 모자에 가려졌던 검은 머리칼은 이제 은발이 되었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던 야심에 찬 눈빛은 깊이 관조하는 눈빛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공한 화가였던 렘브란트가 이 자화상을 그렸을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30대 렘브란트는 당시 평균 집값의 10배가 넘는 고급 주택을 매입하고, 르네상스 거장들의 드로잉을 수집하며 취향을 마음껏 즐기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1656년 그린 대작 ‘야경’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수입도 줄어들게 된다. 이 해 렘브란트는 파산을 신청하고 자신이 수집했던 예술품, 그릇, 조각, 보석 등 모든 것을 경매에 넘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겪고 난 화가의 손길은 놀랍도록 차분하다. 그림은 노화가의 듬성해진 눈썹과 입가의 수염까지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나이가 들어 처진 피부마저도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려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얇아진 피부에 감도는 회색, 흰색, 보라, 분홍과 노랑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렘브란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자화상을 그렸을까? 젊은 시절 어떤 자화상들은 컬렉터에게 판매하기 위해 그린 것도 있었고, 앞서 본 34세의 자화상은 예술가로서 패기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붓도 팔레트도 던져버리고 자신의 얼굴을 냉정하게 들여다본다. 그 얼굴 속에 담긴 인생의 여러 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파산해서 화려한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생계유지를 위해 그림 도구만 겨우 지키게 된 렘브란트는 불행했을까?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그의 표정에서 그런 불행의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때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그것이 준 고통이나 슬픔이 만든 깊은 주름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화려한 성공과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순간들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예술이기에 렘브란트가 남긴 작품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감동을 주고 있다. 나이 든 화가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남기고자 최선을 다했음을, 말년의 소박한 자화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PROFILE 김민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문화부 기자다. 미술계와 아트계 관련 소식을 취재하며,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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